조회 수 639 추천 수 3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까까머리를 한 학생 둘이 썰렁한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더 이상 앳됨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슬쩍 성숙함이 풍기기 시작하는 얼굴로 보아 고등학생들임에 분명했는데, 한 명은 키가 훤칠하고 눈빛이 반짝이는데다가 이목구비가 또렷한게 아주 잘생긴 녀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키가 땅딱말한게 코 옆에 시꺼먼 사마귀가 달린데다가 입은 아귀만하고 눈이 얍삽하게 짝 찢어져 아주 심술맞게 생긴 녀석이었다. 사실 잘생긴 놈도 목 뒤에 큼지막한 점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동네 애들은 그 둘을 잘난 점백이, 못난이 점백이라고 부르곤 했다. 잘난 점백이는 이름이 박준석이었고, 못난 점백이는 이름이 이성수였다. 둘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부터 이웃사촌으로 지내왔다. 둘이 생긴 것은 천지차이였으나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낸 탓인지 성격이 똑같아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팝송 같은 자잘한 것들이 같았다.

 

 말끔히 대려진 교련복을 입고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둘은 뒤쪽 두 개짜리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비교적 촌이라 버스는 거의 항상 비어있었다. 저잣거리를 거쳐 학교로 갈때쯤이면 사람이 가득해서 미어터지곤 했다. 버스는 점백이들이 사는 촌동네를 떠나 부유층이 사는 언덕배기 근처를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둘은 부러운 눈으로 언덕 위의 주택들을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났다. 그 동네 정거장에서 처음 보는 여자애가 버스에 탄 것이다.

 찰랑거리는 단발에, 늘씬한 팔다리, 청아한 외모에 시골 여자애들이랑은 다른 그런 우아함과 고귀함이 느껴지는 그런, 두 시골 총각들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소녀였다. 먼지에 뒤덮여 너저분한 회색 버스 안에서 그 여자애의 존재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뭔가 그 이상의 것 같이 느껴졌다.

 

저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여 뭐시여……”

 준석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여자애도 그 말을 들었는지, 준석을 흘끗 바라보곤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로 시선을 앞으로 꼿꼿히 고정한 채 도도한 걸음으로 버스의 뒤쪽으로 가 앉았다. 그 아이가 지나쳐가면서 상큼한 비누 냄새가 났고, 두 점백이는 입을 벌린 채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았다. 비록 준석처럼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성수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은 취향이 같았으니까.

 

 그날 하교길 둘은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대충 나눈 몇 마디 중에도 아침의 일에 대한 것은 없었지만, 둘의 머릿속은 그 여자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떻게 하면 그 여자애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수단은 바로 편지였다. 하지만 글쓰기랑은 거리가 멀었던 성수는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연애 편지는 더더욱 그랬다. 아름다운 시라도 배껴넣으면 그럴 듯 하려나 싶어 책방에서 평소엔 거들떠도 안보던 시집을 사다가 한페이지 한페이지 살펴보며 사랑에 대한 시나 낭만적인 문구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주말을 꼬박 매달린 결과, 나름 만족스러운 고백 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건네주기만 하면 되었다.

 

 돌아온 월요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수는 준석과 버스를 탔다. 이날도 둘은 저번처럼 별 말을 나누지 않았다. 성수는 편지를 주머니 깊숙히 꽂아넣은채로 버스에서 그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편지를 잘 건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운이 좋아 2인 좌석에 같이 앉게 되었지만 버스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그때 그 여자아이가 버스에 탔다. 그 정거장에 사람이 유난히 많았는지,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에 떠밀려 여자아이는 준석과 성수가 앉은 좌석 바로 앞까지 밀려왔다. 코 앞까지 다가온 여자아이를 보고 성수는 가슴이 뜀을 느낌과 동시에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편지를 꼭 쥐었다. 그런데 그때, 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 앉아.

 그가 벌떡 일어나 여자애에게 자리를 양보하였고, 여자애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를 위해 비워진 성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바람에 성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여자애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근거림은 침울함으로 뒤바뀌었다. 여자애는 앞에 서 있는 준석을 동경의 눈길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 있는 준석이 이따금씩 고개를 움직이면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몰래몰래 준석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성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성수는 그녀가 내릴 때까지, 주머니 속의 편지를 꽉 쥐기만 한 채로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준석이 부잣집 딸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성수는 준석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그 기집애를 좋아하는지 알았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얌체같이 선수를 쳐버릴 수가 있는건가. 자신이 그 편지를 쓰려고 방에 틀어박혀 평생 본적도 없는 시집을 사다 뒤적거리고, 머리를 싸매고 또 얼마나 마음앓이를 했는데. 성수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던져 버리고 그날 이후로 준석을 피했다. 성수는 모든것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다. 첫 사랑을 잃은 것도 모자라,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배신감과 패배감까지 느꼈으니. 인생의 즐거움을 잃은 그는 적당히 하게 되는 버릇을 가져버리고 말았다. 적당히 고등학교를 마친 뒤 적당한 대학에 들어갔다가 적당한 직장에 취직하고 적당한 여자와 선을 봐서 장가를 들어 적당한 수의 자녀를 두고 적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차피 자기는 못난이였으니까.

 

 그렇게 몇 십년의 세월이 적당하게 흘러갔지만 성수는 그때 그 일만큼은 잊지 않고 마음 깊숙이 담아두고 있었다. 언제든지 술만 취하면 먼저 나오는 소리가 내가 그때 먼저 일어섰어도 지금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여였다. 방바닥에 퍼질러져 왠종일 티비를 보고 있는 띵띵한 마누라를 볼때면 가끔 울분이 치솟았고 속이 답답했다.

 

 어느 날, 마누라와 함께 마트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데 일이 벌어졌다. 푹푹 찌는 여름날 물건을 양손에 한짐씩 들고 올라탄 버스는 사람이 평소보다 많았다. 빈 공간에 디비들어가 서 있는데, 앞에 앉은 어떤 남자가 성수의 마누라를 흘낏 바라보더니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였다. 키가 훤칠하고 구렛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였는데, 마누라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멍청해 보일 정도로 싱글벙글하며 자리에 앉았다. 순간 성수는 아픈 옛 기억을 회상해버렸고, 퉁명스러운 헛기침을 하며 슬쩍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 놈의 목 뒤에 왕 점이 있는 것이다. 그 썅눔의 자식이,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고 인생을 망친것도 모잘라가지고 이제는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비웃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이 꿈틀거렸고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김이 훅훅 나왔으며 이빨은 따닥따닥 떨리고 혈압이 올라 코 옆의 커다란 사마귀까지 시뻘개 진 것만 같았다. 성수는 이성을 잃고 손을 뻗어 커다란 점이 달린 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고 마구 흔들었다.

 

이 썅눔의시키……! 이젠 넘의 마누라한테까지 자리를 양보하네……!

 

 

 

 

---

 

아 힘들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정식으로 참여하자마자 여러운 미션이네요.

 

누구의 관점에서 진행했는지는 딱히 밝히지 않아도 될 듯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션을 드리는 차례는 언제인가요? 다시님 다음인가요?

 

 

 

 

?
  • ?
    다시 2011.07.31 17:12

    저 점 많은데 ㅋㅋㅋ

    저 다음이겠죠 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8.01 03:29

     트라우마라니 ㄷㄷ;

     그렇네요, 이런 방법도 있군요 ㅎ


     순서는 하늘 님께 여쭤봐야 되지만, 아마 다시 님 말씀하신 대로가 되지 않으려나 싶네요^^;

  • ?
    乾天HaNeuL 2011.08.01 03:32

    ㅇㅇ; 뭘 저한테 물어봐여. ㅋㅋㅋㅋ

    다시님 다음이시죠 뭐. ㅡ.ㅡ

  • profile
    시우처럼 2011.08.08 18:40

    일찍 올리셨네요.

    아무튼 남자가 폭력을 행사한 이유가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300 (비평) 내 사전에 행운은 없다 5 다시 2011.05.03 799 1
4299 (비평) 노인공경 6 Yes-Man 2011.06.27 453 1
4298 (비평) 당신의 유령들 4 윤주[尹主] 2011.06.27 393 2
4297 (비평) 마지막 한방 5 다시 2011.05.31 532 1
» (비평) 못난이 점백이의 원한 4 Mr. J 2011.07.31 639 3
4295 (비평) 미션3 : 간략합니다. 2 乾天HaNeuL 2011.06.12 592 1
4294 (비평) 선영아 사랑해! 2 다시 2011.07.09 380 1
4293 (비평) 소설 작성보다 비평이 더 어렵나니.... 6 乾天HaNeuL 2011.05.27 676 1
4292 (비평) 신탁이 내린 밤 6 윤주[尹主] 2011.05.04 538 1
4291 (비평) 악몽 4 윤주[尹主] 2011.05.20 437 1
4290 (비평) 어느 박애주의자의 식사 4 윤주[尹主] 2011.06.02 476 1
4289 (비평) 운수 좋은 날 5 시우처럼 2011.05.07 687 1
4288 (비평) 이웃집 두근두근 그녀 2 Mr. J 2011.07.15 540 2
4287 (비평) 일반 사회 3 다시 2011.08.08 608 2
4286 (비평)(드로덴-성배) 우리가 잊은, 우리 최초의 지식 6 Mr. J 2011.08.23 598 2
4285 (비평)(클레어^^-우리들도 용사다) 언제나 제르딘 중심 4 다시 2011.08.27 579 2
4284 (비평)M군과 O양의 이야기 6 시우처럼 2011.07.10 553 2
4283 (비평)록펠러 가문의 비극 5 시우처럼 2011.06.28 535 2
4282 (비평)육즙 좋은 곰돌이 10 시우처럼 2011.05.23 686 2
4281 (비평)재수 참 없는 날 4 윤주[尹主] 2011.08.08 663 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