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빌빌

by SinJ-★ posted Jul 21,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 빌."

 "예?"

 "예에?"

 깊숙이 눌러 쓴 마법사 모자의 넓은 챙 사이로 영감의 날카로운 눈빛이 몇 차례 내 양심을 찔렀지만, 내 머리를 시큼하게 발효시키고 있는 썩을 상상들은 사라질 줄 몰랐다. 기어코 갤스는 온 힘을 다한 주먹질로 내 뒤통수를 후려침으로써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

 "이 거지 같은 자식아. 니가 꿈틀거리는 통에 그리핀 둥지까지 쫓겨온 네 소감을 말하란 말이야! 그리고 썩은 내 풀풀 나는 어깨 위의 거기서도 뭔가 대책이란 걸 생각하는 모양은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어제 새벽, 불침을 선답시고 잠도 안 자고 멀뚱히 앉아 있다가 둥지 잃은 그리핀 새끼를 주워 온 것이 화근이었다. 들어올려도 기껏해봐야 내 머리통만한 덩치의 귀여운 병아리 같은 놈을 보고는 "갖다 버려." 스승님은 매정하게 대답했다.

 "꽃씨도 바람 따라 다니다 보면 길을 잃고 바위에 앉혀 죽어가는데, 그보다 가련한 이 새끼를 두고 가자구요?"

 삐익! 독수리의 대가리에서 나오는 앙증맞은 새소리에 늙은 마법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입꼬리 씰룩. 잽싸게 손을 뻗어 그리핀을 내밀자, 노인이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삐익!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고개를 까딱거리면서도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요런 잔망스러운 놈! 다시 한 번 삐익! 

 "흠흠, 그럼 그래. 스캔을 해보자꾸나."

 어느 새 새끼 그리핀을 넘겨 받아 품에 안고는 쓰다듬는 폼이 영락없는 개 키우는 시골 촌부같았지만, 입 밖으로 떠들엇다간 목만 남기고 땅에 파묻힐 테지. 넓은 풀밭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은 스승님은 아쉬운 기색으로 꼬마 그리핀을 내게 넘겼다. 삐익! 녀석은 처음 보는 늙은이의 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처음엔 꼼짝도 않더니, 이제는 연신 꼼지락 거린다. 

 "스캔."

 스펠을 읊으면서 한 손을 뻗어 남쪽에서부터 주위의 지리를 훑기 시작했다. 이 루마니아 초원에서 대체 그린핀이 살 만한 계곡이나 봉우리가 있을까. 모든 날 것과 들짐승의 헤르메스와 아르테미스! 대체 요 맹랑한 귀염둥이의 부모는 뭘 하고 있길래 이 앙증맞은 가출을 허락했단 말입니까. 혹시 용사들을 위해 준비한 신의 선물 같은 건가요? 그렇다면 가혹하시네요. 이 조그만한 녀석을 무슨 수로 타고 다닌답말입니까. 이 녀석은 메두사의 디저트가 되어버리고 말 것 같다구요!

 "오오. 그렇구나."

 눈을 감고 한마리 독수리가 되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스승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손은 여기저기를 툭툭 턴 뒤에 서쪽으로 향했다. "저기야."

 "네?"

 "저쪽으로 가면, 음! 조금 많이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만 산맥 비슷한 초입이 있구나. 흠! 음, 좀 내 추론을 덧붙여 말해보자면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알프스의 시작점 쯤 되는 것 같은데, 험하지도 않고 배달해주기에는 딱 좋은 곳이구나."
















 아 지루해...


Articles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