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쫓는 자 - 05

by Mr. J posted Jul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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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전갈

 

큼직한 덩치의 남자가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작은 기계장치에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댄 채로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의 낡은 구식 군용 전투복과 헬멧은 흙먼지에 잔뜩 덮여 있었고, 그가 때때로 지저분하고 뻣뻣한 수염을 긁적일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그가 쓰고 있는 고글도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앞을 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멍한 표정으로 찌그러진 스피커에 귀를 붙이고 있던 남자는 끊임없이 나던 소음속에서 뭔가를 듣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쿵쾅쿵쾅 요란하게 뛰어나갔다.

 

황야 한가운데 위치한, 쓰러질 것만 같은 판잣집 밖의 커다란 바위에 덩치와 같이 낡은 구식 전투복을 걸친 남자들이 셋 앉아있었다. 그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손도끼 날을 갈고 있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가 단연 눈에 띄었는데, 체격이 건장했고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와도 같았으며 가늘게 땋은 턱수염은 신경을 많이 썼는지 고르게 정리되어있었다. 그의 전투복도 먼지와 얼룩으로 뒤덮여있었지만 손에 든 손도끼만은 번뜩거리고 있었다. 그가 숫돌을 그어 댈 때마다 손등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전갈 문신이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두목! 카산드라가 47번 선로에 출몰했다는 전보입니다!

문틀에 낄 듯, 아슬아슬하게 판잡짓에서 튀어나온 덩치가 염소수염의 남자에게 외쳤다. 그러자 남자는 대꾸도 없이 헬멧에 달린 고글을 쓰고 바위 옆에 주차된 지프에 올라탔고, 나머지 일당도 그를 따라 신속하게 지프에 올라탔다. 덩치도 재빠르게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지프는 덜컹거리며 네 남자를 태우고 흙먼지와 함께 황야를 나아갔다.

 

 

 

사막의 꽃

 

 화물들을 살펴보던 중 카산드라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커다란 금속 상자들이었는데, 단단히 봉인되어있었으며 제국 낙인이 찍혀있었다. 보통 제국의 화물은 웬만해선 이런 일반 열차에 실리지 않을뿐더러 내용물이 확실하게 기재되어있었다. 뭔가 중요한 물건일 수도 있었다. 상자들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어 열 수 없었다. 무게도 꽤 나가 부하들을 불러 옮겨야 할 듯싶었다.

 

손 들어.

뒤에서 침착한 목소리와 함께 장전소리가 들렸다.

 

 

 

은빛 늑대

 

소문으로 들었지만 진짜 여자가 두목이었을 줄은 몰랐군.

 실버레이가 엽총을 카산드라의 등에 겨냥한 채로 말했다. 머리에 손을 올린 채 그를 노려보는 카산드라의 녹색 눈동자들을 주시하며 그는 바닥에 떨어진 그레네이드 건을 멀찍이 차버렸다. 그의 눈에도 커다란 금속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제국 낙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상자의 재질이었다.

 

에델마니움?

 실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에델마니움은 네온 제국 과학력의 정수인 천재 과학자 에델만이 만들어 낸 합금으로 합성 중에는 원하는 모양으로 조형이 가능하지만 합성 후엔 파괴 불가능의 강도를 지니고 모든 전파를 차단했다. 일반적으로 군용 전투 로봇의 갑옷 제작에 사용되었으며 바움대륙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금속이었다. 실버레이가 그것을 단번에 알아본 것은, 합금의 독특한 색채 때문이었다. 언뜻 보기엔 짙은 회색이었지만 조명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내었다. 튼튼히 보관되어야 하고, 무엇이 들었는지 쉽게 탐지하지 못하게 에델마니움으로 제작된 상자. 게다가 제국의 낙인이 찍혀 있으니, 이것은 무언가 상당히 중요한 물건임에 분명했다.

 

 실버레이가 상자에 정신이 팔린 것을 눈치챈 카산드라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그레네이드 건으로 손을 뻗었지만 실버레이가 쏜 총알이 그녀의 무기를 튕겨 화물칸 구석 어둠속으로 날려보내버렸다.

 

아가씨 손가락을 날려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얌전히 있는 게 좋을거야.

 카산드라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붉은 전갈

 

덩치의 남자가 손과 다리를 묶은 바솔로뮤를 똑같이 포박된 그의 동료들 옆에 내던졌다. 바솔로뮤는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는지 하의가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죽어버리면 가치가 떨어지는 녀석이니까 처리해둬.

 붉은 전갈 문신의 남자가 지시하자 그의 옆에 서 있던 호리호리한 남성이 지저분한 붕대를 꺼내 거친 손길로 바솔로뮤의 허벅지를 세게 감았다. 바솔로뮤가 이를 악문 채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지만 단단하게 묶인 노끈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흙먼지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네 명의 남자에게 쉰 명이 넘는 단원들 중 마흔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나머지는 포획당했다.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이미 열 명이 죽었고, 대응을 시작했을 때 또다른 열 다섯 명이 죽었다. 바로 옆에서 기관총을 쏘던 부하가 어디선가 날라온 손도끼에 맞아 쓰러지고, 잇따라 뒤에서 날라온 화살에 왼쪽 허벅지가 관통 당해 넘어졌다. 그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나타난 덩치에게 재빠르게 포박당하고 낚아 채여 오는 동안 보이는 장면은 죽은 단원들의 코를 잘라내고 있는 남자들과 그와 같이 포박당해 한데 모여있는 간부들이었다.

 

그의 작전과 진형은 완벽했다. 설령 무장 경찰들이 오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지략을 넘어서고, 무엇보다도 단 네 명의 인원으로 전원을 순식간에 제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노에 고개를 쳐들어 손도끼를 든 남자를 보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솔로뮤의 분노는 순식간에 패배감과 혼란스러움으로 변해버렸다. 붉은 전갈 아이작 아시모프, 용병술의 대가. 바솔로뮤가 딜문 내전에 참여했을 때 그를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작전은 약간의 빈틈도 없었으며 항상 완벽했다. 4년간 계속되던 내전이 어느 날 순식간에 사그라들은 이유는 바로 제국에 고용된 아시모프의 참전 때문이었다. 그의 귀신 같은 작전도 대단했지만 그와 그의 부관들의 인간을 뛰어넘는 살상 능력은 일주일 만에 반란군의 수뇌부를 괴멸시켜버리는데 성공했다. 내전이 끝나고 현상금 사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바움대륙으로 올지는 몰랐다. 그것도 자신들을 잡으러.

 

카산드라는 아직인가?

 아시모프가 외쳤다.

 

 

 

은빛 늑대

 

 실버레이의 작전은 카산드라를 인질로 삼아 나온 다음 경찰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만약 강도단 머릿수가 그리 많지 않다면 혼자서 처리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카산드라를 앞세우고 나왔을 때 밖은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지저분한 구식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와 카산드라를 보고 있었다. 그 중 손도끼를 든 남자가 외쳤다.

 

승객인 것 같은데 계집을 이리 넘겨라! 우리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글쎄, 이 아가씨가 두목이라는 거는 나도 잘 알고, 포상금도 두둑한 것으로 아는데 말이지.

실버레이가 응수하며 엽총을 단단히 쥐었다. 남자들의 자세로 보아 그들은 프로였다. 실버레이는 딱히 현상금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열차 강도단도 모자라 자신에게 명령조로 이야기를 하는 남자에게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은 묘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먹잇감을 가로채려는 놈들은 용서 못하지, 그쵸 두목?

덩치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손도끼가 번쩍이는 듯 싶더니 어느새 허공을 가르며 날랐고, 실버레이는 간신히 그것을 쏘아 맞췄다. 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손도끼는 옆으로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네 명의 남자가 번개같은 속도로 움직여 실버레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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