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3 01:38

E. M. A. (2-3) [선택지 없음!]

조회 수 428 추천 수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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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곤경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곰곰이 생각하던 명현이 귀신에게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귀신은 난처한 듯 명현에게 말했다.


 "지금은 곤란해. 학생과 얽히게 되는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떤 일로 얽히게 되는 건지도 알 수 없으니까. 만일 학생이 여자 때문에 곤경에 처할 것 같아지면, 그때 그 여자를 데리고 내게 찾아와 줘. 그땐 이 소녀도 뭔가 방법이 없는지 함께 찾아줄 테니까."


 귀신 말에 명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은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주며 명현에게 당부했다.


 "혹시나 말인데, 나 몰라라 도망치긴 없기다? 만일 그랬다간, 소녀 그 여자 한까지 품고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테니까."


 깔깔대며 웃더니, 귀신은 명현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명현이 보는 앞에서 그녀 몸은 서서히 옅어져 사라져갔다.

 문득 뭔가를 떠올린 명현이 귀신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누굴 찾아 왔느냐고 묻거나 하진 않을까요?"

 "내 이름을 불러주면 돼. 알영. 그게 내 이름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귀신은 완전히 명현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2 - 3. 당신 곁에 누군가 있다


 - 어째서 윤은비는 밤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는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은비는 가장 먼저 샤워부터 했다.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나면 아무리 서둘러도 집까진 40여분이 걸렸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금방 11시, 12시가 되고 만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씻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어찌됐건 은비 자신은 이 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다. 교통사고 탓이었다. 상대편 운전자도 목숨을 잃은, 제법 큰 사고였다. 솔직히 은비는 딱히 누구 잘못이라 할 것도 없었던 사고지 싶었다. 상대편 운전자는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뛰쳐나왔다. 은비 엄마는 사고 당시 걸려온 휴대폰 전화를 받느라 부주의했다.

 딱히 그 사고 때문에 달라진 것도 없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엄마는 심한 부부싸움을 했다. 평소 해외 출장 잦은 아빠에게 여자 문제가 좀 있었던 탓이다. 며칠간 냉랭한 공기가 집안에 맴돌았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집에서 아빠는 겨우 한 주를 버티곤 도망치듯 장기 출장을 떠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은비는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니, 사실상 홀로 보냈다고 해야 옳을 거다. 은비 엄마도 직장을 다니느라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질 않았으니까.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지, 부고를 받고도 아빠는 곧바로 귀국하지 못했다. 은비는 가까운 친척 집에 떠맡겨졌다. 은비에겐 외숙부, 외숙모가 된다는 노부부는 친절했고 또 헌신적이었다. 남편은 은퇴한 중학교 교사였고, 아내는 제법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자식들은 모두 독립해 부부 곁을 떠난 지 오래였다. 매번 노부부는 졸지에 부모 잃은 은비에게 많은 애정을 쏟으려 했지만 매일 저녁 10시쯤이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수면욕을 이기진 못했다. 자기 집에서건, 남 집에서건 은비는 항상 혼자였던 셈이다. 혼자라서 불편했던 적은, 적어도 은비 스스로 기억에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어딘가 조금 달라진 듯하다. 은비 자신도 정확히 무엇이 달라진 건지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분명하게 알고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악몽을 꾸기 전까진 이런 불안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더란 사실이다.


 "대체 누굴까, 그 사람은."


 눈 덮인 평원 위에서 울면서, 간절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여잔.

 개꿈으로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도 생생하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자주 꾼다. 요즈음엔 거의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은비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설원의 풍경 속. 그 한가운데 주저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우는 묘령의 여인. 머리는 풀어헤쳐 산발을 한 채, 그 자신도 여러 군데 상처입어 피투성이가 된 채 여자는 계속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여자가 정확히 누구를 부르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나운 눈보라가 사방에서 몰아치고 있던 탓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은비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자에게로 다가가 선다. 팔이 제멋대로 움직여 여자 어깨를 잡고 흔든다. 이보세요. 당신은 대체 누구죠? 어째서 이런 데서 울고 있죠? 그 말에 여자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안 돼, 그 얼굴을 보면!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비명을 은비는 속으로 지른다. 그런 얼굴 보고 싶지 않아! 보기 싫단 말야!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은비는 여자 얼굴을 정면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만다. 여자에겐 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여자 얼굴에 있는 거라곤 커다란 구멍들뿐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도, 코와 입이 있어야 할 자리도 휑하니 뚫린 텅 빈 구멍들만 있었다. 그 구멍들 속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새어나온다. 도와줘, 제발 도와줘. 도와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너 뿐이야.


 "꺅!"


 큰 소리를 지를 뻔 한 걸 은비는 간신히 참았다. 어쩌다 잠이 든 걸까?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녀는 주위를 살폈다. 분명 씻고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제 방 침대에 누운 채다. 옷차림도 씻기 전 벗어놓은 파자마 차림이었고, 갈아입기 전 벗어서 침대 위에 놓아둔 교복은 깔끔히 정돈되어 옷장 속에 걸려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도무지 자기가 했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숙모께서 들어와 보시기라도 했던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은비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방 한 구석에 전면 거울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은비가 오기 전, 외숙모 딸이 쓰던 것이라고 했다. 은비는 그 거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째선지 쉬는 날 입던 블라우스 한 벌이 거울 위에 걸쳐져 있었다. 블라우스를 치우자 가려진 거울 일부가 드러나면서 은비 얼굴이 거기에 비췄다.


 "!!"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은비는 화들짝 놀랐다. 거기에 비친 건 은비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은 그녀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여자의 것이었다. 이십대 초반, 아니 중후반 정도? 얼굴선이 가늘긴 했지만 가냘프단 느낌은 아니다. 온순한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의지가 강한, 그런 인상을 가진 낯선 얼굴이 은비 얼굴 대신 거울에 비추어져 있었다.

 놀란 은비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다 설마 싶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추인 건 틀림없는 제 얼굴이었다. 방금 전 보았던 낯선 얼굴은 거울 속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자, 잘못 본 걸까? 그런 거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은비는 휴, 한숨을 쉬었다. 블라우스를 다시 옷장 속에 넣어두고 은비는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조금 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평소라면 새벽 1, 2시까지라도 깨어 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벌써 여러 차례 악몽 때문에 도중에 잠에서 깬 탓에 쌓인 피로가 상당했다. 분명 그 탓이다. 방금 전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깬 것도.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최대한 자두자고 은비는 생각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곤 은비는 눈을 감았다. 금세 이불 아래서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은비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잠이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방 한 구석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누군가 어둠 속에서 방 한가운데로 빠져나왔다.


 "흑, 흑. 소녀 목숨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네."


 구석에서 빠져나온 건 다름 아닌 알영 귀신이었다. 은비가 잠든 걸 멀찍이 서서 확인한 뒤, 그녀는 조금 전 은비가 했던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댔다. 서랍장 아래서 뭔가 부스럭대는가 싶더니, 시커먼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종잇장처럼 납작했던 그것은 알영 귀신 앞에서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시커먼 그것은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란형 둥그런 얼굴, 두 개의 팔. 실루엣뿐이라 눈코입 구분이 없는 것만 빼놓으면 그것은 인간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다만 사라진 하반신을 생각하지 않고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흐흐흑, 무서웠지, 소녀도 무서웠어~."


 그것을 껴안고 엉엉 어린아이처럼 우는 알영 귀신을 검은 그것도 함께 껴안고 마치 우는 듯 들썩였다. 한참 후 울음을 그친 알영은 그것을 안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 은비를 가리키며 알영은 치를 떨었다.


 "이, 이 잔혹 무도한 여자 같으니! 소녀, 진심으로 열 받았어?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대더니, 이제 와서 순진한 표정하고 잠든 척 해봐도 소용없다! 친구들의 복수를 받아라아!"


 이히히.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알영은 은비 책상 위를 뒤졌다. 유성 매직펜을 찾은 그녀는 음흉한 얼굴로 은비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으히히히. 묘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매직펜 뚜껑을 열고 은비가 덮은 이불자락을 걷어내려 손을 뻗었다.


 "누가 그런 짓 하라고 허락했었죠오?"


 그 때 알영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알영의 온 몸은 조각상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알영 자신이 그녀에게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단 사실도 잘 알았다.


 "제멋대로 굴면, 당신 사당이 남아나지 않을 거랍니다아. 잊지 않으셨겠죠오?"

 "으윽……."


 울상이 된 알영은 천천히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원한 가득한 눈으로 그녀는 방금 전 나타난 상대를 쳐다보았다.


 "교활한 년! 이 악마 같은 년!"


 분을 못 이기고 알영 귀신이 한 말에 상대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저에게 있어 둘도 없는 칭찬이네요오."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 알영은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든 은비에 대해서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

 <E. M. A.> 세 번째 화입니다. 이번 화는 선택지가 없어요 ㅎ

 지난번 화에서 표가 1:1로 갈렸습니다. '무조건 여자 편을 들어준다'와 '곤경을 피할 다른 방법이 없는지를 묻는다'. 우연히 다른 사이트에서 '여자 편을 들어준다' 쪽을 먼저 선택해 주어서, 창도에서는 반대편 선택지로 갑니다;

 이번 화는 선택지 없이, 곧바로 다음 화로 직행합니다. 이것 역시 명현이 아니라 은비 중심입니다. 그 화, 혹은 그 다음 화에서 다시 선택지를 통해 차후 전개가 바뀌게 되겠네요.

 아무튼간, 다음 주 화요일에 또 올리겠습니^^;
?
  • ?
    다시 2011.07.13 02:05

    ㅋㅋㅋㅋ

  • ?
    乾天HaNeuL 2011.07.13 04:11

    ㅋㅋㅋ

  • profile
    클레어^^ 2011.07.13 04:32

    헉! 이거 납량특집인 겁니까?

    납량특집 치고는 조금 '시크릿'스러운 느낌이 좀 들지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7.13 07:21

     <시크릿>과 인물만 공유하는 이야기인지라 그렇게 보이나봐요 ㅎㅎ

     납량특집까진 아닌데, 어쩌다보니 <전설의 고향>같은 이미지로 써보고 싶었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7.13 07:23

     그나저나 다시 님이랑 하늘 님은 왜 ㅋㅋㅋ만 있나요!

     재밌어서 웃는지 어이 상실해서 웃는지 분간이 안가요 ㄲㄲ

  • ?
    乾天HaNeuL 2011.07.13 07:33

    전 다시님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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