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6 13:34

잠 못 이루는 밤에

조회 수 409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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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니코틴 충전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걸어나오는데 바다내음이 가득하다. 1층의 가족들 중 하나가 휴가라도 갔다온 모양이다. 현관을 잠식하고 있는 자전거들의 주인인, 여름이면 발코니에서 간이 풀장을 펼쳐놓고 온 동네방네 친구들을 불러다가 쓰나미를 일으키는(물난리에 괴성이 가득하니 쓰나미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내 새치들 중 두세개쯤의 탄생에 기여를 했을 그 102호 가족인지, 아니면 인테리어 공사를 한답시고 소음에 항의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들고 펜과 함께 넉살좋게 들이밀었던 101호 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복도를 가득 채운 바다 향기는 해변을 연상시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과장이고, 실제론 현관에 벌러덩 뒤집힌 채 죽어있는 작은 게를 보고 알아차렸다. 스믈스믈 어둠이 기어들어오기 시작하는 저녁이라 처음엔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거미도 아니고 지네도 아닌 그 무언가가 풍겼던 이질감은 아주, 아주 잠시동안 나를 겁먹게 했다. 하지만 곧 그게 작은 게의 시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난 뒤 나는 안도감과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고 밖으로 나와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고,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나서 그 약간의 의아함은 곧 아련한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였을때, 어머니 아버지와 갯벌에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생수통에 작은 게 두어마리를 잡아다가 왔던 기억이 난다. 그 생수통은 한동안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놓아져 있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일주일이면 새 장난감에 질리는 아이였으니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됬을때, 동네 놀이터에서 고학년 형들이 문방구에서 파는 소라게를 가지고 놀다가 미끄럼틀에 내던져 그 작은 생물을 산산조각냈던 기억이 난다. 내 소라게는 아니었고, 내가 아는 형들도 아니었고, 왜 이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인지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1층 복도에 뒤집혀져 죽어 있는 게를 보고 나니 갑각류에 대한 어린시절 추억이 몰려왔다.

 

내가 잡아왔던 게들이나 형들이 처참하게 처형했던 소라게나 지금 아직도 저기 널부러져 있는 게나 모두가 자기가 살던 고향에서 멀리 멀리 떨어진 곳까지 잡혀와 쓸쓸하게 죽었다. 나는 유학생이었다. 여기서 4000마일 이상 떨어진 긴 구름의 땅에서 홀로 강산이 반 정도 변할 동안 살았었다. 갑자기 복도에 죽어있는 게를 보니 이상하게 옛날 게들과 소라게의 생각이 나면서 그들과 동질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내가 만약 외지에서 쓸쓸하게, 외롭게 죽게 되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매우 슬펐을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니까 우울해서 담배를 그만 두개피나 피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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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1.07.07 06:41

     으...잘 봤습니다;

     살짝 우울한 얘기네요. 어딜 가나 내 집 만한 데가 없다는데, 그 말이 맞는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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