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M. A. (1)

by 윤주[尹主] posted Jun 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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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칠석을 한 주 가량 남겨두고 햇살은 기세 좋게 내리쬐었다. 지붕이 뚫어져라 장대비를 퍼붓던 게 바로 이삼일 전이다. 등교 때마다 비에 젖었던 교복은 이제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젖어 학생들 몸에 달라붙었다.


 "흐아, 찜통이 따로 없네."

 "아놔, 에어컨도 안 켜져."

 "냅둬, 하루 이틀 겪나? 때 되면 켜지겠지."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열고 선풍기를 틀자 후끈한 바람이 학생들 얼굴에 쏘였다. 아쉬운 대로 그들은 자리에 앉아 저마다 가방을 풀거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 사이 여학생 몇 명인가 더 교실로 들어와 각자 자리에 앉았다. 학교 기숙사생인 그들은 방학 기간 중엔 누구보다도 일찍 등교를 마쳤다. 보충 수업 일정에 맞춰 등교 시간이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조금 지나,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신히 170cm 전후로 보이는 키에 딱히 특징 잡을 구석 없는 평범한 인상인 남학생이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왼손엔 검정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가슴팍에 단 플라스틱 명찰엔 '곽명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먼저 온 몇몇 기숙사생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찍도 왔네."

 "하숙집 있어도 할 게 있어야지. 야, 밥 먹었냐?"

 "아니. 메뉴가 뭣같더라."

 "뭔데."

 "계란국. 너는?"

 "난 이제 먹으려고."


 슈퍼에서 파는 빵 몇 종류와 커피우유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그는 빵 봉지를 뜯어 권하듯 옆 자리 친구에게 내밀었다. 한 조각 뜯어 입에 넣은 뒤 친구가 명현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근데 너 하숙하니까 좋냐? 기숙사 바로 뒤에 동네지? 후문 뒤편에 있는 거."

 "응. 편하긴 편한데, 솔직히 거기도 눈치 보이더라. 혹시 누구 자취하는 얘는 없냐? 괜찮은지 물어보게."

 "뭘 또 알아보게? 그냥 하숙하지. 그래가지고 공부 하겠냐? 너 성적 유지해야 된다며? 기숙사 나오는 조건으로."


 친구 손은 다시 책상 위로 뻗쳤다. 커피우유를 집어 들고 그는 명현에게 물었다. 이거 입 댄 거냐? 명현은 고개를 저었다. 친구는 우유를 한두 모금 마시곤 도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애당초,"


 입가심을 한 친구가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너 기숙사는 왜 나갔냐? 사감 때문에?"

 "뭐, 그런 것도 있고."


 얼버무리는 명현을 친구는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명현을 조금 떠볼 생각으로 그는 흘려보내는 듯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누가 그러더라? 너 우리 기숙사서 귀신 봤다며?"


 잠시 명현이 흠칫거리는 걸 친구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무언가를 더 추궁하려 했을 때, 교실 문이 열리며 등교생이 줄줄이 밀려들어왔다.


 "안녕."

 "어, 왔어?"


 조용하던 교실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명현과 친구 사이로도 반 친구 서넛이 지나가 제 자리에 앉았다. 그 바람에 명현과 친구 대화도 잠시 동안 끊겼다.

 다시 기회를 보아 친구가 물으려는데, 명현 눈은 다른 곳을 물끄러미 향했다. 친구는 그를 툭툭 치며 물었다.


 "야,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데?"


 명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여자애 셋이 한 자리에 모여서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다. 셋 다 자기 반이라 명현도, 친구도 그들 이름은 잘 알았다.


 "뭐야, 너 쟤네들한테 관심 있어? 야, 누구냐? 얘기해봐."

 "……."

 "왜? 친한 친구한테 그 정도 말도 못해주냐?"

 "관심있달까, 아니랄까……."


 명현이 하는 말은 조금 묘했다. 태도도 평소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 지금껏 명현이 그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적은 없었다. 벌써 6개월 이상 한 반에 같이 있어왔다. 줄곧 신경써왔단 낌새는 옆자리에 있던 친구도 느낀 적 없을 정도다.

 그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콩깍지라도 씐 것처럼 이런 얘길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친구로서 축하라도 해 주어야 하는 걸까?


 "최근에 은비 쟤, 유난히 예뻐 보이지 않냐?"


 모여 앉은 셋 중 중앙에 있는 여자애를, 명현은 홀린 듯 빤히 쳐다보았다.







  "그거야 저렇게까지 쳐다보는데 모를 리 있어?"


 한편, 여자들은 여자대로 명현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 은비 왼편에 있던 여자애가 한 말을, 그녀 앞자리에 앉은 애가 받았다.


 "좋겠네, 윤은비. 저거 분명 너 좋아하는 거라니깐."

 "근데 좀 기분 나쁘긴 하다. 우와, 계속 쳐다보네."


 저들끼리 키득키득 대는 여자애들 사이에 은비가 있었다. 살짝 쳐진 눈매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얼굴이다. 172cm키에 조금 마른 편이라 평소에도 주위 시선이 느껴져 불편해하곤 했다.


 "근데 어쩐지 요즘 들어 저런 시선 자주 느끼는 것 같아."

 "뭐야, 뭐야. 다른 애도 있어? 그건 또 누군데?"

 "윤은비, 얘. 한창 잘나가는 때라 이거지? 어디서 자랑 질이야, 요게, 요게."

 "아냐, 나 진짜 장난 아니고! 신경 쓰인다니까, 정말?"


 앞에 앉은 친구가 걸어온 장난에 은비는 금방 자지러졌다.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것 때문에 얼굴이 이 모양이야? 눈 충혈된 것 좀 봐."

 "완전 장난 아니지? 나 글고 다크서클도, 봐. 심하잖아."

 "누가 쳐다봐서 이렇다고?"

 "아니, 이건 다른 것 땜에."


 이유를 묻는 친구들 시선이 조금 따갑다. 그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은비는 입을 열었다.


 "요새 잠을 재대로 못자. 악몽 때문에."







 며칠 전 학원 끝나서 집에 가는 길이었어. 가는 길에 골목길 하나 거쳐야 되거든? 응, 혜미 넌 알지? 연립주택가 사이에 가로등만 줄지어 있는, 인적도 별로 없는 데.

 막 모퉁이 돌아 나가려는데 뭔가 달려들어 몸에 툭 부딪치는 거야. 아마도 사람이었을걸? 남자? 그건 모르겠어. 모습을 못 봤거든. 떠밀린 탓에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단 말야.

 왠지 몰라도 그날 이후 계속 악몽을 꿔. 내용도 매번 같아. 눈 덮인 평원 위에 누군가 있어. 주저앉은 채, 계속 울면서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그게 누군지, 대체 뭘 기다리는 건지는 알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서, 그 사람에게 내가 물어. 왜 그러느냐고. 그러면 그게,







 "다들 왔어? 반장, 인사하자."


 은비의 말은 반에 들어온 담임선생 탓에 끊어졌다. 아쉬운 듯 친구들은 정면을 향해 똑바로 앉았다. 차렷, 경례. 반장의 구령과 함께 인사를 하고, 짧은 조회가 뒤이어 시작된다. 방학 중이지만 등교 시간이 조금 미뤄졌을 뿐, 조회를 하는 것부터 매 시간 수업이 있는 것까지 평소와 같다. 야간 자습이 없어서 저녁을 먹고 하교하는 것도 방학 때만 가능한 거긴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예비 수험생인 서른 명 또래 사이에서 명현과 은비도 각자 고민 속에 그 안에 자연스레 섞여들어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한여름 어느 날이 그렇게 흘러지나갔다.







 계기가 된 사건은 한밤중에 일어났다.


 "꺄악!"


 낯익은 비명소리가 골목길 조금 안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명현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어차피 이 골목을 지나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비명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도망치는 것도 우스꽝스런 노릇이지 않은가.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명현은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상대는 여자였다. 자세히 그녀를 살펴본 명현은 여자의 모습도, 옷도 낯이 익단 걸 깨달았다.


 "괜찮아?"


 누구라고 부르려다 말고 명현은 상대를 살폈다. 겉보기엔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문득 상대가 고개를 들었다. 명현은 흠칫 놀라 조금 뒷걸음질 쳤다. 역시나 상대는 낯이 익었다.


 "명현, 이니?"


 은비 얼굴을 한, 아마도 은비 본인일 상대가 그를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잠시 멍해 있던 명현은 곧 정신을 차리곤 그녀를 부축했다.


 "일단 일어나 봐. 다친 데 없어?"

 "어, 괜찮은 것 같아."


 그녀 말대로 특별히 상처 입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스타킹 올이 조금 나간 듯했지만, 교복도 찢어진 데가 없었고 가방이나 지갑, 휴대폰도 그대로 있었다. 그제야 명현은 진작 물었어야 할 질문을 건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었어?"

 "그게, 갑자기 누군가 달려들어서,"

 "돈이라도 뺏으려던 거야?"

 "그게, 잘 모르겠어. 내가 소리를 지르고, 금방 너 오는 소리가 들리니까 도망쳐 버렸거든."


 은비 말에 명현은 조금 뜨끔해했다. 비명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먼 곳에서 들렸더라면 몸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갔을 테니까.


 "그, 그렇구나. 아무튼 잘됐다."

 "응. 그러네."

 "집에 가던 길이야? 여기 통과하면 돼?"

 "어. 그런데,"

 "내가 집 앞까지 바래다줄게. 어차피 지나가던 길이고."


 바래다준단 말에 은비는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아, 아냐. 됐어. 네가 왜."

 "방금 전 일도 있잖아. 솔직히 못 본 거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이미 봐버렸고, 또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닌걸."

 "신경써주지 않아도 돼. 정말 괜찮아."


 사양하면서도, 은비는 무언가를 계속 염두에 두는 눈치였다. 방금 전 습격한 상대에 대해 생각하는 걸까? 혹시 얼굴을 알아본 건 아닐까? 그녀의 그런 눈치가 명현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은비는 그냥 상관 말고 가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시, 명현은 그녀가 다시 습격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 된다.

 자, 어떻게 한다…….





 바래다준다, 를 선택하면 1-2. 집까지 바래다주다,로.

 바래다주지 않는다, 를 선택하면 2-2. 첫 번째 습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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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만 해봐야 아무 쓸모없고, 일단 틀은 대충 잡았으니 연재하면서 만들어가보죠;;

 예전에 썼던, <E. M. A.>를 리메이크합니다. 리메이크라곤 하지만, 상당히 뜯어고쳐서 스토리도 다르고, 인물도 조금씩 다릅니다. 인물 이름이 아예 바뀐 것도 있고요.

 총 30개 에피소드 정도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에피소드 하나당 한 화로 떨어지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선택을 넣어보았는데요, 선택이 많은 쪽으로 실제 스토리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각 에피소드별 내용은 어느 정도 다 짜놓았기 때문에, 선택하신 분기 어느 쪽으로 진행하든 문제 일어날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요;;;

 일단 첫 화는 일주일 집계 기간을 가져볼께요; 향후 추세를 봐서 주기는 3, 4일까지 줄여볼까 생각중입니다.

 소소한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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