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육즙 좋은 곰돌이

by 시우처럼 posted May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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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가방이 묵직해졌다. 소진이가 좋아하는 갈색 곰 얼굴이 새겨진 가방에서 피비릿내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어쩌면 갈색 곰은 좋은 마블링과 육즙을 가진 1등급 곰돌이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소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자신의 소중한 보물이 질퍽한 현실의 육신을 부여받는 와중에도 소진은 여전히 이쁘장한 얼굴의 두 눈썹을 약간 찌푸렸을 뿐, 감흥 없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플로어를 천천히 걸었다.


 그러한 소녀의 앞에는 소녀의 어머니, 박춘자씨가 있다. 그녀는 양손으로 한 손엔 장바구니를, 다른 한손으론 그녀의 외동아들인 동현이의 손을 꽉 움켜진 채 조금은 빨라진 걸음으로 유제품 코너 옆을 지나치는 와중이었다. 덕분에 육질 좋은 곰 한 마리를 가방에 짊어진 소진이만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놀려야 했지만 소진에겐 무엇보다도 저 장바구니, 고작 파 몇 개와 양파 등이 담긴 왜소해 보이는 춘자씨의 장바구니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전국 최대 규모 마트에선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카트 가득 쌓아올린 탐욕의 향연. 21세기 대형마트 고객이라면 누구나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의무이자 권리. 하지만 저번에도 저저번 때도, 소진이 본 그녀의 장바구니는 언제가 빈곤했고 저렴했다. 대신 그녀는 소진이의 곰돌이의 입을 벌렸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곳으로 수많은 것들이 꿀꺽꿀꺽 넘어왔다.

 

 사실 소진이 그녀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소진은 자신과 같이 사는 여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객님, 잠시만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진은 주변의 공기가 급속도로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귀에서 쿵쿵거리며 고막이 울렸다. 소진은 살짝 뒤를 살폈다. 눈길의 끝에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둘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허리춤에 무전기가 덜렁거렸다. 남자들의 성큼 다가오자 춘자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소진 역시 떨리는 시선을 붙잡고 춘자를 쫓았다. 춘자의 손에 붙잡힌 동현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소진은 당장에라도 남자의 커다란 손이 자신을 붙잡는 것 같았다. 어깨 위에서 공포가 어른거린다. 떨려오는 두 다리로 소진은 간신히 걸음을 앞으로 옮겨나갔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소리는 점점 크고 선명해졌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뒤에 그들의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소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발소리는 웅크린 소진  옆을 무심하게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아주머니!”

 

 소진을 앞지른 남자들 중 하나가 바구니를 든 춘자의 팔을 잡아챘다. 바구니 속의 물건들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쳤다.

 

 “잠깐 같이 가시죠.”

 

 두 남자 중 키 큰 남자가 춘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왜 이래요? 어딜 가자는 거죠?”
 “일단 가시죠..”

 

 뒤돌아선 춘자씨의 눈썹이 일그러져있다. 소진에겐 익숙한 표정이었지만 마음이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요?”
 “절도 혐의가 있어서요. 잠깐이면 됩니다.”
 “뭐예요?”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소진은 얼굴이 빨개져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엄마의 고함소리에 놀란 동현이가 울먹이며 춘자씨의 바지춤을 꽉 쥐었다.
 
 “이 아저씨가 생사람 잡네. 대체 내가 뭘 훔쳤다가 이래요?”
 “아무튼 일단 따라오시죠. 그리고 거기 꼬마도 따라오고.”

 

 남자의 손이 소진을 향했다.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바라보던 소진은 깜짝 놀라 남자와 춘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춘자 역시 불안하게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요? 그리고 이 팔 좀. 이거 안 놔요?”

 

 춘자씨가 악을 쓰며 자신의 팔을 잡은 남자의 손을 떼어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게 키 큰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줌마. 이거 뭔지 알죠?”

 

 키 큰 남자의 손에는 아직도 붉은 핏자국이 남아있는 스티로폼 용기가 들려있었다. 찢겨진 비닐에 바코드가 아직까지 그대로 붙어있었다.

 

 “몰라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자 키 큰 남자는 일행에게 소진을 이리 데리고 오라는 듯 턱짓을 했다. 소진은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에 도망치듯 한 두 걸음 물러났으나 결국엔 붙들려 그들 옆으로 끌려갔다. 남자는  소진이 매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저 가방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이래도 발뺌 할 겁니까?”
 “...”

 

 춘자씨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는지 얼굴만 빨갛게 달아올랐다. 소진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눈이 마주쳤다간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몰랐다.

 

 “내가 아니에요.”
 “뭐요?”

 

 소진도 갑작스러운 춘자씨의 발언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소진을 까무라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아니라고요. 저 애가 훔친 거예요. 맞아요. 내가 훔친 게 아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금 애한테 뒤집어씌우는 겁니까?”

 

 키 큰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소진도 황당한 눈빛으로 자신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춘자씨는 무슨 생각인지 계속해서 소진을 몰아세웠다. 

 

 “아까 어디 갔나 했더니. 엄마가 너 도둑질 하지 말라 그랬지. 너 도대체 언제 말 들을래. 응?”  
 
 소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춘자씨를 바라보았지만, 그런 소진을 춘자는 냉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소진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저 여자가 기어코 자신에게 모든걸 뒤집어씌울 생각인 모양이었다. 파랗게 질린 소진이 작게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춘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말이 됩니까? 애가 장난감이나 과자를 훔치면 훔쳤지 소고기 등심를 왜 훔쳐요?”
 “그럼, 직접 물어봐요. 워낙 별난 아이니까 뭐라도 안 훔치겠어요?”

 

 남자가 인상을 쓰며 춘자와 소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자신에 손에 들린 포장용기를 바라보는 듯싶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남자의 입이 움직었다.

 

 “정말... 이거... 네가 훔쳤어?”
 “...”
 
 소진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디선가 역한 썩은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서 무언가 부패하고 있었다. 하수도 물을 코앞에 들이댄 듯 역겨움이 속에서 치밀었다. 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어째서 자신보다 저 여자의 말을 더 믿는지 소진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역겹고 역겨울 뿐. 소진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흩어져 뭉텅거리며 빠져나갔다. 빠져나가서, 마침내 사막같이 말라버린 소진은 고목나무같은 심장을 찢어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훔쳤어요.”

 

 찢어진 심장에서 흘러나온 소진의 육즙이 플로어 위에서 순식간에 썩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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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작. 오늘 하루종일 붙잡고 있었지만 이게 한계.

지금이 새벽 2시가 가까운데 졸려 죽겠음. 퇴고도 안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결국 내 실력 부족이 이유.

아무튼, 후시딘과 대일밴드를 준비하고 비평을 기다리고 있겠슴.

후시딘 가지고는 택도 없을정도로 밟히겠지만 크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