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9 17:44

Lady Dragon Knight (9)

조회 수 410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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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레이야나 미르세린도 싸우실 거 에요?”

“왜?”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미르세린. 하지만 그녀도 레이야도 신전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미르세린은 그나마 움직임이 편한 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도 성직자가 싸움을 하다니…….예희는 이해되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갑자기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아, 혹시 책에 나오는 마법사들처럼 막 마법을 써서…….”

“ꄥ!”


예희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미르세린이 로고스(Logos)의 방식으로 문자를 읽어 내자 미르세린의 가볍게 움켜 쥔 왼손에서부터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화염은 검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라지면서 날이 하얀 예리한 진검을 남겼다.


“!!”

“이게 내 무기야. 멋지지.”


어린 아이의 신장정도 돼 보이는 검은 몸이 약간 넓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황갈색이라거나 검정색을 띤 손잡이에는 뿌연 기운을 내뿜는 커다란 황옥 하나가 중심을 잡고 박혀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검을 휘둘러보더니, 갑자기 예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왜 자꾸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이상한 거 보듯이.”

“저기, 성직자시잖아요.”


난데없는 질문에 미르세린은 순간 당황하는 듯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지.”

“누군가를 죽이는 건, 안 되지 않나요?”

“그딴 거 누가 정한 거래?”


오히려 미르세린이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예희는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르세린의 말은 그녀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보던 미르세린이 말했다.


“너흰 안 그래? 누가 자기를 위협해도 성직자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거야?”

“그, 그건 신고한다거나…….”

“신고라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거야? 그런 약해 빠진 정신으로 무슨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친다는 거야?”


못마땅한 듯 미르세린은 혀를 끌끌 찼다. 오히려 얘기를 꺼낸 예희가 무색해 할 정도로.


“하, 하지만…….그런 건 인간을 위하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


풀 죽은 예희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아들었으면서도 딴청을 부리는 건지 모르게 미르세린은 능글맞게 물었다. 그런 미르세린에게 예희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종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죠? 하지만 어떻게 인간을 죽이면서 인간을 위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무언가를 위한다면서, 무언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말이 돼요?”


그 말이 미르세린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미르세린의 눈매에 무서운 기세가 어리는 가 싶더니, 그녀는 매섭게 예희를 쏘아 붙이기 시작했다.


“잘 들어! 내가 지켜야 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그것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공격할 수 있어. 설령 그게 인간일지라도, 나를 위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협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을 죽일 거야.”

“그러…….그렇다면 왜, 어째서 제 몸을 찾으려는 거죠? 미르세린도, 저도 모두 살기 위해서 아닌가요?”


예희가 완전히 기가 죽은 얼굴을 하고는 미르세린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쌀쌀하기만 했다.


“만약 널 없애고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었다면, 난 차라리 그렇게 했을 거야. 너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그렇게 해 버릴 수도 있어. 왜냐면, 이 곳 사람들은 너 따위 이방인보다는 내가 더 필요하거든.”

“그것, 진심이세요?”


미르세린은 갑자기 입을 굳게 닫았다. 곁에 있던 레이야가 황급히 미르세린을 말린 것이다. 하지만, 예희는 이미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바닥을 바라보던 예희는 갑자기 배 뒤편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저, 저런…….”

“미르세린 님. 어째서 그렇게까지…….”


레이븐과 레이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멍하니 예희가 뛰어  나간 방향을 바라보던 미르세린이 그제야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어째서일까?”


어느새 무장을 마친 사람들이 서서히 갑판 앞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가운데, 미르세린은 움직일 줄 모르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레이야가 용서를 구하며 예희가 간 방향으로 뛰어 나간 뒤, 레이븐이 그녀에게 항구에 거의 닿았음을 알려준 후에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예희 씨.”


금세 예희를 찾아낸 레이야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예희는 갑판 뒤편의 커다란 통에 몸을 기댄 채 쪼그리고 앉아 있던 참이었다.


“괜찮아요?”

“…….레이야 씨라고 했죠?”


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희의 등을 어떤 방식으로 다독여 주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예희에게 말을 걸었다.


"미르세린 님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닐 거에요. 그 분은 원래 좋으신 분인 걸요."

"..."


한참 아무 말도 없던 예희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귀신 아닌 귀신이 된 뒤론, 아무도 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도 걸어 주지 않았어요.”

“…….”

“그래, 이렇게 다독여 준 건, 엄마 말고는 레이야 씨가 처음인 것 같네요.”

“어머니, 요?”


레이야가 묻자 예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엔 쓸쓸한 빛이 돌았다.


“여기 온 그 날도, 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어요. 사실, 집 안에는 아무도……없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봐요. 아니, 지금도 인정할 수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 말을 꺼냈나 봐요.”


예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레이야 씨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어요?”

“없다면, 거짓말이 될 지도 모르죠.”


예희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레이야는 빙긋 웃으며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것은 더 많이 죽여 봤어요. 드래곤에 속하는 하급 종부터, 말, 뱀…….더 작은 건 어떨 까요? 예희 씨말대로, 저는 그리고 저희는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미르세린 님은…….”


예희의 말을 레이야가 다시 가로막았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예희에게 말했다.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일지도 몰라요. 예희 씨는 어떤 세상에서 살았었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에요. 죄를 짓는 존재. 자신이 저지른 것도 아닌 죄를 평생 지고 사는 존재. 죄를 지어야만 하는 존재. 그런 것들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걸요.”


예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레이야가 말했다.


“매일 다른 약한 존재를 괴롭혀 제 힘을 확인하면서 일일이 죄책감을 느낀다면, 가뭄이 들고 질병이 일어났을 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줄 알기에 희생제를 치루지 않는다면, 저희는 신관이 될 수 없어요. 혼란한 세상에서 인간, 아니 나 자신이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죄책감도 감수해야 자신을 지킬 힘도 생기고, 아무 소용도 없을 줄 알면서도 희생제를 치룰 수 있어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걸요. 예희 씨에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에요. 어린 아이들도 무기를 다루지 못하면, 마을 밖을 나설 수 없는 불완전한 세상. 그것이 지금의 이 세상이에요..”


예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다. 정말로 레이야가 아무런 과장 없이 말한 거라면,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어떤 선량한 사람이라도, 그런 세상에선 칼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될 것이 없을 지도 모른다. 예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레이야에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알아요. 그저 천천히, 조금씩 이해해 주시면 되요.”


레이야는 그런 뒤, 품에서 자그마한 돌을 꺼냈다. 푸른 광택을 띈 정팔면체 모양의 돌은 스스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자그만 돌이 예희의 손에 와 닿자 예희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 손 위에 그대로 놓였다.


“와아!”

“후훗, 성력석이에요. 예희 씨가 마력을 다룰 줄 안다면, 그 도구가 도움이 될 거에요.”

“이거 어떻게…….”

“그냥 그 도구에 마력을 결집 시켜 쓰시면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다시 레이야는 예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 좋게 그 돌을 들여다보던 예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 레이야나 미르세린, 레이븐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아요. 다치지 않게라도, 그렇게라도 도와주겠어요.”

“미르세린 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레이야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소를 지으며 예희는 레이야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 있는 뱃머리 쪽을 향했다. 잠시 걸음을 옮기던 예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저기, 하나만 여쭤 봐도 되요?”

“네?”

“사람, 레이야가…….왜 죽은 거 에요?”


차마 죽였다는 소리까지는 하지 못한 예희가 겨우 물은 질문이었지만, 레이야는 듣지 못한 듯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희가 자꾸만 추궁하자 겨우 한 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글쎄요…….왜 죽었을까요?”


도저히 레이야가 누군가를 해코지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예희의 말에, 레이야는 어두워지는 안색을 애써 감추며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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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 9화입니다. 본래 화요일에 올렸어야 했겠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시크릿>을 올리는 건 토요일이 되겠습니다. 혹시나 보고 계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아무튼 항구에 도착해 전투를 준비하는 미르세린 일행의 모습까지 올렸습니다. 이 다음에 화려한 전투 장면이 이어져야 할 텐데...아무래도 예전에 쓸 때 그냥 생략하고 넘어간 거 같네요. 이러면 재미없는데;;;

 아무튼 다시 연재 계속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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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5.20 07:51

    헉! 미르세린 무섭네요...;;

    (뭔 타락한 성직자도 아니고...)

    하긴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든 사람 죽이는 건 큰 범죄니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5.20 16:28

     이런 세계관이라 더 그럴 수밖에 없는 면도 있긴해요; 미르세린과 신전의 구성원들이 자신들 섬의 통치와 방어 등을 지휘해왔기 때문에..


     뭐 그냥 야만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본래 의도가,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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