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미션 난이도가 꽤 있는지라, 조금 일찌감치 적어 봅니다. 아울러 지금껏 굉장한 솜씨를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도 비평 수위를 어설프게나마 높여 봤네요;; 오류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셨음 합니다^^;
이번 미션의 중점은 '개연성, 정당성의 함정에 빠지느냐, 그렇지 않고 잘 컨트롤하느냐'에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은, 다른 분들이 어떤 식으로 읽어 주셨을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 반응에 따라 제 방식이 적절히 개연성을 통제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확신할 수 있을듯하기 때문에요. 제 자신의 글에 확신 못하면서 다른 분들 글을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할 수 있는 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은 해 봤어요 ㅎㅎ;
우선 제이 님과 건천하늘 님 글은, 개연성, 정당성에 너무 집착해 함정에 빠진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미션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 자체 매력은 줄지 않았나 싶어요. 반면 다시 님과 시우처럼 님은 개연성과 정당성을 나름대로 확보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 합니다. 각 글을 살펴보면서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Mr. J님, 못난이 점백이의 원한]
- 우선 선택하신 인물, 행동 동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소 내지 전략 이 세 가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이 님의 글에서 인물은 남편 이 모씨, 동기는 과거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소로는 인물이 느끼는 좌절감, 충격의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 지난 번 쓰신 글에 이어 이번에도 글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배경을 세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물의 못난 외모, 사투리 등이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글을 쓰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 이러한 구체성은 이 글 내 정당성,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짝사랑에 실패한 좌절감, 충격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납득시키느냐에 따라 독자가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그 결과 일어난 행동이 정당했다고 동조할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말예요. 어려운 미션을 자신의 장점을 통해 극복하는 전략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 좌절감과 충격을 독자가 공감하기 위해선 적절한 고도가 필요합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주인공은 더 많이 추락하게 되고, 독자는 더 절실하게 그의 좌절감을 공감하게 될 테니까요. 초반부 과거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 것은, 서서히 분위기를 끌어 올리며 그 고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요컨대, 제이 님은 그 특유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 행동의 개연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셨고, 그러기 위해 사용한 전략은 정석적이다 싶을 정도로 적절했다는 거죠.
- '개연성의 함정에 빠졌다'고 제가 판단하는 것은, 이 글 전체가 주인공 한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변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행동 동기를 설명하는 것 이외에 이 글은 어떠한 다른 목적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정도 사연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당연하잖아, 라고 설득하는 것 외에 독립된 글로써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 과거 사랑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 건 좋은 전략이었지만, 한편으론 이야기를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신파적인 변명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게 아닌가 싶어요. 지난 글에서 보여 주셨던 날카로운 재기가 이번 글에선 무뎌진 듯 합니다. 결말에서 일상에서의 공교로운 우연을 보여 주면서 그 재기가 살아나는 듯 하지만, 미션에 의해 정해진 결말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건천하늘 님, 바른 사나이]
- 제이 님 글과 마찬가지로, 인물, 동기, 정당성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20대 대학생이 주인공이고, 행동 동기는 정의감 내지 고지식함,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소는 엄격한 할아버지의 교육, 기사나 친구 같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라고 생각됩니다.
- 미리 살펴본 대로, 주인공은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바른, 혹은 정의로운 사나이'입니다. 그 근거를, 하늘 님은 주인공 주변 사람들의 입으로 증언해주셨죠. 지난 글과는 달리, 이번 글에서 친구나 기사 등 인물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주인공의 성격을 대신 증명하는 건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 아울러 주인공의 성격은 그 자신의 과거 회상을 통해서도 정당화됩니다. 엄격한 할아버지에 의해 받은 교육이 자라서도 행동에 그대로 묻어나는 거죠. 글 후반에 주인공이 싸움에 끼어드는 데에도, 할아버지란 존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 할아버지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데에서, 문득 '초자아'라는 개념을 떠올렸어요. 할아버지는 분명히 주인공의 초자아 역할을 하면서 행동 동기를 제시하고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이 듭니다. 이상주의에 가까운 고지식함, 그 고고함과 엄격함 탓에 더욱 그렇다 싶어요.
- '할아버지 = 초자아'라면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제가 심리학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심리학에서 '초자아'는 개인의 내면에서 쉽게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본능과 갈등하며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현실적 타협인 '자아'를 탄생시키는 존재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주인공은 내면의 '할아버지'에 지나치게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갈등해야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보다 심하게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그 와중에 현실적인 행동 방안을 떠올려 선택했어야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 글은 소설로선 너무 '모범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초자아가 주인공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개연성에 지나치게 매달린 결과 같습니다.
[다시 님, 일반 사회]
- 선택하신 인물은 경찰, 동기는 병적인 성격,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소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그 구조 자체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님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히는 데에는 이 동기와 정당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싶어요.
- 인물의 행동 동기를 병적인 성격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병적인 성격'은 주인공 인물의 행동 동기라기보단 사건을 일으킨 남자의 행동 동기로 보이지요. 주인공 인물은 단지 이 남자의 특이한 성격에 관심을 보일 뿐입니다. 경찰의 말을 인용해 볼께요.'역시 이런 엽기적인 사건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군.'
- 이 글은 신문 기사 두 편을 그대로 가져와 전문을 인용합니다. 마치 신문 기사를 가지고 낸 미션에 신문 기사로 답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기사 내용은 전부 경찰의 말에 따르면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벌이는 엽기적인 사건들을 경찰은 오락거리처럼 즐깁니다. 때문에 가해자의 다혈질적 성격에도 관심을 보이고요.
- 그러다 마지막 반전. 사실 단편에서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 건 잘 알려진 전략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그런 전략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이 글의 반전은 굉장히 탁월한 면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엽기 행동을 즐기던 경찰 자신이, 바로 그 엽기적 사건을 일으키는 '특별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게 밝혀지니까요. 사람들의 병적 성격을 비웃던 자신이 바로 그 병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라는 구조를 통해 글은 진짜 주인공의 행동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합니다.
- 단순한 '병적인 성격'이 행동 동기가 아니라, '병적인 성격으로 가장한 보편성'이 행동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 글은 충격적입니다. 무슨 의미냐면, 소설 속 경찰과 같이 엽기 기사를 보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라고 말하던 독자들에게, '실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거야'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섬뜩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란 생각이 드는 거에요. 휴대폰으로건, 컴퓨터로건 우리는 자주 인터넷 기사를 읽고 엽기적인 사건들에 혐오감을 표출하면서도 은근히 기꺼워합니다. 스스로도 그럴 만한 동기가 있다면 언제라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요. 이 글은 그 점을 찌르면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독자가 의식하지 못한 일상적 행동을 비판하면서 이 글은 정당성을 얻고, 이를 통해 개연성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소설 그 자체의 재미를 확보해냈다고 생각합니다.
- 이 비평 글을 보면서, 어떤 분은 경찰 역시 '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결말에 이르기 전 이미 나와 있었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한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그러한데요. 저는 이 부분을, 글의 전체 구조를 강조하는 복선으로 해석했습니다. 주인공 경찰이 실은 이상 성격을 가진 건지도 몰라, 라는 암시를 주고 결말에서 사실을 분명히 밝힌 걸로요. 글쎄요, 미리 짐작할 거리를 남겨놓은 탓에 결말에서의 충격이 다소 약해졌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상당히 탁월하지만, 미션을 수행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미션의 의도는 분명 사건을 등장 인물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라는 거였죠. '버스 안에서 일어난 기이한 폭행 사건' 기사가 제시문이었고요.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시우 님의 의도는 글을 쓰는 우리가 버스 안에서 당사자들에게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을 개성 있는 각자의 시각과 이야기로 풀어내길 바라신 게 아닌가 싶어요. 다시 님의 글은 버스 밖에서,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관계자 외'의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굉장히 짧게,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현장에 있던 '당사자' 가해자의 목소리도 불과 한 줄로 다루어 그 비중을 적게 두고 있고요. 미션의 의도와 취지에 부합이 될지는 조금 의문이 남습니다.
[시우처럼 님, 그 날 34번 버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 시우 님 글을 까려면 제가 비판 수위를 보다 더 높이던가, 아니면 공부를 엄청 하던가 둘 중 하나밖에 방법이 없는 듯 합니다.
- 20대 대학생을 선택하셨고, 행동 동기는 비동의하 실험 중 사고를 무마하는 것,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소들은 'Why', 그러니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인 듯 합니다.
- 이 글은 굉장히 이유에 집착하는 글입니다. 당사자들 동의 없이 실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실험 대상이 하필이면 '그들'이었어야 하는 이유, 실험 중 주인공 자신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등, 이유에 대한 강박증적인 집착이 이 글의 개연성과 정당성을 창조해 냈다고 할 수 있겟습니다. 철저히 'Why'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글의 구조는 단단하고, 주인공의, 어찌보면 부도덕한 행위는 정당성과 함께 동정의 여지를 확보합니다.
- 이렇게까지 이 글이 이유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건, 글의 소재 탓일 겁니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을 통제하는 기구'를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양 만들기 위해선 정교하게 짠 튼튼한 구조로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신제이 님이 강의란에 올려 주신 말 중, '불가능>불가재不可在>가재可在>필연의 네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불가능'을 '필연'으로 만드는 연금술과 유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연금술이란 건 소설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 개연성에 집착하면서도 이 글이 함정에 빠지지 않은 건, 독특한 소재로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잘 해낸 탓으로 보여집니다. '감정을 조종하는 장치'가 남자를 통제해 사건을 일으켰다, 란 변명에서 그치지 않고,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 악전고투해가면서 사건을 무마시키려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미묘한 줄타기를 잘 해낸 글이라고 생각되네요.
- 사족입니다만, 당사자 동의 없는, 혹은 당사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비윤리적 내지 불법적인 실험이란 소재가 눈에 띄었습니다. 글에 대한 비평이나 감상 대상은 아니었지만요.
위와 같은 이유로, 이번엔 시우 님을 1등으로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분은 다시 님. 영리하게 쓴 글이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미션 제시한 사람이라면 그런 글을 바란 건 아닐 거 같아서요. 시우 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독자가 원하는 바를 읽고 해결해주는 것도 글 쓰는 사람이 해줘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션을 떠나서 제 자신은 정말 즐겁게 읽었네요^^;
Who's 윤주[尹主]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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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한 인물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것이 아니었죠. 한 인물을 본보기로 사회의 속성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썼으니 미션하곤 다소 어긋난 부분이 있었네요. 요즘 글이 점점 짧아집니다. 안그래도 마지막에 미적지근하게 마무리 된다고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 느낌이 좋아서......잘 표현은 안되는 것 같지만 ㅋㅋ
오늘 비평은 정말 기분 좋은데요 ㅋ 하지만 저는 한참있다 올리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