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아서 한 주 쉬었을 뿐입니다. 제가 비평계를 그만 뒀다고 생각하심 곤란합니다. ㅋ
아무튼, 글도 올리지 않았는데 비평에 참여하는 것은 자칫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던 찰나에
다시님의 격려와 독촉으로 염치불구 비평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생각해봐도 역시 이건 형평성에 맞질 않아요.
올린 글이 없으니 저만 안전한 위치에 서서 다른 분들 글만 공격하는 셈인데
이렇게 얍삽하고 치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래서는 도리상 올려주신 글들의 좋은 부분을 짚어드리는 그런 아름답고 훈훈한 비평문을 써야할터인데
안타깝게도 제 눈과 마음이 교정불가능한 불치의 선천적 네가티브 증세를 앓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저질 지적질로 점칠된 글을 올리게 됨을 미리 사과드립니다.
다시님의 '마지막 한방'
- 제가 원래 세기말 우주 판타지를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부터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글이였습니다만, 역시 언제나처럼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왜 다시님의 글은 항상 결말이 이렇게 허무할까요. 지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과 고향과 친구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버리는데, 어떻게 주인공은 그런 비극적인 순간에 썰렁한 노래나 부르고 있을 수 있죠? 정말 황당함의 극치였습니다. 그러한 결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어떤 의미심장함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말을 쓰실때 좀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앞의 인상이 좋다고 하더라도 결말이 좋지 않으면 모든 인상이 흐려지게 됩니다. 오히려 인상까지 지푸리게 만들지요. 단편문학상을 받은 글들을 한번 참고해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결말을 마무리 짓는지 확인해보시면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 그리고 저번에도 말씀드렸는데 글에서 상표 이름을 좀 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중간에 나온 우주선과 관련된 상표의 사용은 윤주님의 말씀처럼 비유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어서 글의 깊이감을 더했지만, 앞에나온 겔럭시탭은 도대체 왜 나온겁니까? 궂이 나올필요가 있었나요? 게다가 겔럭시텝도 아니고 겔텝이라니... 상표명을 사용해야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일반적인 상품군이름을 사용하셨으면 합니다. 윤주님 말씀처럼 테블릿PC라고 했어도 의미가 전달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예를들어 다음 두 글
1. 나는 오늘도 삼성 레미안 103동 503호의 안방 침대에서 일어났다. 에이스 침대 덕분인지 몸이 참 개운하다. 아침식사전 모닝커피로 맥심 목화골드를 한잔 마시고 LG 지펠 홈바에서 꺼낸 미밋메이드 오랜지 주스를 마셨다. 아침식사는 파리바게트에서 사온 식빵을 토스트해서 이마트에서 사온 매일우유와 함께 먹기로 했다. 테팔 후라이펜에 계란 후라이를 해서 토스트랑 같이 먹으면 속이 조금은 든든할 것 같았다.
2. 나는 오늘도 안방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몸이 개운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신나는 오랜지주스를 마시고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후라이펜에서 계란후라이가 익어간다. 이정도면 아침 식사는 꾀나 진수성찬인 셈이다.
위의 두 글은 의미 전달에 있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1번 글을 통해 상표와 브랜드에 묻혀 사는 현대인을 풍자하려 했다면 그것 역시 의미가 있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상표를 나열하는 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 끝으로 글에서 인물의 상실감이 어디에 드러나나요? 아니 심리 자체가 어디에 드러나는지요. 그저 사건위주의 전개가 있을 뿐이네요. 저는 분명히 인물의 심리를 묘사해 달라고 했었는데 말이죠.
윤주님의 '어느 박애주의자의 식사'
- 윤주님의 글은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신의 다리를 먹는 환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 자체도 완성도가 높아서 비평할 사항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처럼 설정상의 궁금증 위주로 비평을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일단 의사가 환자가 먹는 것을 통제하지 않는 모습이 의야했습니다. 아무리 그것만 먹을 수 있다고 해도 환자에게 인육 곰탕을 먹이는 것을 방치하다니. 솔직히 인간 역시 동물인지라 먹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만, 제가 병원에서 한달 가깝게 금식을 해봐서 아는데 포도당이나, 단백질, 아미노산 링겔등을 맞으면 큰 무리없이 버틸 수 있더군요. 제 생각엔 곰탕을 뺏으려는 의사와 환자간의 갈등이 다뤄지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그리고 이것 역시 설정상의 문제인데, 남자는 그러니까 전기톱으로 자신의 다리를 잘라낸다음 그걸 냄비통에 그대로 집어넣은 셈이죠?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다리를 삶아버리면 곰국이 아니라 선짓국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맑고 뽀얀 곰국을 끓여내기 위해서는 일단 다리를 갈고리에 꺼꾸로 매달아 고인 피를 빼낸다음 맑은 물에 담궈 남은 핏물을 빼내고 그 다음에 끓여야 맑은 곰국을 우려낼 수 있습니다. 물론 노린내가 날테니 향신료도 첨가해야 할테구요. 그런데 남자는 자신의 생다리를 끊어낸 상태인지라 그런 세밀한 작업을 할 여지가 있지는 않았을테니 다른 방법을 사용하셨으면 이야기의 설득력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끝으로,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남자가 자신의 몸에 있는 세포들 까지 타인의 범주속에 집어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몸은 세포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포와 세포는 서로다른 객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세포하나하나가 모두 타인이라고 상정하는 거지요. 그런 상황을 바탕으로 글을 풀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건천하늘님의 '사진과 검은 선'
- 건천님의 이번 글은 어떤 일기나 수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핵심적 사건이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의 일과를 쭉 풀어나간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글의 중심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였달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 글 전체적으로도 인물이 상실감이 드러나는 부분을 찾아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부분,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주인공이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곤 주인공의 감정이 너무도 감춰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죽어도 연애인이 죽어도, 같은 아파트의 할머니가 죽어도 주인공은 계속 침착하고 감정적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조금은 삭막해 보였습니다. 다시말해 글을 전반적으로 보면 상실감이 드러난 글이라기보다는 '상실' 그 자체의 사건 위주로 글이 풀어진 것 같아요. 감정이 절제된 결과겠죠. 물론 담담하게 풀어나감으로써 그런 비극적인 느낌을 더 살릴 수도 있겠지만 상실에 대처하는 인물의 심리묘사를 중점적으로 다뤄달라고 제시했던 이번 미션에 대해서는 조금은 어긋나지 않았나 싶네요. 혹시 글의 내용은 시니컬하고 냉담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상실에 대한 두려움 공포의 감정이 누적되어 오다가 늙어버린 부모님 얼굴을 보고 잠재되어 있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건가요?
- 마지막으로 제목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건가요? 본문을 읽어도 사진이나 검은 선에 대해서는 언급되질 않은 것 같아서요.
언제나처럼 허접한 비평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턱이 없으니 기분 나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무시해 주시면 되는 겁니다. ㅋ;;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