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노래>, 그래도 작가는 악마를 닮아야 한다.

by 윤주[尹主] posted Mar 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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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사악해야 합니다. 비록 그가 쓰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지만요. 선한 작가는 선한 세계, 선한 인물밖에 그려낼 수 없지만, 악한 작가는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 양쪽을 모두 그려낼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위선이라고 해도.


 최근 완결된 <별의 노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지나치게 착해선 안 됩니다. 선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시련을 주는 데 인색하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시련과 갈등 없이는 재미를 주는 데 한계가 있고요.


 <별의 노래>는 강진영, 유세나, 최은영 세 주인공 각각의 시점에서, 가상의 과학고등학교 학생들 사이 사랑과 우정, 일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초반부는 주로 강원도 출신에 소탈한 성격인 여주인공 은영을 중심으로, 후반부는 겉보기엔 차가워 보이지만 책임감 있고 배려심 많은 남자애 진영과, 도도한 성격에 낭만적인 구석도 있는 공주님 세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통속적이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청춘 드라마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장편인 데다 같은 사건을 세 사람 시점에서 반복해 보여주기 때문에 분량은 제법 많습니다. 진영 시점인 화가 31편, 세나 시점이 30편, 은영 시점이 28편인 데다 외전 형태로, 세 주인공 이외 등장인물 중심인 화가 몇 화 더 있습니다. 1인칭 시점 소설이기 때문에 매 화별 주인공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른 화에 없던 장면이 있는 경우도, 다른 화엔 있지만 없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런 시점은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각자가 사연 한둘은 감추고 있는 이 소설에서 이 같은 시점은 인물들을 보다 비밀스럽게 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지루할 수 있는데, 같은 장면, 같은 대사를 세 차례 반복해 보여줘 질릴 법도 하단 생각이 듭니다.(제가 아는 혹자는, 이처럼 1인칭 시점을 이용한 것 중 이언 피어스의 소설 <핑거포스트 1663>가 참고할 만 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에 대해 첫 번째 사람이 이야기, 두 번째 사람이 첫 사람 이야기를 수정, 보완,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앞선 두 사람 이야기를 모두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곤 했지만, 정작 저는 읽어보지 못해서;;)


 하지만 무엇보다 <별의 노래>는 인상이 약한 글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악역이라도 일정 선 이상을 넘지 않기에 갈등이 일어나도 쉽게 해소됩니다. 따라서 주연 인물들이 겪는 시련은 그리 크지 않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글쎄, 애초부터 제가 글을 잘못 읽고 엉뚱한 기대를 한 건지도 모릅니다. 초반부 은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처음에 다툼으로 시작한 은영과 진영 사이가 차차 발전해가는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해감에 따라 두 사람이 알지 못하던 그들 사이 관계가 밝혀져가며 제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발전했습니다. 은영도, 진영도, 그리고 세나도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해피 엔딩으로,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선은(그것이 나이가 되었건, 사회 통념이 되었건) 건드리지 않는 결말로 말이죠.


 그렇다해도 누군가는, 상처도 입고 그것을 극복해가면서 성장했어야 한단 생각이 듭니다. 다소 뻔한 얘기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사랑을 성취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해 괴로워해도 보는 그런 이야기였다면 보다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애정을 갖고 창조한 분신 같은 캐릭터를 괴롭힌다는 게, 작가 입장에선 꺼려질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작가들이 자기 캐릭터 괴롭히기를 포기했더라면 그 수많은 걸작들, <폭풍의 언덕>이나 <광장>같은 이야기를 지금 우리가 볼 수는 없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담아 만들어낸 자기 캐릭터를 모질게 휘두르고 시련을 주고 괴롭힐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게 진행시킨 <별의 노래>는 분명 잘 쓰여진 글입니다. 다만 조금 더 등장인물들에게 가혹했더라면 보는 입장에선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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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어 님 <별의 노래> 완결 기념으로, 멋대로 적은 비평입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몰라도, <별의 노래>는 잘 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멋대로 이해하고, 멋대로 기대한 걸 적어보았을 뿐이죠;
 ...이거 클레어 님한테 폐가 되었을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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