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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사악해야 합니다. 비록 그가 쓰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지만요. 선한 작가는 선한 세계, 선한 인물밖에 그려낼 수 없지만, 악한 작가는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 양쪽을 모두 그려낼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위선이라고 해도.


 최근 완결된 <별의 노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지나치게 착해선 안 됩니다. 선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시련을 주는 데 인색하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시련과 갈등 없이는 재미를 주는 데 한계가 있고요.


 <별의 노래>는 강진영, 유세나, 최은영 세 주인공 각각의 시점에서, 가상의 과학고등학교 학생들 사이 사랑과 우정, 일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초반부는 주로 강원도 출신에 소탈한 성격인 여주인공 은영을 중심으로, 후반부는 겉보기엔 차가워 보이지만 책임감 있고 배려심 많은 남자애 진영과, 도도한 성격에 낭만적인 구석도 있는 공주님 세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통속적이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청춘 드라마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장편인 데다 같은 사건을 세 사람 시점에서 반복해 보여주기 때문에 분량은 제법 많습니다. 진영 시점인 화가 31편, 세나 시점이 30편, 은영 시점이 28편인 데다 외전 형태로, 세 주인공 이외 등장인물 중심인 화가 몇 화 더 있습니다. 1인칭 시점 소설이기 때문에 매 화별 주인공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른 화에 없던 장면이 있는 경우도, 다른 화엔 있지만 없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런 시점은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각자가 사연 한둘은 감추고 있는 이 소설에서 이 같은 시점은 인물들을 보다 비밀스럽게 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지루할 수 있는데, 같은 장면, 같은 대사를 세 차례 반복해 보여줘 질릴 법도 하단 생각이 듭니다.(제가 아는 혹자는, 이처럼 1인칭 시점을 이용한 것 중 이언 피어스의 소설 <핑거포스트 1663>가 참고할 만 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에 대해 첫 번째 사람이 이야기, 두 번째 사람이 첫 사람 이야기를 수정, 보완,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앞선 두 사람 이야기를 모두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곤 했지만, 정작 저는 읽어보지 못해서;;)


 하지만 무엇보다 <별의 노래>는 인상이 약한 글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악역이라도 일정 선 이상을 넘지 않기에 갈등이 일어나도 쉽게 해소됩니다. 따라서 주연 인물들이 겪는 시련은 그리 크지 않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글쎄, 애초부터 제가 글을 잘못 읽고 엉뚱한 기대를 한 건지도 모릅니다. 초반부 은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처음에 다툼으로 시작한 은영과 진영 사이가 차차 발전해가는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해감에 따라 두 사람이 알지 못하던 그들 사이 관계가 밝혀져가며 제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발전했습니다. 은영도, 진영도, 그리고 세나도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해피 엔딩으로,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선은(그것이 나이가 되었건, 사회 통념이 되었건) 건드리지 않는 결말로 말이죠.


 그렇다해도 누군가는, 상처도 입고 그것을 극복해가면서 성장했어야 한단 생각이 듭니다. 다소 뻔한 얘기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사랑을 성취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해 괴로워해도 보는 그런 이야기였다면 보다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애정을 갖고 창조한 분신 같은 캐릭터를 괴롭힌다는 게, 작가 입장에선 꺼려질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작가들이 자기 캐릭터 괴롭히기를 포기했더라면 그 수많은 걸작들, <폭풍의 언덕>이나 <광장>같은 이야기를 지금 우리가 볼 수는 없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담아 만들어낸 자기 캐릭터를 모질게 휘두르고 시련을 주고 괴롭힐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게 진행시킨 <별의 노래>는 분명 잘 쓰여진 글입니다. 다만 조금 더 등장인물들에게 가혹했더라면 보는 입장에선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

 클레어 님 <별의 노래> 완결 기념으로, 멋대로 적은 비평입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몰라도, <별의 노래>는 잘 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멋대로 이해하고, 멋대로 기대한 걸 적어보았을 뿐이죠;
 ...이거 클레어 님한테 폐가 되었을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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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3.31 04:58

    아앗, 좀 민망하네요...;;

    제 소설이 약간 그런 데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은 듭니다...;;

    아마 다음에 소설을 쓰게 되면 좀 더 현실적으로 써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졸지에 '별의 노래'가 청소년 동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흐음... 사실 저도 좀 독한 이야기 쓸 수 있지만... 차마 올릴 수 없다보니 ㅠㅠ

    (약간 잔인한 면도 있으니...)

    [그래도 막장이란 소리는 듣기 싫었답니다 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1.03.31 06:13

     민망하다뇨 ㅎㅎ


     사실 <별의 노래> 보면서, 또 이 글 쓰면서 스스로도 이런저런 생각 많이 해봤습니다. 제 소설도 어울리지 않게 동화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진 않는지, 너무 캐릭터들을 과잉보호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고 또 아무 선후관계도 없이 막장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 자기 쓰는 글이 막장이 되는 건 누구나 싫고, 게다가 클레어 님은 애정이 많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글에 대해서나, 캐릭터에 대해서나요.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몸을 사리게 되신 게 아닌가 추측해 봤어요. 비평이라고 올린 이 글은, 그런 제멋대로 추측을 가지고 쓴 거네요.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시길;;;


     어쩌면 좀 독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가 어쩌면 딱 좋은 정도일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완결 축하드립니다. 다음 번에도 재미있는 글 들고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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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2011.03.31 13:05

    보노보노도 명작 아닐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3.31 15:33

     그런 부분도 생각해보긴 했습니다;


     확실히 작가가 굳이 사악하지 않아도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보노보노>같은 경우는 특히나, 특별히 작가가 악하다고 느껴지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의 시각을 끌어당기죠;


     근데 제 생각이 짧은 탓인지, 작가가 악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이야기들 중에서 유독 장편의 긴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단편, 실험적인 이야기들 중에선 찾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작가는 모진 시련을 준비하고, 선한 인물들을 휘두르고, 용서하지 못할 인물들을 이용합니다. <홍길동전>, 과거 한국의 군담류 소설부터 귀여니의 로맨스 소설들, 현대의 막장 드라마들까지 대개 그렇지 않을까요? 최근 읽은 공지영 씨 소설에서도, 선한 인물들에게 부여되는 시련을 통해 인물들이 공감하고 성숙하는 내용이 주였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위기 부여와 극복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본능적으로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다시 2011.03.31 18:46

    보노보노는 명작이지만 많이 특수한 작품이긴 하네요 이런 성격의 만화는 4컷 개그만화에 어울리고 또 인물간의 관계도 얇은 편이니까 별의 노래랑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 profile
    클레어^^ 2011.04.01 07:11

    아마 '별의 노래'는 몇년 전에 했던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시리즈와 비슷할지도...

    (옥림이 아라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그 드라마)

    아닌가? 거기는 좀 더 현실적이었으니...;;(2탄에서 실업계 고등학교 비하 논란이 있었다 하니... 전 개인적으로 3탄에서 옥림이가 대학생 되어 나오는 걸로 상상했지만, 3탄은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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