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4 06:13

[쌀 사러 가요.]-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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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러 가요.]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친 것은 오늘 아침 해가 뜨기 전이었다. 먹구름이 자신의 잔여물을 세상에 모두 뱉어내고 사라진 다음,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민 태양은 4월의 봄 날씨 답지 않은 뜨거운 햇살로 '오늘 좀 더울지도 몰라.'라고 말 하는 것 같았다.

  봄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사라진 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았다. 상쾌한 아침공기와 비온 뒤 쌀쌀해진 기운을 물리는 햇살이 세상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아침이었다.

  그런 아침이었는데...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하늘은 맑고 푸르고 주변은 완연한 봄기운에 왠지 모를 상승곡선의 리듬을 느끼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날 하루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그렇게 순탄하고 평탄하게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는 저 하늘 어딘가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부처님, 하느님, 예수님의 너 오늘 재수 없음. 그렇게 아셈.’라는 비웃음 한 방에 날아갈 기대치인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이 수십억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난 이 어린양이 생각하는 것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변수가 있음을 친히 가르쳐 전도 해 주실 량으로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찌그러져 있는 물체의 주인이 본임임을 자각 시켜준다.

  "에또. 그러니까 어디 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인데..."

  그렇다. 언젠가 영화 헐크에서 나온 장면에 차체를 종잇장처럼 구겨 짝. . . 삼세번 박수를 쳐대던 헐크의 모습이 떠올랐다. 괴력의 헐크의 손이 스쳐지나간 흔적이 눈앞의 '이거 내 차 맞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휴대전화 번호가 붙은 창문과 함께 두 눈에 번갈아 가며 상을 맺는다.

  출고되어 차키가 손에 쥐어진지 10일이 채 지나지 않은 자신의 애마가 어찌 이 꼴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맞은편에 안절부절 하며 앞 범퍼가 주저 않은 차량의 주인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뇌에서 생성되어 가슴을 타고 뱃속으로 내려가 그 형태를 완성해 다시 식도를 타고 올라온 뒤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내 뱉어져 언어파괴의 한 행위를 (내 뱉는 순간 인격파괴추가 라는 보너스가 있다.) 하게 될 단어를 가까스로 참아내어 목 언저리에 잘 접어 정리해 둔다. 멀쩡히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를 '놀이동산 범퍼카'로 착각하신 여자에게 말을 걸어 본다.

  "차 주인이세요?"

  "아. 어쩌죠? 어떻게 하죠?"

  아아. 그걸 나한테 물어서 어쩌라는 걸까. 이 여자는 이미 정신공황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허둥대는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더 짜증이 났다. '자애로우신 성모님 예수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이 어린양은 반대쪽 뺨을 내밀 수 없는 속 좁은 양이라고..'

  "아니. 어떻게 운전하면 멀쩡히 서있는 차를 이 지경이 되도록 들이 박습니까? 여자가 집..."

  어이쿠, 잘 끊었다.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운전은 무슨...'이라는 말을 했다간 여성비하 발언으로 전국의 아줌마 부대는 물론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

  "여자가.. 여자라고 그냥 봐줄 정도가 아니잖아요."

  "흑.. 그렇죠? 이건 좀 심했죠? 죄송해요. 밥을 하려는데 쌀이 떨어져서 마트에 쌀을 사러 가다가 그만 기어를 잘 못 넣어서."

  아. .. 밥하려면 쌀이 필요하지 쌀을 사려면 마트에 가야하고 여기서 마트를 걸어서 가기엔 조금 멀지 쌀까지 들고 오려면... 이 아니라 왜 자신이 상대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여자를 나무라며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차가 찌그러진 것은 가슴이 아팠지만 상대 여자 역시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부처님 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해주자. 어차피 보험처리 하면 문제는 해결 될 것이고 눈앞의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못하겠다. 무엇보다 늦은 아침을 먹으려 준비하다 내려온 터라 나는 배가 고프다.

  "보험처리 하도록 하죠. 초보이신 듯 한데 이럴 경우에 잘 모르시면 그냥 보험처리 하시는 게 믿을 만하고 안심될 거에요."

  무어라 화를 낼 줄 알았는지 입을 떼자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는 여자가 왠지 가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어느새 목 언저리에 접어둔 것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잠시 후 서로의 보험사에서 차량을 견인해 가고 다시 둘만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시간은 이미 점심때가 되었다.

  "아.. 아침도 못 먹었네..."

  일이 어떻게 마무리 되자 배가 고파졌다. 혼잣말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응? 이 여자 왜 안가고 여기 이러고 있는 거지? 쭈뼛쭈뼛 거리는 모습이 뭐 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여자한테 실례라고?)

  "저. 저기.. 배....."

  돌아선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말에 멈추었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라도 들었나. . 혹시 미안해서 밥이라도 사겠다던가하는 그런 건가?

  "예. 배고..."

  "106호에 사시는 분이죠!"

  쯧. 애꿎은 하늘만 올려봤다.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그.. 그런데요." 머쓱해져 대답했다.

  "전 107호에 살아요."

  이 여자 A형이다. 그리고 엄청 내성적이다. 말하는 투가 그렇다. 그리고 내 몸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고 소리치고 있다.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그래. 여자한테 실례하는 난 무례한 이다.) 꾸물거리는 것이 마냥 답답해 보였다.

  "아. 그래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뭐. 맞은편 집에 살고 있는 여자라는 건 몰랐지만 간간히 출근 할 때 본적이 있는 얼굴이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출근 할 때 마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 친 것 같긴 하다.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꿀 같은 휴일의 1/3이 영양가 없이 지나갔다. ‘에라이.. 어차피 밖에 나갈 일도 없는데 밥 먹고 잠이나 자자.’ 그런데 어쩐지 뒤가 찜찜하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쌀 사러 나온 여자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어라. 저런 얼굴도 하네.’ 괜히 눈이 마주치고 쭈뼛해져서 말을 건다.

  "무.. 무슨 더 할 말이라도..."

  여자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음을 굳힌 듯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쌀 좀 사러 같이 가주세요! 무거워서 혼자 들고 올 수 없어요!"

  "하아?"

  힘차게 말한 그녀의 말을 들은 자신은 멍하니 그저 멍해져 있을 뿐이었다. ‘이봐 그런 뜬금 없는 말을 그렇게 힘차게 말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힐끔 하늘을 봤다. ‘비웃는 것 같지는 않고..’

  "도.. 도와주신다면 점.. 점심해 드릴게요."

  이 여자 뭐래? 하늘이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고 어차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 해보았자 절대 이해 불가능 하다는 것은 이미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확실한 건 배가 고프긴 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도 이상한 상황이란 걸 이 여자도 알고 있는 것인지 또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메뉴는...?"

  "닭볶음탕이요!"

  내 물음이 뜻밖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한다. 닭볶음탕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으니 쌀 운반의 노동력과 닭볶음탕이라면...

  "콜.. 가죠.”

  자신의 차를 들이 박은 쌀녀의 옆으로 갔다. 깜짝 놀라며 슬며시 옆으로 살짝 비켜선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조금 전 내가 좀 무서웠었나 보다. 아무렴 어떠한 가 난 지금 배가 고프니 밥만 해준다면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말없이 마트로 걸었다.

  무료한 휴일의 무료한 아침을 무료하게 보내던 중에 약간의 해프닝으로 마트에 쌀까지 사러 가게 된 자신의 입장은 이미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무료하지 않은 표정으로 걸었다. 그런 자신의 옆을 걷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왠지 웃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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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로시 입니다.

요즘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맨날 눈팅만 하고 있네요.

스마트 폰으론 왠지 글이 써지지 않아서...=ㅅ=;

점심시간에 갑자기 작년에 접촉 사고 났던 것이 생각나서

써보았습니다.

연필을 다 써버려서 연필을 사러 가야할 것 같네요. ^^;

?
  • profile
    윤주[尹主] 2011.04.24 06:27

     이번 글도 재미있네요. 유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커플 이야기라면, 혹시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ㅎㅎ

  • ?
    Roci 2011.04.24 06:48

    감사합니다. ^^

    지금 계신가보군요. 올려놓고 수정중이었는데 댓글이 달려있는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꽁트 형식으로 급하게 짜낸 스토리라 이후 이야기는 사실

    없다고 보시면 되요. 경험담을 좀 짜낸 이야기인 지라 사실 현실에선 아가씨가

    아닌 아줌마 였습니다. -_-;;;  현실은 냉정해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4.24 07:24

     현실 ㅠㅠ


     역시 사실에 거짓을 살짝 섞는 것만큼 사실적인 이야기는 없나 봅니다. 그만큼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이 글은 리얼리티만큼이나, 주인공 쾌활한 서술투가 분위기를 살린 것도 좋았어요. 급하게 짜내신 거라지만 잘 된 글이지 싶어요, 제 생각엔^^

  • profile
    클레어^^ 2011.04.25 07:25

    커헉! 스, 스마트폰...[클레어는 그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옆집(?) 여자가 은근히 뻔뻔한 구석이 있는 듯 하네요? 내가 잘못 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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