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6 08:25

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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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 형, 그 사람(사실 얘 이름을 아직 못정했어요.)

나이: 19살. 근데 자퇴를 늦게 하는 바람에 수능을 내년에 쳐야하는 비운의 19살.

스캐너 고치면 완성해서 올릴거에요 ㅠㅠㅠㅠㅠㅠㅠ

 

제목: 절명(絶命)

 

#1. 내가 사랑하는 사람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그는 이제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지. 야자를 하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놀란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의 머리카락은 고등학생 또래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긴 편이다. 자기도 불편해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자를 생각은 없는 듯하다. 나는 그가 잘생긴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연예인들만큼 잘생긴 게 아니라는 이유로 평범하다고 말한다. 옆에서 본 모습은 그의 모습 중 가장 멋있지만 요즘은 머리카락에 다 가려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그리 마른 체형은 아님에도 생각보다 힘이 약하다. 편식이 심해서 일까.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편식을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 보면 난 역시 그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 심호흡을 한다. 무척이나 사랑스런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던 나에 비해 그는 꽤 예민하다. 놀라게 해주려면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4층짜리 건물 중 우리 집은 3층에 있다. 4층에 방 하나가 있는데 다락방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4층 방에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는 쓰지 못한다. 2층 계단에 있는 문을 열고 올라갔다. 그 문을 열 때 소리가 크게 나서 그가 알아챘을 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2층 계단의 문과 현관문은 같은 열쇠를 쓴다. 천천히 넣고 돌리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안에서 TV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들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있는 방의 문틈 사이로 누워서 TV를 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요즘 또래와는 다르게 예능프로보다는 뉴스를 주로 보는 편이다.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는 놀라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옆방으로 가는 구석에 숨는다. 다행히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가 화장실로 향하자 뒤에서 껴안는다. 나이가 18살이면서 아직도 그는 베이비 크림을 쓴다. 키 차이가 조금 나서 그의 목에서 나는 아기 냄새를 맡기 쉽다.

“야, 언제 왔어!”

  돌아본 그의 표정에는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져있다. 벌어진 입술을 보고는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말았다. 그가 내 등을 두드리지만 곧 놀란 게 진정된 듯하다. 입술을 때고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놀랬잖아. 야자는?”

  입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방금 전의 입맞춤이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물어본 말에 대답하기 보다는 한 번도 입을 맞추고 싶어진다.

“형이 보고 싶어서 일찍 왔지.”

  안타깝게도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비록 1살 차이지만 그 1살 차이라는 점 때문에 내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물으면서 내게 안겨오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 이렇게 예쁜 짓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이지. 학교 앞에 파는 슈크림이 들어간 붕어빵도 사왔는걸?”

“우와….”

  크게 입을 벌리며 내가 건네준 봉지를 받아드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남자가 귀여운 짓을 하면 죄악이라고 하는 친구들 말은 역시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저기, 형.”

  봉지에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나에게 내미는 그를 보며 말한다.

“응? 일단 이거나 받아. 나만 먹으면 미안하잖아.”

  그가 내민 붕어빵 하나를 입에 문다. 처음 그와 사귈 때는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는 것까지 닮은 것 보면 우린 하늘이 이어준 연인사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고 지금 내 앞에서 열심히 붕어빵을 먹어대는 사람은 병원에 실려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웃어댔다.

“저기… 사실은 중학교 때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뵙기로 했거든….

“그래서 지금 나간다는 거야?”

“응. 그래야할 것 같아.”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연다.

“다녀와. 대신 일찍 와!”

  다행히 허락해준다. 너무 잡혀 산다고 뭐라 하지 말아주길.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고마워. 저녁때까지는 들어올게. 그럼 나 교복 갈아입을게.”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여전히 TV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려고하자 조금 싸늘해진 느낌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려고 하는가 보다. 핸드폰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나야, 형.”

「시원이다, 시원이.」

  아이가 어미를 부르듯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따듯하다.

“저기, 미안한데…, 나 조금 늦을 것 같아.”

「얼마나….」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싸늘해진다. 예상 못한 건 아니다. 그는 요즘 내가 언제 오고 나가는 지에 민감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에 대한 복수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과도한 집착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 그런 경우는 아마 ‘저를 사랑해주세요’라는 표현일거에요. 그 분께는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아마 자신에 대한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주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는 그런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겠고요.”

 

  그래. 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만족할 때까지 내 사랑을 보여주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가 힘들어 할 때마다 내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7시쯤에 들어갈 것 같아.”

「꼭 7시까지 와야 돼, 알았지?」

그가 늘 이렇게 재촉하는 것이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선물 사온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아서 귀엽기도 하다.

“알았어.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저녁은 같이 먹자.”

  내 약속에 안심이 된 듯,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사랑하는 자기야, 빨리 와.」

  마지막으로 들은 그 말이 마음속을 맴돈다.

 

  오랜만에 본 애들과 얘기하느라 밖에 비가 내리는 줄도 몰랐다. 다들 들떠있는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7시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그가 화낼 텐데….

집 앞에 도착하고 나니 시계바늘이 7시를 조금 넘었다. 그래 봤자 5분. 그 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가 무릎을 모으고 소파에 앉아있다. 저렇게 있지 않으면 안 될까. 너무나 외로워 보인다.

“형, 내가 조금 늦었지? 미안….”

“7시까지 온다고 했잖아!”

  생각보다 큰 고성이다. 그를 화나게 하는 것, 그를 걱정시키는 것은 나쁜 일인데….

“그게, 밖에 비가 내려서…. 실내에 있어서 몰랐어. 겨우 5분밖에 안 늦었잖아.”

“그래, 그 5분이 문제야. 내가 보고 싶었다면 비가 오더라도 미리 5분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됐어.”

“그치만….”

“친구들과 논다고 내가 보고 싶기나 했겠어?”

“아냐, 그저 오랜만에 봐서….”

“그래서 나랑 한 약속을 어겼잖아!”

“미안해, 미안해….”

“됐어.”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보며 그의 마음도 그렇게 닫히진 않았을까 걱정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방은 ‘우리 방’이었는데…. 그가 들어간 방은 사실 부모님이 쓰시던 방이다. 부모님은 서울에 직장에서 직장 생활을 하신다. 나도 고등학생이 아니었다면 같이 서울로 갔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가기 싫었다고 할까. 상경하지 않은 덕에 그와 이렇게 같이 살게 되었으니 다행인 일이다. 그는 집에서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처음 그가 나와 살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님께서 우리 부모님의 허락이 있다면 동의하겠다고 말씀하신 것 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살게 되었을 땐 엄청 행복했는데….”

  그가 들어간 방을 쳐다보다가 결국 옆방으로 들어왔다. 원래 내가 쓰던 방. 그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된 이후로 이 방에서 잔 적이 없었다. 부모님 방에는 2인용 침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꼭 안고 잤을 때 느낀 온기는 정말 따뜻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랬는데….”

  내 잘못이리라. 그가 이렇게까지 변한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

“미안해…. 평생 속죄하며 살 거야. 그러니까 오늘 늦은 5분, 봐주면 안 될까?”

  차가운 1인용 침대에서 한참을 혼잣말을 하다가 결국에는 잠들었던 것 같다. 잠든 나를 깨운 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문을 조금 열고 빼꼼히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자고 있었어?”

“아, 그게 말이지….”

“나랑 같이 자! 혼자 자지 마!”

  그가 그렇게 소리치며 내 옆으로 쪼르르 다가온다. 그 모습에 조금은 투정을 부려본다.

“형이 문을 닫았잖아. 어쩔 수 없었던 걸.”

“그래도! 잠은 나랑 같이 자!”

“알았어, 그것도 미안해. 시간 못 지킨 것도 미안해. 용서해줄 거지?”

“응…. 대신 나 꼭 안고 자.”

  사랑이 부족해서 늘 사랑을 갈구하는, 그러면서도 늘 사랑을 의심하는 그. 의심하지 마. 평생을 사랑해줄게.

“사랑해.”

  옆에 누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눈을 깜빡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나도 사랑해….”

“나는 언제나 형 편이야.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어, 우리 서방. 근데….”

“걱정 마라니까. 서방님은 절대 배신 같은 거 안 해.”

“그게 아니고 나 배고픈데….”

“응?”

  그러고 보니 저녁 안 먹었구나. 그도 배고플 텐데…. 상관없으려나, 이제 밤이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그가 없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가장 잘하는 건 이것저것 다 프라이팬에 얹어놓고 볶아먹는 볶음밥.

“일어났어, 남편?”

“응, 잘 잤어?”

  그가 잡고 있는 프라이팬에는 역시나 잡다한 것과 주재료인 밥이 섞여 있다. 그를 뒤에서 안으며 투정을 부려본다.

“또 볶음밥이야? 다른 건 없어?”

“먹기 싫으면 말아. 점심때까지 굶든지 말든지.”

“아냐, 먹기 싫다는 건 아니고….”

  말끝을 흐리면서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간다. 입술이 닿을 때쯤 그가 내 머리를 내려치더니 “이 닦고 와!”라고 소리친다.

“우리 집은 원래 아침 먹고 이 닦았는데….”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겨울에는 꽤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 그래도 지금은 가을, 아직은 차가운 물에 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의 말대로 이를 닦고 나오자 볶음밥이 접시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요리한 밥을 놔두고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막 돌아서려고 할 때 뒤에서 누가 매달린다.

“시원아, 업어주라.”

“뭐야, 갑자기. 형, 밥 먹어야지.”

“그럼 뽀뽀.”

  내려주자마자 발꿈치를 들고 쳐다보는 그를 보고는 웃음이 나와 버린다.

“뽀뽀해달라니까 왜 웃어?”

“그냥, 갑자기….”

  갑자기 행복한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가 해달라는 대로 내 입술을 가져다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이 전해질 것만 같아서.

 

 한 번의 키스로 밥을 다 먹어갈 때쯤엔 꽤 식어버렸다. 그래도 더 따뜻한 것이 가슴에 남아있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형, 오늘하고 내일. 어디 놀러갈까?”

“음….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너는?”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대답하기 곤란하다. 기껏 주말인데도 집에만 박혀있기는 싫다. 그럼 왠지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 같다는 느낌이랄까.

 

#.2 그의 첫사랑은 나의 적?

 

  결국 그와 가기로 한 곳은 서점이다. 가끔씩 그는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껴둔 돈으로 한 달에 만화책 한두 권 정도는 늘 서점에서 사곤 했다. 마침 지금이 그 시기랄까.

“사둘 책은 정한거야?”

“아니, 딱히 정한 건 아니지만 이때쯤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책은 있어.”

  모르는 사람에게는 만화책을 사러 시내까지 나가는 것이 유별나다고 들릴지 모르지만 동네 서점에는 다른 장르의 책과 똑같이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만화책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인기 있는 만화책 정도는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시내까지 나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좋은 건 조금은 스릴 있어서일까. 일부러 발을 내딛을 때 같은 발을 내딛는 거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는 것…. 평범하지 않은 우리 관계에 있어서 이런 점이 눈치 보이는 게 사실임에도 그는 거리낌 없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으음….”

  어느새 도착한 서점에서 만화책 코너를 찾아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내가 잊혀진 듯 한 느낌도 든다. 그럴 때는 나 역시 소설책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를 사랑한다고 깨달았을 때 바뀌자고 결심했고 그래서 결심한 것이 책을 읽는 것이다. 한 국어 선생님께서 문학작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치유할 수 있다고 들었던 기억 덕분이다. 최근에는 시집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랭보의 시집을 좋아한다.

‘얼음나무 숲’이라는 책으로 꽤 감명 받았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서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도 꽤 좋아했던 작품이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옆에 누가 서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꽤나 귀엽게 생긴 인상. 확신은 못하지만 그가 제법 좋아하는 타입. 내가 왔는 지도 모르게 얘기하는 걸 보면 많이 친할 지도….

“그렇다니깐? ‘신만이 아는 세계’라는 만화책 주인공이 완전 너랑 닮았…. 준원아! 왔어?”

“응,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얘, 중학교 때 친구야. 이름은 문성현이고 인사해.”

  아, 라는 탄성이 입 밖으로 나오게 하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시원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 바로 그 사람이 형의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네 친구냐?”

“아니, 그냥 아는 동생….”

  보통 사람들 앞에서 아는 동생, 정도로 끝나는 건 이해한다. 사실 나 역시도 그를 애인이라고 소개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그의 첫사랑이라는 사람 앞에서는 조금 욕심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래? 아, 계산 하고 노래방이나 가자. 이 근처 싸잖아.”

“그럴까? 너랑 노래방 간 것도 오랜만인데. 시원아 괜찮지?”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분명 그도 하지 않을 테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나서 저렇게 좋아하는데.

“응, 어차피 서점 나오고 나서는 계획이 없었으니까.”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비어있는 손가락이 의식된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것도 이해하고 아는 사람 옆에서 손가락을 걸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조금 어두워지는 건 내게는 그가 첫사랑이기 때문일까.

 그의 옆을 걷다가 도착한 노래방에서 그의 첫사랑을 먼저 내려 보낸다. 따라 내려가는 그를 뒤에서 껴안는다.

“응? 왜 그래?”

“그냥, 형이 좋아서 그러지….”

“쟤가 보면 어쩔거야. 어서 비켜.”

“알았어….”

그의 말에 금방 팔을 풀지만 조금은 아쉽다. 내려가니 성현이라는 사람은 이미 지갑을 꺼내들고 있었다.

“계산은 더치페이지?”

“알고 있거든?”

지갑을 꺼내려는 그를 내가 막는다.

“됐어. 내가 낼게. 5000원 밖에 안하는데 그 정도는 내가 계산해도 돼.”

  물론 저 사람 몫까지 내야한다는 건 내키지 않지만 말이다. 방에서는 다행히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만약 떨어져 앉는다면 옆자리로 갈 구실이 딱히 없어서 걱정했는데 말이다. 오자마자 부를 곡이 있는지 그가 빠르게 책장을 넘기고는 기계를 잡아서 숫자를 입력한다. 다섯자리 숫자가 입력되고 화면에 뜬 노래는 ‘숫자송’이었다. 나도 간혹 TV를 보며 따라부르곤 했던 숫자송은 그가 항상 노래방에 오면 늘 가장 먼저 부르는 곡이다. 저걸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뒤에서 안아주고 싶다. 남들은 처음 숫자송을 부르는 걸 보며 웃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가 여리게 보인다.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를 보는 내 마음이 조금 편할지도 모르겠다….

  서로 한 곡씩 부르는 차례가 네 번쯤 돌아갔을 때, 성현이 예약한 ‘응급실’이 화면에 뜨며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는 응급실이라는 화면을 보자 마자 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네가 제일 잘 부른다고 나한테 자랑하던 거 맞지?”

“어, 맞아. 내가 이거만 부르면 늘 100점 아니냐.”

  분명 일반인 치고는 꽤 잘 부른다. 그러나 그 보다는 이 사람이 응급실이라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는 게 질투가 난다. 게다가 노래가 끝난 다음에 한 말은….

“잘 불렀냐?”

“응, 노래 실력이 는 것 같아.”

“오, thank you."

“너 이거 기억나냐?”

“저거 ‘흰눈’이잖아. 저게 왜?”

“네가 나한테 불러준다고 했던 노래거든? 이제 내가 너한테 불러줄게.”

 

 

 

예전에 주인공 이름을 김준원으로 썼는데 평범해서 김시원으로 썼어요.

저는 시원 소주가 생각나던데..(그래도 소주는 이효리의 흔들어흔들어~)

그림은 제가 직접 그렸어요 ㅇㅅㅇ

 

?
  • profile
    윤주[尹主] 2011.03.27 04:11

     파이어폭스에선 어떻게 그림볼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글은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낯선 소재지만 신기하달까, 신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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