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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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두 명은 잘 어울리는 남녀였다. 남자는 내가 좋아하는 쪽. 뭐, 길게 설명할 거 없이 깔끔했고, 성격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착한 ‘척’을 안 하는 게 좋았다. 오히려 앞에서는 착한 척하고, 뒤에서 욕하는 놈은 본 적이 있어서, 착한 녀석보다 그냥 그대로 있는 녀석이 좋았다. 문제는 여자였다.
 물론 내 짝사랑의 상대가 좋아하는 여자라는 것 때문에 질투어린 시선에서 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했다. 걔는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걔가 좋아하는 건, ‘그 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어떤 지 알 수 없지만, 아마 걔한테는 그 사실이 자신을 뭔가 돋보여주고 그랬던 것 같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안에서 생각이 있는 건, 나와 그 아이뿐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생각을. 그 아이는 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학 실험 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와 걔가 대표로 뽑혀서 실험을 했다. 아무래도 실험기구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가 이유이기도 했지만. 사실 뽑힌 이유도 알고 있었다. 둘은 공부를 잘 하니까. 나는 그냥 눈에 띄지 않으니까.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앞에 나간 두 사람을 봤다. 그래, 알만큼 아니까, 두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실험을 하다가, 그 아이가 걔한테 스푼을 건네주는데, 둘의 손이 닿자, 그 아이가 깜짝 놀라면서 스푼을 놓쳤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스푼 소리만 냈다. 그 때 나는 동시에 봤다! 그 아이의 붉어지는 얼굴과 걔의 자신에 찬 표정! 아니, 자신에 찬 표정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걔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미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왜냐면 눈은 확실히 내리깔고 있었기때문이었다.
 걔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푼을 주워들었다. 그 아이는 다시 실험을 준비했다. 그러자, 걔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그 아이를 쳐다보지 않고, 실험 도구를 내려다보면서 말했지만,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반 아이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 말이 차라리 의문문이라던가, 말꼬리가 올라가던가, 아니면 딱 끊어지는 거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그 아이의 표정은 굳었고, 나는 아무도 내게는 시선을 주지 않음에도 내 표정을 고쳤다. 처음에는 나도 ‘뭐야?’라는 식으로 화가난 표정을 했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고쳤다. 말했지만, 그 아이가 걔를 좋아하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건 모두가 모르는 사실이니까. 아니, 그 모두에 나를 빼면 맞는 말이지만.
 그러자, 그 아이는 걔를 똑바로 쳐다봤다. 처음에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걔가 시선을 돌려 그 아이를 쳐다보고 환하게 웃어줬을 때, 그 아이의 표정은 무너졌다. 패배자의 표정이나 그런 게 아니라, 무언가에 빠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그런 표정! 살짝 눈이 풀리고, 입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표정! 나는 그 표정을 보고는 다시 내 표정을 고쳤다. 아무도 내게 주목하지 않지만. 모두가 둘 중 누군가의 말을 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건 내 희망과 달리, 걔가 아닌 그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응.”
 그 아이의 그 말은 매우 짧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었는데도, 모두가 용케도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아들었다. 그 모두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그러자, 반 전체가 떠들기 시작했다. 연애를 하지 말라는 둥, 도대체 앞에서 뭐하냐는 거냐는 둥, 공부하랬더니 뭐하는 거냐는 둥, 나도 장난치는 표정으로 쓸때없는 말을 했다. 그 말은 그 아이가 걔의 손을 가볍게 잡았을 때 했던 말 같았다. 어떤 대사인지 기억 못할 정도로 나는 정신이 없었고, 반 전체도 내 대사가 뭔지 들어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옆의 친구를 쳐다봤다. 누구지? 그런 생각이 들자, 옆의 친구는 자신의 반대편에 앉은 친구를 쳐다봤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둘 다’ 모른다. 그러자, 나는 걔를 쳐다봤다. 걔도 모르는 애다! 내가 아는 중학교 동창 중에는 이런 얼굴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쳐다봤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아이와는 약간 달랐지만, 나는 계속 그 아이를 내가 중학교 때 혼자 마음에 품고는 아무것도, 말조차 걸지 못했던, 그리고 그 아이에 관련되어서는 언제나 표정을 고쳤던, 그 아이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쳐다보고 교실로 생각했던 공간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본 건 내 방 바닥이었다. 꿈이었다. 꿈인데, 내 꿈인데도. 참으로 짜증난다. 내 꿈인데도, 난 중학교 짝사랑을 꿈에서도 짝사랑하는 역할로밖에는 나오지 못한 거다! 그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그제야 내가 그 아이와 걔가 손을 잡는 장면에서 한 대사가 떠올랐다.
‘아, 누구는 손 내밀면 주머니 밖에 잡아주지 않는데!’
 단순히 꿈일 뿐인데도, 나는 최대한 개그를 친다고 그딴 대사나 하고 있던 거다! 마음을 숨긴 채! 그 날 하루 종일 짜증이 났다. 내 꿈인데도, 내 꿈인데도, 뭐 이따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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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이라고 썼지만,
정말로 꾼 꿈이라서ㅠ...
그것도 하나도 각색된 것도 없습니다.
저 쓸모없는 개그 대사도 꿈에서 실제로 했던 거고요ㅠㅠ...

며칠 전에 꾼 꿈인데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억에 너무 남아서
잊어버리려고 글로 옮겼는데ㅠㅠ

으, 분류를 일반으로 하려다가 그냥 수필로 했어요.
뭐 저딴 꿈을 꾼건지ㅠ
?
  • profile
    윤주[尹主] 2011.02.27 07:27

     꿈 얘기였군요. 게다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ㅎㅎ

     역시 얘기는 표현하기 나름인가봐요. 꿈 얘기 남한테 하려면 왠지 재미없어지는데, 이 꿈 얘기는 재미있게 읽히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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