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3 18:58

[단편]눈동자

조회 수 445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옥자의 손이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진다. 꺽꺽거리던 그녀의 입술도 어느새 잠잠해져서 사방이 고요했다. 아름다웠던 옥자. 그녀가 내 무거운 육체 밑에 무기력하게 깔려 있었다. 폐에서부터 거침없이 후드득 숨소리가 흩어져 나온다. 방안에 나의 거친 호흡소리가 조용히 퍼득거렸다. 그녀의 목을 압박했던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톱에 살점이 뜯겨나갔는지 손등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목으로 떨어진 피가 목에 패인 주름을 따라 바닥에 고인다. 나와 그녀의 피가 한 공간에서 젤리처럼 뭉글거린다.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이제 없다. 나는 그녀의 목에 선명한 손자국을 본다. 한참동안 숨을 쉬지 못했으니 다시 살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맨발이 축축하고 끈끈한 무언가에 살짝 미끄러졌다. 왼쪽 다리가 휘청했다. 바닥에는 어느새 꾀 많은 피가 고여 있었다. 피는 마치 기름처럼 미끄러웠다.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는 내 발끝에 깨진 맥주병이 차여 나뒹굴었다. 힘없이 굴러가던 그것은 하지만 이내 자신의 깨져버린 파편에 걸려 멈춰 섰다. 

 

 

 그녀가 남긴 손등의 상처가 쓰라렸다. 여전히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욕실로 향했다. 찬장에서 수건을 꺼내 대충 상처를 감쌌다. 다른 손으론 상처부위를 꾹 눌렀다. 꽉 쥔 손아귀로 쿵쿵거리는 맥박이 전해졌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이 욕실 거울에 비춰졌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또 너무나 낯선 얼굴이었다. 괴물. 나는 괴물. 하지만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천천히 잔뜩 긴장된 얼굴을 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욕실 바깥으로 나오자 방안에는 한 쪽 뿐인 핏빛 발자국이 도장처럼 몇 개 찍혀있었다.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녀의 피. 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이젠 나를 죽이고 싶어 할까.

 

 

 식탁의자를 끌어당겨 그녀의 옆에 앉는다. 혈관이 터져 붉게 물들어버린 그녀의 루비색 눈동자가 보였다. 위로 치켜떠진 눈동자는 맹렬히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딜 바라보는 걸까? 나는 그 눈을 쫓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그저 누더기 같은 누런 벽지가  울퉁불퉁 일그러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녀가 읽어낸 그 어떤 의미도 읽어 낼 수 없었다. 

 

 

 죽어버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 더 이상 그녀가 아닐 것이다. 그저 잠시 목을 꽉 움켜잡았을 뿐인데. 그녀는 너무도 쉽게 숨이 끊어져버렸다. 아쉽게도.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서둘러 보내진 않았을 텐데. 

 

 

 우리는 처음 만났던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도우미와 막노동꾼. 그것이 우리가 처음 바라본 서로의 모습이었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술을 따르는 그녀의 손이 고왔다. 김옥자에요. 심동수입니다.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제가요? 네.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얼마 전 남편과 이혼을 했다고 했다. 나 역시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였다. 정해진 시간이 끝나갈 쯔음 그녀는 티슈에 무언가를 적어 내게 건넸다. 핸드폰 번호였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그녀의 몸뚱이를 본다. 그녀는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향해 웃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불 속으로 달려드는 나방처럼. 그녀 역시도 나를 향해 필연적으로 다가섰던 것일까. 

 

 

 그녀는 요즘 다시 도우미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미 반쯤 취해버린 상태로 집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어디 갔다 왔냐는 나를 밀치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그만 해어지자. 내 앞으로 성큼 걸어간 그녀가 취하거나 혹은 취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거를 시작한지도 벌써 몇 년. 그 정도면 한 사람의 마음이 변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왜 그러냐고 안 물어? 그녀의 뒤돌아 선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미안. 미안? 뭐가 미안한데? 내가 지금 해어지자잖아.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 미안하다고?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섰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기력해 보이는 그런 얼굴. 난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본다. 자기는 날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날 사랑하기는 했니?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너 같은 건. 이 감정도 없는 괴물 새끼. 죽어. 죽어버리라고. 죽어. 이 괴물 새끼야. 죽어.

 

 

 어느새 내 손엔 어제 먹다 남은 맥주병이 거꾸로 들려 있었다. 괴물. 괴물. 학교에서도.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가족에게도. 나는 언제나 그런 존재. 하지만 너만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너만은.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는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단 이 시체를 치워야겠지. 어쩌면 내일 아침이라도 그녀의 딸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불을 지르고 도망갈까. 하지만 그런다고 시체가 다 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동거인인 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으리라. 아무래도 묻어버리는 것이 제일 안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새벽이라고 시체를 그대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녀를 감출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침 내가 누워있던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 크기면 모든 것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녀의 몸을 묶을 밧줄을 찾았다. 그러나 집안에 밧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시간에 철물점이 문을 열었을 리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뻣뻣한 전선을 가위로 잘라 그녀의 팔과 다리, 몸통을 묶었다. 손목을 묶는데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어진 반지가 보였다. 언젠가 그녀가 상의도 없이 사온 싸구려 커플링이었다. 헤어지자고 말할 거면서 왜 반지를 끼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빼버릴까. 하지만 반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땅 속에 묻혀 버릴 텐데. 결국 나는 들어 올렸던 그녀의 왼손을 그냥 내려놓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는 그녀의 몸을 모두 묶을 수 있었다.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그녀의 몸이 일자로 고정이 되었다. 이젠 이불을 뒤집어씌울 차례다. 이불을 가져와 그녀를 감싸려던 나는 그러나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 주변에는 여전히 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했다. 어느새 검은색으로 굳어져가고 있었지만 저 위에서 이불을 움직였다간 온통 피투성이가 될 듯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팔에 와 닿는 그녀는 통나무처럼 딱딱했고 무거웠다.     

 

 

 이불위에 그녀를 눕혔다. 그리곤 이불과 함께 그녀를 옆으로 굴렸다. 난방이 되지 않는 탓에 투툼하게 깔려있던 솜이불이 그녀의 몸을 남김없이 감춘다. 이불도 밧줄로 묶어야 할 텐데. 하지만 이미 주변에는 온전한 전선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서랍에서 박스 테이프를 꺼냈다. 처음부터 이걸 쓰면 좋았을 걸.

 

 

 테이프를 쓰니 작업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서둘러야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다. 땅을 파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오월이라 여섯 시만 되도 어둠이 물러가버린다. 나는 찬장에서 손전등을 꺼내 호주머니에 챙겼다. 아직 새벽은 쌀쌀한 탓에 얇은 점퍼도 입었다. 이제 그녀만 집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된다. 

 

 

 문을 열고 계단 위를 살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감싼 이불덩어리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몸무게에 두꺼운 솜이불이 더해지자 꾀나 묵직하니 팔이 떨려왔다. 이불덩어리를 짊어진 채 난 문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새삼 경사가 진 계단이었다. 이를 악물고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나와 그녀의 무게가 가감 없이 계단 위에서 쿵하고 경적처럼 울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난 잠시 자리에 우뚝하니 멈춰 섰다. 다행히 주변에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나머지 계단을 올랐다. 현장에서 시멘트 포대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를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나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주택 앞 그늘진 곳에 내려놓았다.

 

 

 이젠 자동차에 실으면 된다. 나는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하며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일단 차를 이쪽으로 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키를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나는 급히 집안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차키는 늘 있던 장소에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그녀를 확인한 후, 나는 차가 주차된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차문을 열고 차갑기만 한 시트위에 몸을 올렸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래된 차가 힘겹게 안간힘을 썼다. 시동소리가 요란하게 골목을 울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간신히 시동이 걸린 차를 몰아 나는 집 앞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녀는 이불에 말려진 채로 골목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나는 트렁크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골목으로 울려 퍼졌다. 나는 다시금 주변을 살피고는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막상 그녀를 트렁크에 실으려니 그녀의 몸이 트렁크에 들어가질 않았다. 너무 일자로 몸을 묶어 버린 탓일까. 이리저리 몸을 접어보려고 해도 몸은 딱딱하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조수석 시트를 뒤로 젖힌 후 그 위에 그녀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이즈가 좀 부족한지 이번에는 문이 닫히질 않았다. 힘을 줘서 그녀의 몸을 밀어 넣었다. 어디선가 두둑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덕분에 문이 간신히 닫혔다. 

 

 차를 앞으로 돌아 다시 운전석에 앉은 나는 잠시 조금은 지저분해진 그녀의 이불을 바라봤다. 저 이불안에서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까처럼 처절한 눈동자로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이미 포장되어진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더 이상 침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러고 보니 땅을 팔 삽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걸 깜박하다니 자칫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올 뻔했다. 나는 목적지를 바꿔 내가 일하는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이라면 삽 같은 거야 넘치고 넘치니까. 

 

--------------------------------------------------------------

 

소설 쓰기 강좌에 과제로 제출 했던 글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남자의 비정상적 심리를 다뤄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글이 밋밋하다는 평을 받았어요. 좀더 무서운 느낌으로 글을 썼으면 남자의 심리가 좀 더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를 죽인 이유가 너무 간략하게 설명되어있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아, 역시 글을 쓰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2.27 01:42

     다른 분들 말마따나 이 글은 좀 더 길게 썼으면 더 좋았을 글이네요; 죽이게 된 사연도 그렇고, 주인공 심리에 대해서도 좀 더 길게 썼으면 더 좋았겠죠.


     이상심리에 대해 쓴다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이상심리란 게, 뭔가에 집착하고 탐닉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비슷하다고 느껴지긴 하는데, 극단적인 집착이나 탐닉을 표현하려고 과장된 묘사를 하려하면 좀 겸연쩍더군요;; 잘 떠오르지도 않고, 떠오르는 것도 표현이 잘 안 되고. 일종의 자기검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는 입장에선 이 글에서 남자의 비정상적 심리보다, 비극적인 남녀의 처지나 입장같은 게 느껴져서 그 부분에서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읽는 저로선 그 부분에 더 힘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냥 개인적 취향 얘기입니다 ㅎㅎ

  • profile
    시우처럼 2011.02.27 20:29

    이번 강좌를 들으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여지껏 머리로만 알았다면 이번엔 몸으로 느껴졌다고 할까요?

     

    작정하고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글을 쓴다는 일은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20 [단편]일요일 아침 8 시우처럼 2010.12.10 220 3
1119 [단편]이별이란것은!! 2 매력붓다 2009.04.13 978 2
1118 [단편]우렁각시 수렁 속 6 윤주[尹主] 2012.09.30 743 13
1117 [단편]어떤 이야기 1 악마성루갈백작 2009.01.22 1044 3
1116 [단편]어떤 1초 1 악마성루갈백작 2012.02.27 454 0
1115 [단편]소나기 2 악마성루갈백작 2012.02.28 496 0
1114 [단편]세기의 능력자 대결 2 S.J.Rush 2010.02.04 265 2
1113 [단편]성인식 2 악마성루갈백작 2010.10.13 353 1
1112 [단편]부활 5 욀슨 2012.08.22 287 1
1111 [단편]몇분이란 시간의 기적 2 팹시사이다 2010.01.31 266 1
1110 [단편]머리카락 6 yarsas 2012.12.15 421 3
» [단편]눈동자 2 시우처럼 2011.02.13 445 1
1108 [단편]눈 오는 날의 졸업식(前) 2 로케이트 2010.02.07 345 2
1107 [단편]너와 함께. 2 coKePlay 2010.07.22 173 1
1106 [단편]나는 미쿡사람 입니다 15 시우처럼 2011.01.16 548 4
1105 [단편]나는 가난합니다. 4 The위험 2011.04.10 564 2
1104 [단편]그들-판타지(1) 3 S.J.Rush 2010.04.10 310 3
1103 [단편]그들-반비례 2 S.J.Rush 2010.02.03 307 1
1102 [단편]게임 1 페인넷 2010.07.16 145 1
1101 [단편][답장] 안녕하세요. 일전 문의하신 상품에 대한 답변입니다. 1 악마성루갈백작 2012.03.07 387 0
Board Pagination Prev 1 ...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