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2 05:49

[추리] 가짜 ~2화~

조회 수 459 추천 수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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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이는 알면 알수록 그런 이상한 아이인데 수업시간엔 조용합니다. 그렇다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수업시간에 그를 쳐다보면 칠판을 바라보고 있지만 항상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초점이 흐립니다. 무언가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책과 노트에 무언가를 광적으로 적는 것으로 봐선 중요한 부분에선 수업을 듣는 것 같긴 합니다. 그래서 전에 한번 수업시간에 졸다가 필기를 놓쳐서 그의 책을 빌린 적이 있었습니다.

 “후회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귀여운 내 동창이 부탁하는 거라면 빌려줄게.”

라면서 그는 웃으며 책을 빌려줬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을 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빨간 펜으로 밑줄도 잘 그어져있고 필기도 글씨체는 비뚤어도 잘된 편인데 낙서가 장난아니게 많습니다. 일단 교과서에 그려진 그림이란 그림엔 모두 그의 낙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백이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무언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타 애들이 그리는 낙서와는 다릅니다. 일단 이상한 도형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육망성이라고 하면 아시나요? 어렸을 때 우리가 즐겨봤던 로봇만화 그랑죠에서 그랑죠를 부를 때 나오는 마법진에 그려진 도형입니다. 그랑죠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겹쳐놓으면 별처럼 생기는 도형이 나오는데 그것을 육망성이라 합니다. 그런데 육망성만 그리면 단순한 낙서라 할 수 있는데 현명이의 육망성은 조금 더 특이합니다. 육망성을 그리면 가운데 육각형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각형의 각 꼭지점에서 부터 육망성을 하나 더 그리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 육망성 안에 육망성이 있는 느낌으로 빼곡히 채워 넣은 겁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낙서일까요? 역시 특이합니다.

 또 그의 책에 낙서엔 사람의 눈이 무척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상한 건 이 녀석은 왼쪽 눈밖에 그리지 않았습니다. 완전 백지인 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 여러 모양의 눈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데 모두 왼쪽 눈이었습니다.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의 눈이라 단순히 그림 연습인 것 같았습니다. 현명이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요? 그런 느낌이 드는 건 가끔 얼굴 전체가 그려진 그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양눈이 짝눈입니다. 오른쪽 눈이 항상 왼쪽 눈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게 오른쪽 눈을 그리는 것은 왜 연습하지 않는 걸까요?

 현명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정말 싸이코일까요? 하지만 전 그가 싸이코라기 보다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아인슈타인, 고흐, 모차르트 같은 사람은 천재였기에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하는 짓은 하나같이 다 엉뚱하긴 합니다만, 마치 성적 하위권 애들처럼 개판으로 논다고 해야할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반에서 2등을 하고 있습니다. 존경스러운 존재입니다. 조금이라도 노력하면 1등도 할 수 있을건데 말이죠. 놀면서도 2등이라니 부러운 존재입니다. 저 같은 것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하겠지요. 저렇게 밝고 잘 놀고, 하는 짓은 엉뚱해도 항상 웃음이 넘치고, 성적도 좋고. 현명이는 어느 새 저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그렇다고 동성애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순수한 동경심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동성에 호감을 갖는 일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애감정이랑은 틀린 것이지요. 저는 항상 어둠뿐인 제 인생에 태양이란 존재가 생겼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유일한 친구. 저는 그와 항상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짜뿐인 제 인생에 유일한 진짜가 있다면 분명 그것은 현명일 겁니다.

 그런 현명이가 어느 날 우리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동창이는 귀여우니까! 네 방을 보고 싶어,”

이유는 이렇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깊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의미 불명인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냥 단순히 저희 집에 놀러오고 싶어 한다고만 해석하면 됩니다. 하지만 전 현명이를 초대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당연히 저희 집은 가짜투성이니까요. 제 유일한 진짜 친구인 현명이에게 가짜 아버지, 어머니를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전 사과를 하며 현명이에게 집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서 안된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현명이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흐응... 너와 내 사이가 그것 밖에 안 되다니. 좋아. 그럼 먼저 내가 너를 초대하지!”

라면서 하교 때 저를 강제로 그의 집에 끌고 갔습니다.

 현명이의 집은 학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빌라로 겉에서 봤을 땐 별로 크지 않았으나 내부는 넓어보였습니다. 아마 인테리어를 잘한 것이겠지요. 현명이의 방도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책장과 책상, 컴퓨터가 있는 평범한 방이었습니다. 방이 좁아 침대는 없었지만요. 아 오해는 하지마세요. 침대가 없어서 실망했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자꾸 저를 그런 쪽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전 앞서 말했지만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전 현명이와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놀았습니다. 현명이와 같이 한 게임은 자신이 만들고 있다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만들 수 있다니 역시 현명이는 천재인 모양입니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아이입니다. 현명이는 자기가 대단한 것이 아니고 게임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것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게임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저희 반 친구들인데 모두 별명에 맞게 오크, 미노타우로스 등으로 등장시켜서 저희 반 친구들이라면 웃을 수 있는 웃음코드가 많이 들어있어 무척 재밌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늦었고 전 현명이의 어머님이 차려준 저녁까지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현명이의 어머님은 무척 고운 분이셨습니다. 현명이는 자기 어머니가 못생겼다며 40대 중반이지만 50대 중반 같다고 말했지만, 제가 보기엔 3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 분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곱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순간 쓸쓸한 생각이 들었지만 현명이 어머님 요리 실력이 무척 좋으셔서 음식을 먹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더 신세지기도 미안해서 저녁 8시쯤이 돼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희 집은 저에게 무척 싫은 장소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현명이 집에서 자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속으로는 자고 가고 싶은 것이 아니냐구요? 자꾸 그런 농담은 하지 말라니까요. 집에 돌아가려는 저를 현명이는 마중까지 나와 주었습니다. 참 좋은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주일 뒤, 이번엔 내가 너희 집에 찾아갈 테니까 집 잘 정리해둬. 하하.”

그러니까 우리 집은 곤란하다니까 라고 그에게 머리를 긁으며 거절했지만

 “흠? 그래... 실망인걸... 난 이렇게 초대해줬는데. 우리 사이가 이것 밖에 안되는구나.

 우린 결국 가짜 친구였어?”

저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와 현명이 사이가 가짜라구요? 안됩니다. 제 인생에 가짜가 더 늘어서는 안돼요. 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주일 뒤에 현명이를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현명이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네가 무엇을 할지 기대할 지 기대가 되는 걸. 너라면 분명 날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현명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도 역시 깊게 생각하면 안되겠죠?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말은 초대한다고 했어도 저희 집엔 가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니 현명이에겐 어떻게 그것을 설명해야할까요? 하지만 이미 초대한 현명이에게 당일 날 거절할 수도 없을 겁니다. 아마 그러면 현명이는 무척 실망하고 우리 둘은 가짜 친구가 되는 것이겠죠. 제 삶에 더 이상 가짜가 있어서는 안되요.

 현명이는 제 머리를 기분 좋게 쓰다듬었고, 저는 작별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가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에게 저녁은 먹었냐고 무미건조하게 물었지만 저는 무시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걱정이군요. 현명이를 초대해서 저녁 이전에 돌려보내면 가짜 아버지와 마주칠 일은 없지만, 전업주부인 가짜 어머니는 항상 집에 있습니다. 그날 운 좋게 장이라도 보러나가면 좋겠지만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가짜 어머니는 매일 오전에 장을 보는 것 같으니까요. 저는 제 방에 돌아와 한 숨을 쉬며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 저기 물건이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역시 이런 집엔 현명이도 놀러오기 싫겠죠? 저는 현명이가 오기 전까지 집을 깨끗이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치우고 현명이와 단 둘이 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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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지금까지 건천님의 댓글이 없다니 실망입니다. 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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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우처럼 2011.02.13 18:13

    건천님은 아마도 테라와 함께하는 2011년을 보내고 계실듯? ㅋ

     

    그런데, 이 글을 읽다보면

    동창이란 애가 정신병자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다들 원래의 자신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인데 혼자서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그런거요.

    아무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2.27 01:13

     어쩐지 현명이란 얘가 좀 낯익네요...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본 듯하달까요;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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