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스피커의 요정

by 메론왕자 posted Feb 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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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닥타닥.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씨를 따라 읽으며 A가 타자를 쳤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세벌식 타자 연습을 하던 A가 자판에서 손가락을 뗐다.

 

  "커피, 커피, 커피."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허리를 돌렸다. 허리를 곧게 피는 순간 우두둑 소리가 났다. 어깨를 돌려보고 목도 주물렀다. 그리고 커피포트에 있던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탔다. A는 머그잔을 자판 옆에 두고 두 다리를 의자에 올려 몸을 웅크렸다.

 

  모니터를 멍하게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다시 감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가 끄덕이고 몸의 균형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웅크린 몸은 풀어지지 않고 다리를 끌어안은 팔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으악!"

 

  결국 휘청이던 의자가 넘어지고 A는 바닥을 굴렀다.

 

  "아파. 대박. 아파 진짜. 헐. 아퍼."

 

  머리를 감싸고 몸을 굴리던 A의 몸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책상 위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A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스피커가 있던 자리가 검게 그을렸다. 그을린 자국 위에는 작은 사내가 있었다. 정말 작아서 엄지 같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작은 사내는 조금 헐렁한 검은 티를 입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A는 사내의 등장에 별로 놀라지 않고 의자를 일으켜세웠다.

 

  "대박."

 

  A는 말하고 의자에 앉았다. 작은 사내가 숨을 헐떡이면서 조금씩 말했다.

 

  "허억... 나, 나는... 하아... 그 그니까... 후우... 스, 스피커의... 요, 요정입니다!"

 

  말을 끝내며 사내는 폴짝 뛰었다. 땅에서 떨어진 발이 바닥에 닿으면서 사내는 포즈를 잡았다. A는 별 감흥없이 그 장면을 지켜봤다. 포즈를 유지하던 사내가 어정쩡하게 몸을 움직였다.

 

  "저, 별로 놀랍지 않으세요?"

 

  "뭐, 응."

 

  "어째서?"

 

  "담배 끊은지 일주일 됐거든. 이제 금단현상이 일어날 때도 됐지."

 

  "전 환영이 아닌데요."

 

  "그래. 젠장."

 

  "화... 나신 건가요?"

 

  "너같으면 화 안 나게 생겼냐? 일주일째 집에 처박혀서 한다는게 금연인데."

 

  "그... 죄송합니다. 타이밍을 잘못 맞췄나봐요. 그런데...  저, 저기 제가 돌아가려면."

 

  "뭐."

 

  "그... 그니까 전 스피커의 요정이니까요."

 

  눈을 못 마주치던 사내가 A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

 

  "뭐시라."

 

  "안되나요?"

 

  A가 넋을 놨다. 사내는 그런 A를 가만히 지켜봤다. 결국 A는 책상 위에 있던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냈다.

 

  "불."

 

  "아, 여기."

 

  사내가 두 다리로 라이터를 고정하고 두 손으로 불을 켰다. A의 입에서 담배 한모금의 연기가 나왔다.

 

  "그래, 불러봐."

 

  "흠흠."

 

  사내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노래가 시작되면서 A는 다시 다리를 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조금 어지럽지만. 어떤 때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다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당신은..."

 

  사내의 다음 가사를 듣지 못하고 A는 다시 한 번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A가 눈을 떴다. 이번엔 눈을 뜸과 동시에 소리를 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있던 자리엔 그을린 자국이 없었고 스피커가 있었다.

 

  A는 스피커를 이리저리 만져봤고 뒤의 선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A가 머리를 긁었다. 손에선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A는 일어나 제대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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