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6 13:29

[단편] 잠이 안와

조회 수 475 추천 수 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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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안와. 어쩌지?"

 

  A의 혼잣말이 흩어졌다. 누워있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 아래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올라왔다. A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액정에서 나오는 빛으로 자판을 보고 버튼을 조심스레 눌렀다. 작성한 메시지의 내용은 짧았다.

 

  "뭐해? 이상한가. 뭐하고 있어? 이것도 아니고... 뭐하냐능. 이건 좀 아니다. 에이..."

 

  메시지의 내용을 소리내 읽고 지우다 끝내 메시지를 보냈다. 보낸 내용은 두 글자. 뭐해. 시각은 새벽 세 시였다. A는 휴 대전화를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얕게 잠이 들어 틈틈이 몽롱하게 정신이 들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귀찮게 들리는 진동 소리에 눈이 확 뜨였다. A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B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알리는 진동이었다. 시각은 새벽 네 시. 전화가 온 것은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되지 않은 때였다.

 

  A는 한참 고민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은 평범했다.

 

  "멍청아."

 

  "아."

 

  망설임없는 B의 목소리에 A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A는 스피커 너머로 사박이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야?"

 

  "너네 집 앞이라고 멍청아. 당장 문 안 열어?"

 

  "아, 지금 갈게."

 

  A는 휴대전화를 닫고 그대로 복도로 나갔다. 도어락이 달린 오피스텔문 밖에는 B가 몸을 떨며 서 있었다. 머리엔 눈이 한가득 쌓였다.

 

  "대박."

 

  "미쳤나 너."

 

  B가 A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면서 말했다. B의 머리에 있던 눈이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B가 털장갑을 벗었다. A는 멍하게 서 있었다.

 

  "한 시간동안 거기 있었어?"

 

  "아니. 저기 있었는데."

 

  B의 손끝에 편의점이 걸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A가 물었다.

 

  "네가 뭐하냐매. 새벽 세 시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뻔한 거 아냐."

 

  "뭔데."

 

  "아나. 놀아달라는 거 아냐. 자, 들어가자."

 

  B가 앞장서서 엉뚱한 복도로 들어갔다. A가 팔을 잡고 자신의 원룸 앞까지 걸었다.

 

  "설마 올 줄은 몰라서 방 안치웠으니까 뭐라고 하지 마라."

 

  "그래. 이거 깔 공간만 있으면 돼."

 

  "그거 뭔데?"

 

  "몰라도 돼."

 

  A가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옷가지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B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안 들어와?"

 

  "못 들어가. 어서 치워."

 

  B의 말에 A가 발로 옷가지와 신문, 가방 등을 밀어냈다. 그러자 B가 들고 있던 가방을 A에게 던졌다.

 

  "내가 못 살아. 지금 그게 치우는 거야? 비켜봐."

 

  B가 A를 침대 쪽으로 밀쳤다. A는 벽에 기대고 무릎을 웅크려서 가만히 앉았다. B는 던졌던 가방을 주워 침대에 올리고 소매를 걷었다.

 

  "난방은 잘 되네. 그래도 혼자 사는 남자가 이런 것도 안 치우고 살면 골병 들어. 알아?"

 

  "응."

 

  B는 우선 빨래해야 하는 옷가지를 집어서 빨래통에 넣었다. 식탁보 대신 쓰던 신문은 모두 모아서 신발장 옆에 뒀다. 가방은 한 곳에 몰아넣고 밀린 설거지를 했다. 정리가 끝나고 B가 작은 탁상을 침대 앞에 가져왔다.

 

  "이제 내려와."

 

  "뭔데?"

 

  B가 가방에서 종이상자를 꺼냈다. 넓고 납작한, 부르마블 상자였다. B가 반듯하게 접혀있던 부르마블 판을 펼쳤다. 말과 주사위는 깨진 곳 없이 멀쩡했다.

 

  "뭐냐."

 

  "부르마블."

 

  "하게?"

 

  "그래서 왔지. 내려오라니까."

 

  A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B 맞은편에 앉았다. B는 게임지폐를 반으로 나누어 A에게 줬다. 그리고 그 중 일부를 다시 가져갔다.

 

  "이건 청소비."

 

  "헐, 그런게 어딨어."

 

  "그럼 내가 가는 길에 다시 어질러 놓을테니 네가 치울래?"

 

  "그냥 너 해라."

 

  부르마블은 B가 주사위를 던지면서 시작됐다. 둘은 별 탄성 지르지 않고 딱히 아쉬워하거나 기뻐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부르마블 판은 탁자보다 조금 컸는데 그 탓에 말이나 빌딩이 떨어지곤 했다.

 

  "아, 그건 자연재해다. 어쩔 수 없네."

 

  "그럼 보험 처리해야지."

 

  "그런 것까지 있어?"

 

  몇 도시를 남긴 세계가 A와 B의 소유로 나뉘었을 때 A가 냉장고에 있던 귤을 꺼내왔다.

 

  "이건 안 사냐?"

 

  귤을 주면서 A가 말했다. 잠시 망설이다 B가 말했다.

 

  "됐어."

 

  "그러냐. 근데 이거 이긴 사람은 뭐 없나?"

 

  "없어."

 

  "그래?"

 

  A는 시게를 봤다. 게임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무슨 재미로 하냐."

 

  몸을 뒤로 기대면서 A가 말했다.

 

  "심심했잖아 너. 그러니까 하는거야. 아무 것도 없잖아 뭐."

 

  "그러네."

 

  A가 B에게 귤을 하나 더 줬다. 마지막 귤은 B가 먹었다. 그리고 세계는 A가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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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이라는 분류를 못찾겠어요. 제가 안경이 없어서 그런건가요 ㅠ

막무가내로 썼던 마왕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단편질이라니 ㅋ

?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7 03:51

    귤까는 마왕인건가요?

    그리고, 설마 저 부르마불이 세상의 축소판?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7 18:10

    메론왕자님이 남겨주신 끝맺는 말을 보고

    오호 어쩌면, 평범을 가장한 일상적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마왕 후보생? 들이 부루마블이라는 마계의 도구를 사용하여

    지구를 정복하는 그런 이야이였던 것인가! 하고 나름 감탄했었지만, 역시 그건 아닌가 보군요. ㅋㅋ

  • profile
    메론왕자 2011.01.27 05:07

    어, 엄청난 반응이다!

    사실... 그냥 잠이 안와서 썼어요 ㅋ 마왕과는 상관없이 ㅠㅠ

  • profile
    메론왕자 2011.01.28 20:46

    후후 그저 할 일 없는 자취생 A 와 더 할 일 없는 자취생 B의 이야기일 뿐이죠... ㅠㅋㅋㅋㅋㅋ

  • profile
    클레어^^ 2011.01.27 07:51

    흐음, 저도 사실 밤마다 잠이 안 와요 ㅠㅠ

  • ?
    다시 2011.01.27 13:29

    운동을 해보세요 ㅋ

  • profile
    idtptkd 2011.02.02 09:09

    마지막 문장!!! 마음에 들어요!!

    담담한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ㅡ^

  • profile
    메론왕자 2011.02.02 09:31

    우잉 감사합니다 ㅠ 졸린 중에 담담하게 쓰고프다고 했는데 감사해요 ㅠ

  • profile
    윤주[尹主] 2011.02.08 16:43

     기왕이면 둘 다 그대로 잠이 드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도 괜찮았을 듯하네요^^

     어쨌거나 잘 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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