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과 스트로의 관계 STAGE 1

by 메론왕자 posted Jan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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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보호3 구역 207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 몇 년전 독립한 마왕 바륄라는 책상에 등을 올려두고 편지를 썼다. 수신자인 그의 부모는 멀리 떨어진 보호 14구역에서 살고 있었다. 손톱이 길게 자란 손으로 펜을 조심스레 잡은 바륄라는 한자 한자를 적을 때마다 창밖을 바라봤다. 배급품에 항상 섞여있던 널빤지가 지난 주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그 탓에 창은 그저 뚫린 벽에 불과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편지하겠습니다. 하는 글귀를 적은 바륄라는 펜을 내려놓고 허리를 쭉 폈다. 어둔 밤. 하늘에 걸린 달이 둥글었다. 그는 창틀에 팔을 걸치고 바깥 공기를 들이쉬었다. 찬 공기가 폐를 훑고 나갈 때마다 허연 김이 입 앞에서 서렸다.

 

  쿵. 하고 방이 흔들렸다. 바륄라는 느긋하게 의자에 앉았다.

 

  "망할 오우거같으니. 달밤에 체조라도 하던가."

 

  내재된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날뛰는 오우거의 몸짓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 영향으로 발생된 건물 전체의 진동이 멎질 않자 바륄라는 상황이 이상하다 여겼다. 결국 그는 문을 열었고 날뛰는 것이 오우거 하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좁은 복도에 각종 괴수가 뒤섞여있었다. 그 사이엔 아래층 마왕도 있었다.

 

  "아오 진짜!"

 

  "이거 내 꺼라니까!"

 

  "뀨잉뀨잉!"

 

  "아나, 말도 못 뗀 괴수가! 내가 먼저 찜했다고!"

 

  오우거를 중심으로 먼지를 일으키는 무리의 가운데에는 작은 배급품 상자가 있었다. 다음 배급 날짜는 한참 후였다. 바륄라가 조금 다가가자 무리의 가장자리에 있던 고블린이 거칠게 고갤 돌렸다.

 

  "뭐야, 마왕 주제에! 저리 꺼지지 못해?"

 

  "아, 어... 죄송합니다."

 

  바륄라는 허리를 꺾어 사과했다. 그리고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상황을 지켜보다 발을 돌렸다. 그렇게 자신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웅성이는 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어, 어?"

 

  "야, 야! 잡아!"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배급품 상자가 복도의 벽에 튕겼다. 복도가 좁은 탓에 상자는 왼쪽 오른쪽으로 조금씩 튕기며 움직였다. 모두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하고 상자는 잠시 몸을 돌린 바륄라의 품 속으로 들어갔다.

 

  "내놔!!"

 

  모든 무리가 동시에 바륄라를 쳐다보며 달려왔고 그 선두에 오우거가 있었다.

 

  "거기, 뭐하는 거야!"

 

  고음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모두의 동작이 굳었다.

 

  "젠장, 이럴 때 인간이라니."

 

  양 손에 각각 창과 방패를 든 경비병들이 복도로 들이닥쳤다. 그 등장에 모든 괴수가 벽에 달라붙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괴수들이 몸을 벽에 붙이자 바륄라의 시선에 경비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륄라느 오른쪽을 봤다.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바륄라는 상자를 방 안쪽으로 던지고 문을 닫았다. 콧김으로 바륄라의 얼굴을 때리던 오우거의 눈이 커졌다.

 

  "너, 아직도 뭐하는거야?"

 

  그 순간 경비병이 오우거를 벽으로 밀쳤다. 키가 그 절반도 안되는 경비병이었다. 바륄라는 뒤이어 오는 경비병을 보고 몸이 굳었다가 곧바로 벽에 몸을 붙였다.

 

  "저, 저 새..."

 

  오우거가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 했으나 경비병이 그걸 틀어막았다. 바륄라는 뒷머리에 두 손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경비대장이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맨날 오냐오냐해주니까 살 맛 나지 그냥? 한 번 해볼까 앙? 괴수권리 보호위원회 이딴 거 믿고 설치는 거냐 지금? 나 때는 너네 보기만 하면 다 썰어서 먹고 그랬어 새끼들아!"

 

  바륄라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허벅지를 붙잡고 싶었다. 경비대장은 벽을 보고 무릎 꿇은 괴수들의 뒷통수를 한 번씩 때리고 사라졌다. 경비병들은 모든 괴수를 방 안에 집어넣고 문을 걸어잠궜다.

 

  크게 한숨을 내쉰 바륄라가 배급품 상자에 다가갔다.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상자를 열었다.

 

  "이, 이건..."

 

  바륄라는 떨리는 손으로 요구르트를 들었다.

 

  "그, 그 말로만 듣던... 요, 요, 요쿩흫므가... 요구르트!"

 

  옆 방에서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걸 내가 얻다니. 처, 천하의 진미가 담겨있다는 물건이 어째서 배급품으로... 아, 아니 그런 걸 생각할 떄가 아니지. 우선 먹자, 먹는거야."

 

  바륄라는 한 줄의 요구르트 중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손톱이 너무 길어 겉을 뜯기가 어려웠다. 펜을 쓰면 잉크가 묻을까 걱정되었다. 바륄라는 조심스럽게 손톱의 끝으로 겉을 찔렀다. 그 순간 너무 날카로운 손톱 탓에 요구르트 용기가 터지면서 안에 있던 요구르트가 모두 바닥에 흘렀다.

 

  "이, 이런 젠장!"

 

  바륄라는 주저없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흘린 요구르트를 핥았다. 요구르트가 혀를 타고 식도로 들어가는 순간 바륄라는 몸을 비틀었다.

 

  "끄, 끄워어어럭ㄹ! 마, 맛있다!!! 끄웡어!"

 

  옆방에서 벽을 계속 차댔고 건너편 방에서도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바륄라에겐 들리지 않았다. 바륄라는 바닥에 흘린 요구르트와 먼지를 구분하지 않고 핥았다.

 

  "말도 안돼. 온 몸에서 힘이 솟는 것 같아. 이런 걸 내가 먹을 수 있다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

 

  바륄라는 배급품 상자를 봤다. 한 줄에서 하나를 뺀, 다섯 개의 요구르트가 남아 있었다. 순간 머리에 부모님 생각이 났다.

 

  "지난 편지에 아버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 하셨지. 그래, 이걸 가져다드리면..."

 

  14 구역은 3 구역에서 한 달은 족히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매번 터뜨려서 드릴 수도 없어."

 

  스트로. 스트로? 스트로! 하고 바륄라가 혼잣말을 하며 방방 뛰었다.

 

  "그래. 빨대, 빨대가 있어야 해!"

 

  바륄라는 한참이나 방에서 방방 뛰었다. 그가 탈충 계획과 빨대 획득 계획등을 모두 세우며 잠을 자지 않고 아침을 맞았음에도 지치지 않은 것은 분명 요구르트의 기운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