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

by 타이머 posted Jan 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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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날 며칠을 걸어도 도무지 변화가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산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우리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은 이미 오래 전에 다 마셔 버렸다. 그게 벌써 사흘 전의 일이다. 마른 입을 쩍쩍거리며 억지로 침을 내어 본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설 뿐이었다. 나도, 그도 지쳐버린지 오래다.

- 이보게

오랜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못들을 뻔 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기다리는데 그에게서 말이 없다. 다시 고개를 끄덕일까 하는데 나즈막한 소리가 들렸다.

- 보이는가

무얼 말하는 걸까.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햇빛을 피하려 머리에 두른 천 사이로 눈이 보인다. 흰자위가 실핏줄로 온통 붉다. 나를 너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길을 따라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모래사막이 있었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 자세히 보게

나무가 있었다. 눈에 모래라도 들어간 것일까. 눈을 비벼보지만 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그가 달린다. 나도 뒤질새라 열심히 달렸다. 무너지는 언덕을 내려가다 헛디뎌 굴렀다. 일어나 다시 달렸다. 그는 이미 저 멀리 달려가고 있다. 너무 쳐지면 안된다. 그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 물을 마실테다.

달리던 그가 우뚝 멈춰섰다. 지나쳐 가려는데 그가 가로막는다. 어디서 내게 그런 힘이 있었을까. 그를 밀치고 달렸다. 하지만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나무는 있었다. 까맣게 죽어서 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물이 있었을테지. 다 말라버린 것일테지.
조금이라도 있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머릿속이 뜨겁다. 이미 햇빛에 익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주먹으로 나무를 쳤다. 힘이 없어 아프지도 않다. 두 번, 세 번째 주먹을 뻗자 그제야 조금 아프다. 그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 그만하고 가세

그는 왜 이 나무를 발견한 걸까. 보지 못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쓸데없이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바보같은 놈 때문에 황금같은 힘을 낭비한 것이다. 네 번째로 뻗은 주먹이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이미 다리가 풀려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말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일어선다. 허리를 다쳤는지 오른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번쩍인다. 무얼까.  어깨쪽 옷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조금씩 붉은 물이 들고 있다. 그의 손에는 녹이 슨 칼이 들려 있다. 허리춤에 숨기고 있었나보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이대로 그에게 죽는 걸까.

그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진다. 한참동안 움직이질 않는다. 조심히 발끝으로 건들여보아도 반응이 없다. 눈이 뒤집어져 기절해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단칼을 빼앗아 들었다. 허리춤에 잘 갈무리하고서 쭈그려 앉았다. 움직일 힘도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칼을 꺼내 그의 목을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한방울이라도 놓칠새라 입을 대고 쭈욱 빨았다. 목젖을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배까지 불러온다. 남는 것은 물통에 채웠다. 이것으로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몇날 며칠을 걸어도 도무지 변화가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산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른 입을 쩍쩍거리며 억지로 침을 내어 본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설 뿐이었다.

사막 말고는 다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 보이는 나무는 모두 까맣게 죽어 있다. 걷고 있자니 묘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어떻게 여태껏 살아 온 것일까.  그는 누군데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일까. 나는 누구인 걸까. 내 부모는 어디 있는 걸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사막이니까. 보이는게 전부인 곳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 안녕하시오

며칠만에 사람을 만났다. 만날 줄은 알고 있었다. 어쨌든.

또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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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카테고리에 올릴까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공포스러워도 현실에 근거한 공포물도 아니고

배경이나 상황도 비현실적인 것이므로 판타지에 올립니다.


요새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만, 예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자료 보호 차원에서 이렇게 올려 봅니다.


date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