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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絶命)

#1. 내가 사랑하는 사람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그는 이제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지. 야자를 하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놀란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의 머리카락은 고등학생 또래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긴 편이다. 자기도 불편해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자를 생각은 없는 듯하다. 나는 그가 잘생긴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연예인들만큼 잘생긴 게 아니라는 이유로 평범하다고 말한다. 옆에서 본 모습은 그의 모습 중 가장 멋있지만 요즘은 머리카락에 다 가려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그리 마른 체형은 아님에도 생각보다 힘이 약하다. 편식이 심해서 일까.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편식을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 보면 난 역시 그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 심호흡을 한다. 무척이나 사랑스런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던 나에 비해 그는 꽤 예민하다. 놀라게 해주려면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4층짜리 건물 중 우리 집은 3층에 있다. 4층에 방 하나가 있는데 다락방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4층 방에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는 쓰지 못한다. 2층 계단에 있는 문을 열고 올라갔다. 그 문을 열 때 소리가 크게 나서 그가 알아챘을 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2층 계단의 문과 현관문은 같은 열쇠를 쓴다. 천천히 넣고 돌리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안에서 TV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들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있는 방의 문틈 사이로 누워서 TV를 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요즘 또래와는 다르게 예능프로보다는 뉴스를 주로 보는 편이다.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는 놀라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옆방으로 가는 구석에 숨는다. 다행히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가 화장실로 향하자 뒤에서 껴안는다. 나이가 18살이면서 아직도 그는 베이비 크림을 쓴다. 키 차이가 조금 나서 그의 목에서 나는 아기 냄새를 맡기 쉽다.

“야, 언제 왔어!”

돌아본 그의 표정에는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져있다. 벌어진 입술을 보고는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말았다. 그가 내 등을 두드리지만 곧 놀란 게 진정된 듯하다. 입술을 때고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놀랬잖아. 야자는?”

입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방금의 입맞춤이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물어본 말에 대답하기 보다는 한 번도 입을 맞추고 싶어진다.

“형이 보고 싶어서 일찍 왔지.”

안타깝게도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비록 1살 차이지만 그 1살 차이라는 점 때문에 내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물으면서 내게 안겨오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 이렇게 예쁜 짓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이지. 학교 앞에 파는 슈크림이 들어간 붕어빵도 사왔는걸?”

“우와….”

크게 입을 벌리며 내가 건내준 봉지를 받아드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남자가 귀여운 짓을 하면 죄악이라고 하는 친구들 말은 역시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저기, 형.”

봉지에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나에게 내미는 그를 보며 말한다.

“응? 일단 이거나 받아. 나만 먹으면 미안하잖아.”

그가 내민 붕어빵 하나를 입에 문다. 처음 그와 사귈 때는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는 것까지 닮은 것 보면 우린 하늘이 이어준 연인사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고 지금 내 앞에서 열심히 붕어빵을 먹어대는 사람은 병원에 실려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웃어댔다.

“저기… 사실은 중학교 때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뵙기로 했거든….

“그래서 지금 나간다는 거야?”

“응. 그래야할 것 같아.”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연다.

“다녀와. 대신 일찍 와!”

다행히 허락해준다. 너무 잡혀산다고 뭐라 하지 말아주길.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고마워. 저녁때까지는 들어올게. 그럼 나 교복 갈아입을게.”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여전히 TV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려고하자 조금 싸늘해진 느낌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려고 하는가 보다. 핸드폰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나야, 형.”

「준원이다, 준원이.」

아이가 어미를 부르듯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따듯하다.

“저기, 미안한데…, 나 조금 늦을 것 같아.”

「얼마나….」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싸늘해진다. 예상 못한 건 아니다. 그는 요즘 내가 언제 오고 나가는 지에 민감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에 대한 복수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과도한 집착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 그런 경우는 아마 ‘저를 사랑해주세요’라는 표현일거에요. 그 분께는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아마 자신에 대한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주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는 그런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겠고요.”

그래. 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만족할 때까지 내 사랑을 보여주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가 힘들어 할 때마다 내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7시쯤에 들어갈 것 같아.”

「꼭 7시 안에 와야 돼, 알았지?」

그가 늘 이렇게 재촉하는 것이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선물 사온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아서 귀엽기도 하다.

“알았어.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저녁은 같이 먹자.”

내 약속에 안심이 된 듯,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사랑하는 자기야, 빨리 와.」

마지막으로 들은 그 말이 마음속을 맴돈다.

 

 

오랜만에 본 애들과 얘기하느라 밖에 비가 내리는 줄도 몰랐다. 다들 들떠있는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7시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그가 화낼 텐데….

집 앞에 도착하고 나니 시계바늘이 7시를 조금 넘었다. 그래 봤자 5분. 그 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가 무릎을 모으고 소파에 앉아있다. 저렇게 있지 않으면 안 될까. 너무나 외로워 보인다.

“형, 내가 조금 늦었지? 미안….”

“7시까지 온다고 했잖아!”

생각보다 큰 고성이다. 그를 화나게 하는 것, 그를 걱정시키는 것은 나쁜 일인데….

“그게, 밖에 비가 내려서…. 실내에 있어서 몰랐어. 겨우 5분밖에 안늦었잖아.”

“그래, 그 5분이 문제야. 내가 보고 싶었다면 비가 오더라도 미리 5분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됐어.”

“그치만….”

“친구들과 논다고 내가 보고 싶기나 했겠어?”

“아냐, 그저 오랜만에 봐서….”

“그래서 나랑 한 약속을 어겼잖아!”

“미안해, 미안해….”

“됐어.”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보며 그의 마음도 그렇게 닫히진 않았을까 걱정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방은 ‘우리 방’이었는데…. 그가 들어간 방은 사실 부모님이 쓰시던 방이다. 부모님은 서울에 직장에서 직장 생활을 하신다. 나도 고등학생이 아니었다면 같이 서울로 갔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가기 싫었다고 할까. 상경하지 않은 덕에 그와 이렇게 같이 살게 되었으니 다행인 일이다. 그는 집에서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처음 그가 나와 살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님께서 우리 부모님의 허락이 있다면 동의하겠다고 말씀하신 것 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살게 되었을 땐 엄청 행복했는데….”

그가 들어간 방을 쳐다보다가 결국 옆방으로 들어왔다. 원래 내가 쓰던 방. 그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된 이후로 이 방에서 잔 적이 없었다. 부모님 방에는 2인용 침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꼭 안고 잤을 때 느낀 온기는 정말 따뜻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랬는데….”

내 잘못이리라. 그가 이렇게까지 변한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

“미안해…. 평생 속죄하며 살 거야. 그러니까 오늘 늦은 5분, 봐주면 안 될까?”

차가운 1인용 침대에서 한참을 혼잣말을 하다가 결국에는 잠들었던 것 같다. 잠든 나를 깨운 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문을 조금 열고 빼꼼히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자고 있었어?”

“아, 그게 말이지….”

“나랑 같이 자! 혼자 자지 마!”

그가 그렇게 소리치며 내 옆으로 쪼르르 다가온다. 그 모습에 조금은 투정을 부려본다.

“형이 문을 닫았잖아. 어쩔 수 없었는 걸.”

“그래도! 잠은 나랑 같이 자!”

“알았어, 그것도 미안해. 시간 못 지킨 것도 미안해. 용서해줄 거지?”

“응…. 대신 나 꼭 안고 자.”

사랑이 부족해서 늘 사랑을 갈구하는, 그러면서도 늘 사랑을 의심하는 그. 의심하지 마. 평생을 사랑해줄게.

“사랑해.”

옆에 누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눈을 깜빡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나도 사랑해….”

“나는 언제나 형 편이야.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어, 우리 서방. 근데….”

“걱정 마라니까. 서방님은 절대 배신 같은 거 안 해.”

“그게 아니고 나 배고픈데….”

“응?”

그러고 보니 저녁 안 먹었구나. 그도 배고플 텐데…. 상관없으려나, 이제 밤이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그가 없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가장 잘하는 건 이것저것 다 프라이팬에 얹어놓고 볶아먹는 볶음밥.

“일어났어, 남편?”

“응, 잘 잤어?”

그가 잡고 있는 프라이팬에는 역시나 잡다한 것과 주재료인 밥이 섞여 있다. 그를 뒤에서 안으며 투정을 부려본다.

“또 볶음밥이야? 다른 건 없어?”

“먹기 싫으면 말아. 점심때까지 굶든지 말든지.”

“아냐, 먹기 싫다는 건 아니고….”

말끝을 흐리면서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간다. 입술이 닿을 때쯤 그가 내 머리를 내려치더니 “이 닦고 와!”라고 소리친다.

“우리 집은 원래 아침 먹고 이 닦았는데….”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겨울에는 꽤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 아직은 차가운 물에 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의 말대로 이를 닦고 나오자 볶음밥이 접시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요리한 밥을 놔두고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막 돌아서려고 할 때 뒤에서 누가 매달린다.

“준원아, 업어주라.”

“뭐야, 갑자기. 형, 밥 먹어야지.”

“그럼 뽀뽀.”

내려주자마자 발꿈치를 들고 쳐다보는 그를 보고는 웃음이 나와 버린다.

“뽀뽀해달라니까 왜 웃어?”

“그냥, 갑자기….”

갑자기 행복한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가 해달라는 대로 내 입술을 가져다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이 전해질 것만 같아서.

 

 

한 번의 키스로 밥을 다 먹어갈 때쯤엔 꽤 식어버렸다. 그래도 더 따뜻한 것이 가슴에 남아있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형, 오늘하고 내일. 어디 놀러갈까?”

“음….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너는?”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대답하기 곤란하다. 기껏 주말인데도 집에만 박혀있기는 싫다. 그럼 왠지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 같다는 느낌이랄까.

?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8 08:54

     성별이 아무래도 헷갈려서 한 번 다시 읽었네요;; 제가 잘 이해한 거 맞나요? 둘 다 남자고, 매달리는 쪽이 나이가 더 많은 쪽이고...남남커플은 처음보네요. 여-여 커플은 쓰고 있는 입장이라 그나마 낯이 익지만;


     최소한 제게는 이래저래 생소한 글이네요 ㅎㅎ  그래도 그런 생소함 때문에 기대가 더 됩니다. 재밌게 봤어요^^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1 00:31

    아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고정관념이 자꾸만 부딪쳐서 글을 자꾸 오해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분명, 여자가 남자를 형이라고 부를수도 있고 여자 이름이 준원이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부모님이 남자와 여자아이를 한집에 두는 걸 허락할리도 없고...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이 이야기의 두 인물은 남자-남자 커플인 것 같은데,

    저 머리속에선 자꾸 있지도 않은 여자를 하나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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