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6 23:25

당신이 잠든 사이

조회 수 291 추천 수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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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컴컴한 곳. 영원히 밤도 낮도 아닌 곳. 이승과도 저승과도 분리된 곳. 떠돌이 귀신들만이 사는 그 곳에 주인 잃은 창 하나가 외로이 서 있었다. 그 창을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복숭아나무 가지'. 혼란스러운 것, 현혹하는 것, 어지럽히는 것을 내쫓는 영험한 창이었던 과거도 있었다지만, 그것이 온갖 귀신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게 된 건 이번 주인 손에 들어온 후부터다. 귀신들을 끌어 들이면서도 기존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어서, 혹 그것에 홀려 가까이 다가가는 귀신들은 곧바로 형체를 잃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창 주인의 권위를 높여주던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대단한 주인은 이제 죽어버려 이 세상에 없다.


 


 


 땅바닥에 바로 꽂인 복숭아나무 가지에 이변이 생긴 건 조금 전부터였다. 처음엔 창이 진동한다고 여겼던 귀신들은, 곧 자신들이 서 있던 바닥까지도 뒤흔들린다는 걸 알고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마치 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은 귀신들 세상 전체를 뒤흔든 후 어느 순간 갑자기 잠잠해졌다.



 진동이 사라지자 귀신들은 하나둘 숨어있던 곳에서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리둥절해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에게 불현듯 밝은 빛이 공중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귀신들에게 경외심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들을 해치려 한 다기보단 반대로 따뜻하고 자비롭단 느낌이 드는 그런 빛이었다.



 빛이 계속 하강하며 땅 위로 내려오자 귀신들은 고개를 들어 이 빛덩이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고자 했다. 빛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귀신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둘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홍색 바탕에 금실, 은실로 화려하게 수놓고 장식한 의복, 유리 종과 온갖 종류 금속 장신구와 같은 호화로운 장식들. 이 모든 것에 둘러싸인 그 인물은 자신의 충직한 종자, 청삽살개 '적막'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손에 놓았던 자기 창을 다시 붙잡아 들었다.



 "듣자하니 인간들 세상에서 경계가 서서히 무너져간다죠오?"



 느릿하게 끝을 끄는 말투는 여전하다. 부활한 '사랑하는 딸'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양 두 눈을 빛내며 귀신들에게 선언했다.



 "지금이 기회에요오. 먼저 움직이며언, 더 많은 이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겠죠오. 인간들이 더 이상 무의미하게 다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느 때처럼 귀신들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것이 그들이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스스로 박수를 치며 그녀는 흥분에 가득 차 새로운 세계, 얼마 전까지 이선과 현아가 경계를 지키던 바로 그 세상을 향해 본격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그때처럼 종말이 가까이 다가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끝>


 


=====================================================================================================================


 예전에 단편제를 할 때가 기억나네요.


 그게 제게 있어선 첫 단편제였던 것같은데, 그때 <인간의 날>이라는 글을 한 편 올려 심사를 받았었습니다. 수상권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반응은 괜찮았고....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그때 <인간의 날>과 같은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얘기하는 글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마녀와 정령, 요사이 제가 다루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그런 뒷배경 얘기와는 상관없이, 그냥 음침하고 불안불안한 이야기였다면 충분할 듯합니다. 어차피 다른 글과 연계가 있다 해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글이고, 인물들이 좀 비슷비슷해보이지만 다 다른이야기라고 해도 별로 문제되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결론입니다. 언젠가는 좀 뭔가 극복되고 해결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네요. 아직은 이번 글처럼 뭔가 찜찜하고, 불안불안한 이야기가 더 맘에 들지만요. 그래도 판타지인데, 영웅 하나쯤은 있어야 할 거 아녜요 ㅎㅎ


 


 그럼 시험 끝나고, 계기 생기면 다음 글로 뵙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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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우처럼 2010.10.16 23:25
    아니! 도로 살아나다니!
    게다가 그 빛무리에는 역사 예사 빛줄기들이 아니었던 거였군요.
    만약에 2부를 쓰신다면 또 재미있을 듯. ㅋ
  • profile
    윤주[尹主] 2010.10.17 01:23
    빛무리들이 나타난 이후 세계에 대해 계속 쓰려고 하지만, 너무 다룰 게 많더군요;; 단편만으로 종합해 보이면 너무 설명조가 되어 버려서 고민중입니다;; 아마 장편 한 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언제 쓸 수 있을지요ㅠㅠ

    달리 기획한 게 없긴 하지만 2부가 나온다면, 정말 재미있게 써보고 싶네요^^ 워낙 여기저기 적을 많이 만들고 다닌 '사랑하는 딸'이, 가장 최초로 만든 적이 이선 - 현아니까요. 2부를 쓰게 된다면, 아마 수많은 인물들의 난투전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마녀&정령 콤비며, 이선 현아 커플, 그외 몇몇에 아직 공개하지 않은 인물까지...
    일단 제 상상이 닿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먼저 써볼까 합니다. 아직 너무 큰 이야기를 다룰 수준은 아닌 것같아서;;
  • profile
    SinJ-★ 2010.10.20 23:48
    생각하는 건 읽는 사람 몫이고 쓰는 사람은 꿀리지 않게 쓰는 걸 추ㅋ천ㅋ
  • profile
    윤주[尹主] 2010.10.21 05:34
    감사합니다 ㅠㅠ 일단 그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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