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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처음엔 저 꼬마애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화가 산으로 가면서, 어쩌면 저 꼬마애가 아니라 그놈의 고양이가 문제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했었다. 편의점 동생 놈이 문제다, 혹은 IMF가 문제다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핑계대본 적도 있었다. 모두 그놈들 때문에 이야기는 자꾸 산으로 가고, 고양이는 자꾸 죽었다 살았다 하며, 꼬맹이는 반쯤 헐벗은 채로 어거지 쓰고 거짓말만 잔뜩 해대는 거라고 의심 없이 읊조리곤 했다.



 지금에야 고백한다. 이야기가 빙빙 돌아 비로소 여기에 이른 건 결코 고양이나 자칭 인간 왕, IMF의 음모 때문이 아니었다고.



 이 모든 건 전부, 한 점 티끌까지도 모두 오로지 나 하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다.



 "어쩐지 찜찜하다 싶었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죠?', 하고 네가 물었을 때 말이야. 똥인지 된장인지 입에 넣어봐야만 아느냐고들 자주 말하잖아. 내가 딱 그 짝이었다니까. 흡사 입에 넣어봐야만 구별할 수 있을 것처럼, 전등 속에 뛰어 들어온 몸이 타들어가야 비로소 불이 뜨거운 줄 아는 불나방처럼."
 "떡이다, 하고 던져 주니까 냉큼 받아먹는 호랑이 같았죠? 실은 달군 돌인데."



 소녀 비유가 어쩐지 좀 더 와 닿는다. 평생 남이 주는 떡만 받아먹던 우리 속 호랑이가 되다보니, 남이 준다면 떡인지, 고긴지, 비닐봉지인지도 가리지 않고 일단 목에 넣고 보는 거다.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누군가 말하면 틀림없이 그렇겠구나, 싶고, '이게 네 생각이지'하고 물으면 또 한 점 의심도 없이 자기 의견이라고 믿어 버린다. 언젠가 삼킨 비닐봉지가 제 목을 막을 줄도 모르고, 아무 위기의식도 없이.



 "결국 제 말 대로죠? 고양이에게 사망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오로지 고양이 자신뿐이에요. 야옹, 하는 자기 울음소리야말로 상자 속에 갇힌 고양이에게 주어진 결정적인 카운터펀치인거죠. 아무리 대단한 학자라도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상자 속 고양이가 반쯤 죽고 반쯤 살아있는 그것이라고 말할 순 없을걸요?
 어쩌면 반격 기회를 얻은 건 고양이뿐만이 아닐지 몰라요. 어쩌면 신에게도, 혹은 당신에게도."



 죽기까지 인간의 마음을 지킨 카프카의 벌레. 훈훈하게 웃을 줄 알았던 할리우드 인조인간은 남들이 인정해주기 훨씬 이전에 이미 스스로 인간이었지. 스스로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 그건 상자 속 오롯한 고양이로 살아남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그럼 넌 대체 뭐지? 네가 생각하는 너 자신 말이야."
 "글쎄 전 한 마디 거짓말도 한 적 없대두요?"



 살짝 볼멘소리로 소녀는 웅얼거렸다. 뭐 거짓말이면 어떠랴. 그녀 자신이 그렇다는데…….



 사실은 알고 있었어, 란 말이 목청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가 이내 꺼지듯 사라져 버린다. 이 의미도, 끝도 없어 보이던 담화 중, 나는 진작 보고만 것을 보이지 않는 양 시치미 떼고 있었다. 소녀의 어깨 위로 수북이 얹혀진, 거대하고 짙은 어둠에 대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최대한 단순화된 조건이 주어지고, 그 조건 하에서만 풀어야 하는 문제란 뜻이다. 주어지는 건 철저히 관찰자와 고양이가 들어 있을, 모종의 장치가 된 상자뿐이다. 고양이가 울 여지 따윈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는, 삭막한 실험이다.


 


 그래도, 당신에게 또 한 번 묻고 싶다.


 



 상자 속 고양이는, 실은 울고 있었던 게 아닌지?


 


====================================================================================================


 


 네. <상자 속 그 고양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솔직히 좀 더 멋진 글을 기대했지만 실력이 저조한 관계로 서툰 글, 노골적인 글이 되어버렸네요;; 이게 고양이에 대한 얘긴지, 소녀에 대한 얘긴지...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하기도 합니다. 결국 분명하게 떨어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같기도 해서;;


 


 아무튼 완결입니다. 판단은 읽는 분들 몫이고, 어차피 제 글이 남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궁금해 올린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또 계속 남 글만 읽고 있으니 어쩐지 한 번은 제 글도 보여야할 것 같기도 했고요;;


 


 또 한동안은 다른 분들 글 읽으며 보낼 것 같습니다...또 뭔가 쓰게 되면 올리게 되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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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우처럼 2010.09.14 21:21
    상정되지 않을 조건이라고 하더라고 힘껏 울어나 봐야죠.
    그것이 공허한 메아리일지라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라도
    나 여기있어 라고 외쳐볼 수밖에요..

    아무튼
    연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뭐랄까 생각하게끔 하는 소설이였다고 할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0.09.15 08:49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노골적이고 골치아픈 글이었죠;; 다음엔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 profile
    클레어^^ 2010.09.15 04:20
    전 철학적인 소설이라 생각합니다만...
    결국엔 모든 것은 자기에게 달려있다인가요? (어렵습니다 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0.09.15 08:52
    특별히 제가 내세울 것이라기보단, 그런 걸 요구하는 시대인 것같습니다. 여기 있단 것을 끊임없이, 각자 알아서 알려 주기를 바라는 시대요^^
    ...생각해보면 철학적인 글이라기보단 컴플렉스 가득한 글이네요.;;
  • ?
    비벗 2010.09.15 08:30
    아아, 이 반전! 좋습니다아...
    사소한 잡담인 줄 알았던 대사들마저 되살아나는군요.

    고양이가 없는- 상자 속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상자 속 고양이 실험.

    신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느냐 - 신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느냐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느냐 - 그대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느냐
    증명할 수 없다면 신은 없는-그대는 죽어있는- 것인가?

    소녀는 울어 보였고, 카페 아저씨는 울어야겠다고 생각하는군요.
    저희 집 강아지는 안아달라고 울고 있네요. (응?)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 고민해 볼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0.09.15 09:00
    사실 마지막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 글 전부를 쓴 거니까요;; 앞 부분과 충분히 연계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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