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9 23:23

이상한 나라의 시우

조회 수 233 추천 수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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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층 입니다


 


 버튼을 누른 후 심란한 마음에 공동현관을 서성거리던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곧바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번엔 그 쪽도 나를 모르는지 아는 척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도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역시나 금새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체 이건 또 누구신지? 나는 내 얼굴을 보며 그리고 처음 보는 교복을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여자가 내 한숨 소리에 흠짓 놀라는 듯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예전 얼굴이 그닥 잘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이건 아니잖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도 계속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정문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도 무언가 얼굴을 비출만한 게 눈에 띄기만 하면 살짝살짝 내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곤 이럴 수가, 하는 당혹감에 인상을 구겨야만 했다.


 


 다시 말해 지금 나에게 엄습해오는 정신적 공황의 정도는, 버스를 탔는데 교통카드가 읽히질 않아, 그런데 마침 현금이 없네. 그런데 뒤에는 얼굴에 한 가득 출근시간의 짜증을 담은 사람들이 눈에 불똥이 튈 것처럼 노려봐. 으악 어떡하지? 정도의 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사실 객관적 입장, 그러니까 성형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내 목 위에 펼쳐져 있는 낯선 이의 얼굴은, 어제까지만 해도 내 아이덴티티를 설명해줬던 그 얼굴과 비교했을 때 조금은, 아니 상당히 우월한 구조를 가지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아. 얼굴이 잘생겨지다니! 그야말로 만복의 흥원이로세. 하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인간에게 제일 공포스러운 것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나는 지금 공포의 한복판에 서있는 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파트 밖의 풍경이 내가 알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거기다 밖으로 나왔더니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면 그만 길바닥에서 혼절했을지도 몰랐다.


 


 신이 있어 그 미친 작자가 나에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게끔 했다면, 무엇보다도 내 정신건강 수준에 대해서 만큼은 훤히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야말로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몰아 부치고 있으니 말이다.


 


 버스 정류장도 어제와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나가는 차에 내 얼굴이 비치기라도 하면 또 울컥하고야 만다.


 


 그래 정류장 위치 따위야 바꿔봤자 별로 재미도 없으니까 그대로 둘만도 해. 그런 것 보다는 나 같은 사람 갖고 노는 게 재미가 쏠쏠하니 그치?


 


 …… 어이, 장난하냐? 장난해? 혹시 정류장 위치만 제대로 갖다 놓고 학교는 없애버리고 그런가야? 일단 안도를 시킨 다음 뒤통수를 치는 그 맛? 그 맛이 기가막히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제발 그러진 말자. ?


 


 나는 서둘러 정류장 정보를 확인했다. 비록 교복은 달라졌다고 해도 학교는 그 장소에 그대로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마침내 내 눈이 평소에 타던 555-2번 버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늘 내리던 그 위치에 보정고등학교의 존재를 확인 하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오랜 갈증을 해갈해주는 천상의 음료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나마 학교는 제자리에 붙어 있구나. 나는 그제서야 조금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듯싶었다. 뭔가 저 학교에 가면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 밤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뒤바뀐 이유. 내가 왜 이런 상황에 휘말리게 됐는지 조금은 알 수 있으리라.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조금씩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다면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로 북적거려야 할 정류장이지만, 아침부터 이리저리 놀라는 와중 꾀나 늦어진 모양인지 사람들의 수가 비교적 한산했다. 정류장엔 나처럼 지각을 면치 못할 몇몇 직장인과 학생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다가 완전 지각하겠네. 학생주임으으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 내가 당신한테 혼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줄 알지? 지각 좀 했다고 그렇게 멸시와 혐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어제도 그래, 물론 머리에 힘 좀 주고 교복을 좀 줄여 입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혼이 빠지도록 혼나야만 할 사항은 아니잖아. ?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일에 화를 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각 따위를 걱정하다니. 학생주임한테 혼나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살아왔고 살아왔던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송두리째 흔들려 버렸는데. 그야말로 모든 게 변했는데. 줄여놨던 교복도, 부모님도, 내 자신도


 


 어쩌면 학생주임도 더 이상 그 학교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인데 웬수 같은 학생주임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가 나와 같다면, 그 역시도 이상해져 버린 세상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같이 해쳐나갈 동료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침내 저 멀리서 555-2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저 버스를 타고 가보면 알 수 있겠지. 모든 것이 얼마만큼이나 뒤틀려 버렸는지. 마음속으로는 절실히 언제나와 같은 학교의 모습 이길 기원하지만 장난스러운 신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야말로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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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희 학교의 개강후 수강신청 정정일 첫날이었습니다.


 


방학중에 집에서 수강신청을 하다가 철저히 실패한 경험을 했던지라


오늘만큼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라는 다짐과 함께 정규 수업이 끝나고도


2시간을 기다려 학교에서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했습니다만,


 


집에서 하나 학교에서 하나 별반 다를게 없더군요.


그래서 오늘도 역시 완벽한 실패를 맛본 후 


터덜터덜 6시의 꽉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했죠.


 


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학교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로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개방된 장소에서 글을 쓰자니


주변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집중이 자꾸 흐트러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사실 그들에겐 저와 저의 소설은 전혀 관심거리도 아니었겠지만


원래, 소극적인 사람은 어느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이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이래저래 힘든 하루였습니다.


여러분은 즐거운 하루이셨는지요.


 


끝으로 밤공기가 많이 차졌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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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0.09.09 23:23
    어떤 글쓰기 책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집안에서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작업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였던가;;
    도서관같은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저도 밖에서 뭔가 쓰기엔 좀 부끄럽더라고요;; 결국 자기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 모양이에요.

    그나저나 주인공 참 당황스럽겠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내던져진 것같아서;
  • profile
    시우처럼 2010.09.10 03:29
    집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면 중간마다 지루해질 때 마다 잠깐씩 인터넷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문제는 그 잠깐의 시간이 꾀나 길어지게 된다는 것이지만요. ㅋ;;

    저 같이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에게 있어선
    익숙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긴 하지만
    초고는 손으로 직접 노트에 쓰고, 그 다음 작업부터 컴퓨터로 하는게
    어쩌면 주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엔 사방 도처의 악마의 유혹이 널려 있으니까요. ㅎ

    그리고 소설 내용에선 지적해주신 부분은 참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랍니다.
    만약에 내가 저런 환경에 떨어지면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할까.
    소설안의 주인공의 모습이 뭔가 비약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건 아닌가.
    계속 고민은 합니다만, 제 역량의 한계인지라 낯선세계의 공포와 그것을 표현하는 리얼리티적인 방법론은
    정말 애매하기만 하네요.
  • profile
    클레어^^ 2010.09.10 08:10
    헉! 전 이미 졸업한 지가 오래인데 ㅠㅠ
    전 학교 다니는 학생들 보면 요새 부럽답니다 ㅠㅠ
  • profile
    시우처럼 2010.09.10 17:37
    학생이 스스로가 아직 학생일때,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는 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좀더 빛나는 것이 되었을지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을 하지 못하니까요.
  • ?
    비벗 2010.09.10 08:31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 profile
    시우처럼 2010.09.10 17:37
    감사합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 profile
    ♀미니♂ban 2010.12.07 04:22
    마치 뫼비우스의 띠같은 현상이군요. 꼬여버린 인생에서 돌아가는 세상..나도 시우님처럼 글을 쓸라고 해도 이런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근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형을 좋아하는듯..
  • profile
    시우처럼 2010.12.08 01:14
    사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글은 그닥 인가가 없습니다... ㅋㅋ

    윤주님 정도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는 편이지요(고맙게도)
    이글에 댓글이 많이 달린 이유는 제가 이 글을 올랄 당시 소설 게시판이 잠시 흥했을 때였거든요
    그렇다고 지금은 망했다는게 아니라, 뭔가 바이오리듬처럼 올라오는들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그러더라구요.

    아무튼 결론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달아주신 덕분에 메인에도 올라갔네요. ㅎㅎ
  • ?
    乾天HaNeuL 2011.01.06 05:30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서, 주인공 내면 묘사가 아주 적절한 거 같아요~~~ 굿굿굿~ ㅋ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6 20:58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품 좋게 봐주시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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