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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의 왕'이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우선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먼저 그딴 얘기를 꺼낸 건 대체 누구냐? 눈앞에 저 꼬맹이인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누가 저 애 입을 열었던가. 처음 이야기를 시켜서 이딴 되도 않는 말을 시킨 게 어떤 작자냐? 장 모 씨냐? 이 모 씨냐? 아님 당신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나였다.



 소녀와는 오늘 처음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차라리 내가 끌고 들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오해받을 소지만 키우는 걸까? 흠흠, 적당한 표현을 찾아보자면…….글쎄, 보호 중이라고 해두자.



 대낮인데도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는 카페에 오로지 소녀와 나 단 둘뿐이다.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지는데? 착각하진 말자.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니까. 대낮에 카페에 손님 하나 없는 것도, 그 카페에 나와 소녀만 있는 것도 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란 말이다.



 모든 건 아침부터 쏟아져 내린 비 탓이다. 우산을 쓰고도 바짓가랑이 젖는 건 어쩌지 못할 정도로 심한 폭우 속을 뚫고 이런 골목길 작은 카페에 일부러 들릴 사람이 있을 리 없어서, 사람 하나 없는 가게를 나 혼자 반나절을 멀뚱히 앉아 지키던 중이었다. 문득 라디오라도 틀까, 하고 생각한 게 정오쯤이었다. 너무 오래 홀로 있던 탓일까.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카운터 위에 MP3 한 대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라디오는 되는 모델이었다. 그 MP3을 집어 들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세찬 빗줄기와 함께 쓸려 내려갈 것만 같은 커다란 유리창가로 다가가 밖을 보면서, MP3 전원을 눌렀다. 이어폰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액정을 보며 전원을 여러 차례 눌러도 MP3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건전지 생각이 났다. MP3 뒷면을 열어보니 건전지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당연히 건전지가 들어있겠지 지레짐작하고 혼자 바보짓을 한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내 눈 앞에 그 애가 나타난 건.



 유리창 너머 나타난, 열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는 가게 앞을 종종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늘색 원피스 위에 흰 블라우스를 걸치고, 분홍색 단화 구두를 신은 차림만 보면 소풍이라도 나가는 양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철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다 맞으며 보도를 따라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내가 소녀를 가게 안에 들인 건,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그 모습이 몹시 처량하고 안 돼 보였기 때문이다.



 가게 안에 들어온 소녀를 보니 그 몰골이 더 안쓰러웠다. 검은 머리칼은 축 늘어져 창백한 살갗에 달라붙어있었다. 몸이 젖어 추운지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일단 몸 좀 닦아야겠다."



 그 와중에도, 젖은 블라우스 아래 하얀 어깨며 팔 살갗이 언뜻 비춰 보이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하늘색 원피스는 펠트 비슷한 것으로 블라우스처럼 속이 비춰 보이지 않았다.



 스텝 실에 마침 나무의자가 있었다. 그걸 꺼내와 애를 앉혀두고, 바로 옆 편의점에 갔다. 젖은 몸을 닦을 수건 서너 장, 비닐우산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 내려놓자 계산대를 지키던 알바생 표정이 퍽 이상했다.



 "형, 카페에 수건이 왜 필요해? 애들 우산은 또 뭐에 쓰게. 뭐 사고 쳤어?"
 "아냐, 인마."
 "또 답답하게 이러신다. 얘기 좀 하고 삽시다. 나랑 형, 얼굴 하루 이틀 보는 사이야? 아니잖아."
 "가게나 잘 보고 계셔."



 이딴 거만 눈독들이지 말고. 소위 아는 동생이란 녀석 앞에 놓인 모니터를 힐끗 보며 타박을 놓았다. 답답하게 비좁은 화면 안을 빌빌대며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캐릭터,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 게임 중독자인 녀석은 주위에서 뭐래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넉살좋게 웃으며 슬금슬금 눈치만 살필 뿐이지.



 한편으론, 그 한심한 녀석이 형, 형 하면서 엉겨 붙는 걸 놔두는 것이 바로 그 기막힐 정도로 비위 좋은 성질 탓이기도 하다.



 "나 간다. 수고해라."
 "아, 형. 언제 동생 밥 한 번 안 사주나?"



 알았수다. 하도 기가 막혀 대충 대답하고 가게로 넘어왔다. 문을 닫고 가게 안을 향해 뒤로 돌자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내가 꺼내준 의자 위에 다리를 모아 안은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신발은 의자 발치에 벗어두고, 양말 또한 벗어서 신발 위에 놓아둔 채였다. 부끄럼을 타는지, 내가 들어오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혀를 찼다. 이건 마치, 들 고양이 같잖아.


 


=====================================================================================================================


 항상 그런거죠. 1회보다 2회가 어색하고, 그보단 3회가 더 어색하고;;


 


 암튼 들고양이 소녀와의 썸씽(?)은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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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우처럼 2010.09.06 17:44
    비오는날 보면 거리에서 고양이이 삭 사라지는 것 같아요. 처량맞게 비맞고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본적이 없는듯.
    아무래도 고양이과 동물은 물을 싫어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걸까요?

    그나저나 알바주재에 가계에서 게임을 하다니, 무서운 청년이군요. ㅎㅎ
  • profile
    윤주[尹主] 2010.09.07 16:27
    그렇군요...비오는 날 고양이들은 처마 끝에 숨더라고요. 비를 맞으면서 청승맞게, 어찌 들으면 섬뜩하게 칭얼대는데....
    어쨌건 글 내용하곤 별 상관없는 얘기네요^^;;

    게임하는 알바 얘기는 목격담에서 차용해 봤어요...요샌 안 보이더군요;;
  • profile
    클레어^^ 2010.09.07 04:19
    흐음... 소녀와 첫만남이군요.
    그나저나 후배 분, 뒤에 사장님 와 계신다네.
  • profile
    윤주[尹主] 2010.09.07 16:28
    허걱, 사, 사장님!!
  • ?
    비벗 2010.09.07 09:21
    아, 들고양이, 좋아합니다. 인적 드문 길에서 마주치면 한참 동안 눈을 맞춘 채 마음의 소리를 주고받습니다...
    ... 고양이의 마음의 소리는 볼륨이 좀 작은 것 같다고도 느낍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0.09.07 16:37
    시인이시네요^^ 저는 그저 귀엽다, 까칠하다정도밖엔 모르겠던데;;

    마음의 소리라...좋은 얘기네요^^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반향이 약한 것은 보내는 소리가 작기 때문인지 모른다고요. 왜, 해저관측장비중 소나라는 게 있잖아요. 전파를 쏘아 그 반사를 통해 바닷속 지형이나 물체를 파악하는 기기. '소리를 주고받는다'고 하셔서 이런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볼륨이 큰 소리를 듣기 위해선 마음의 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데없이 말이 길었네요. 전 이런 거 좋아해요. 뜬금없는 비약,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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