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0 03:44

The Day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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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분열


 


+  +  +



 어느새 주변은 변해있었다. 타버린 가로수는 거짓말처럼 멀쩡했고, 녹아버린 아스팔트도 굳건히 바닥에 붙어있었다. 내 시력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걸까. 편안한 얼굴로 잠든 이슈미아를 등에 엎는다.


 생각보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가 가볍다. 비록 한번밖에 못봤지만, 그녀의 식성을 떠올리며 조금 의문을 품는다. 집까지는 버스로 15~20분 거리지만, 도보로는 50분거리. 아무리 이슈미아가 가볍다고해도, 짐을 지고 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 하지만 그렇다고 피투성이의 몰골로 택시를 탔다가는 분명히 신고당할테니, 걸어가는 수 밖에 없다.


 인도를 따라 걷는다. 방금전에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환상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들. 그 속에서 발견한 이상한 점들이 뇌의 활동을 요구한다. 경찰차가 대폭팔을 옆에두고 그냥 지나간다든지, 분노했다가 마지막엔 폭소를 하던 리케아라든지, 방금전만해도 있던 곳이 단층처럼 갈라지던 현상이라든지. 그리고 타버렸던 모든것이 시간을 되돌린것처럼 멀쩡하다는 것까지.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었다. 흡혈귀라는 존재가 된지 얼마 안된 나로써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이었을때도 평범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명칭만 달라졌을뿐 본질은 같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아무것도 아니다......라...."


 


 이해할수 없어, 들어가지 못한 세계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죽인다. 과연 내가 들어갈수 있는 세계가 있을까? 없을까? 없겠지..? 없을꺼야. 하지만 말이지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꿈에서 보았던 잿빛 은발의 미치광이.



 그곳밖에 없을꺼야.


 


 모든것을 잊어버릴 듯한 짜릿한 향기. 선혈로 세상을 붉게 채색하는 매끄러운 춤사위. 그곳이라면 내가 갈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망상이 흘러가는 도중,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귓볼과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이슈미아의 백발. 이어지는 망상. 하지만, 미치광이는 어느새 이슈미아의 탈을 뒤집어쓴다. 설마, 그녀가 피에 미친 광인(狂人)이란 말인가. 방금전 붉은 눈의 이슈미아를 떠올리며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려한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이슈미아가 무엇이든 나와는 관계없다. 알고지낸지 채 1주일정도밖에 안돼는 타인과도 같은 관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등에 곤히 잠든 이슈미아를 놓진 않는다.


 


 ....



 이후로 아무 생각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붉은색 한칸, 회색 두칸으로 규칙적인 보도블럭.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일까, 아니면 숨은 광기의 증거일까, 걸음은 붉은색 칸만 밟는다. 얼마안가, 시내를 통과하는 도로와 시내를 우회하는 도로로 갈라져 삼거리가 된다. 신호가 무색할정도로 한산한 도로를 건넌다. 지금 시간엔 도리어 시내를 통과하는 쪽이 이목(耳目)을 피하는데 좋을테니. 다른 도시라면 새벽이 되어도 네온사인이 어지러이 번쩍이지만, 이 곳, 인양시(市)는 강원도에서도 바다쪽에 붙은 인구 7만의 도시.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정도로 적은 인구수이지만. 그래서인지 시내는 11시~12시 사이쯤 되면 사람도 없고,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실정이다.


 


 예상대로 인적이 보이지 않는 시내초입. 가끔씩 불이켜진 가게도 보인다. 그것도 대부분 술집. 아무탈없이 지나간다. 경찰서를 지나갈때는 꽤나 조마조마 했지만.


 


 시내를 빠져나온다. 시내에서는 왕복 2차선도로였던 것이 3차선도로로 바뀐다. 그로인해 더욱더 공허해보이는 도시의 풍경. 도로의 끝에, 소촉해수욕장의 입구가 보인다.



 ....



 바다를 보러 가기위한 것을 빼고는 거의 지나다니지 않은 지하주차장. 물론 감시카메라가 있긴하지만, 그것때문에 돌아가자니, 돌아가는 길에 필히 24시간 편의점을 지나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잠시 고민한다.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점점 가까워지는 지하주차장. 걸음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뚜렷하게 보이는 낯익은 인형. 그는 내가 오는걸 처음부터 보고있었는지, 내쪽으로 다가온다. 어둠이 살짝 벗겨지면서 들어나는 윤곽.


 


"안녕."


 


 우경이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온다. 이번엔 선명하게 인식된다. 그렇다는건 '희미한 우경'이 아니라,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나를 찾아온 그 '우경'이라는건가. 우경이는 내등에 엎힌 이슈미아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게다가 굳은 표정도 아닌,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도 이번엔 동요하지 않는다.


 


 "아까도 그렇고...어쩔셈으로 나를 찾아온거냐? 무슨 부탁이지?"


 


 적개심을 품은 어조로 우경이에게 묻는다.


 


 "푸하하하~ 네가 그런 말을 하는걸 보니, 확실히 '존재'하는 모양이네. 나. 그 녀석과의 연결이 끊겼다는 느낌이 받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내 말이 어디가 그리 웃긴지, 우경이는 억지로 다문 입술사이로 웃음을 흘린다.


 


 "아, 미안미안. 자기 소개를 다시하지 않으면 안돼겠네. 나 아까까지만해도 이 세상이 존재하지 못하던 '이우경'이라고 해. 너에겐 감사하고 있어. 네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라고, 자신이 '희미했던 우경'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이슈미아를 보고도 놀라지 않은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녀석에게 난 '감사'를 받을 정도로 무언가를 해줬나보다. 그거야 어쨌든, 나는 저녀석에게 품는 적의를 버리지 않는다.


 


 "걱정마. 난 전혀 널 건드릴 생각이 없어. 오히려 난 널 좋아하는 편이라고? 후후"


 


 우경이는 두손을 흔들며, 싸울 마음이 없다는 걸 알려온다.


 


 "그럼, 무슨 볼일이지? 지금 이쪽은 바쁘거든. 그만 가도 될까?"


 


 지금은 이슈미아가 안정되었는지는 몰라도, 복부에 큰 구멍이 났다. 이대로 계속 불편한 자세로 있다가는 상태가 안좋아지겠지.


 


"부탁이 있어."


 


"뭐지?"


 


"우리들의 일에 끼어들지 말았으면 해. 그것뿐이야. 어때? 들어줄 수 있겠지?"


 


 황당하다. 내가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녀석으로 보였단 말인가. 사람보는 눈이 참 없구나.


 


"내가 왜 너희들의 일에 끼어들어야 하지?"


 


 대답하는 것조차 쓸떼없는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응해버린다. 우경이를 무시한채, 이슈미아를 엎은채로 지하주차장의 녹색바닥을 밟는다.



+  +  +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른다. 이슈미아를 등에 지고 장작 1시간가량을 걸었더니,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반정도 올라왔을까, 갑자기 등뒤에서 뒤척임이 느껴진다.


 


"이제 됐어. 나 걸을 수 있으니까. 내려줘."


 


 가라앉은 이슈미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원하는데로 자세를 낮추었다. 곧 가벼워지는 어깨의 무게.


 


 "괜찮아?"


 


 엉망이 된 자신의 옷을 보며 '이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에게 묻는다.


 


 "응. 덕분에. 고마워."


 


 그녀는 살짝 웃음지으며 대답한다. 몸상태가 괜찮아져서 다행이란 기분이 들면서도, 비록 완치는 아니겠지만, 엄청난 회복력에 속으로 혀를 내민다. 이슈미아는 가만히 서서 무언갈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머리를 과격하게 긁으며 다리를 동동 구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리케아는 어떻게 금기에 풀려난걸까!? 응!? 그리고 리케아한테 찔리고 나서부터 기억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든 리케아를 물리치고 살아난거 같긴한데..!? 어떻게!?"


 


 이 녀석, 설마 완치된거 아니야? 몸에 구멍이 난지 1시간밖에 안지난 녀석이 이렇게 날뛸 수 있는걸까.
일단 이슈미아의 신체에 대한 미스테리는 집어치우자. 아무래도 말하는 걸보니, 자신이 폭주해버린 몇분 안돼는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너, 내 피를 마신건 기억하냐?"


 


'혹시, 이것도 기억못할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에 묻는다.


 


 "다,당연하지! 기억못했다면 고맙다는 말도 안했을껄? 그보다 나 그때 어떻게 된거야?"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하는 이슈미아. 뭐지, 저 리액션은. 하지만 깊이 생각하는 걸 관둔다. 이 녀석, 하는 짓이 거의 기진이랑 비슷하니깐.


 


 "너 리케아한테 찔리고 나서 완전히... 그래, 미쳐버려서 날뛰었는걸. 게다가..."


 


폭주했을 당시의 이슈미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덤덤하게 말한다.


 


 "우,우와! 미쳤다고 말했다! 너무하잖아! 미쳤다니! 좀 더 완곡한 표현같은거 없어?"


 


 이슈미아는 눈썹이 살짝 올린채 엉뚱한 곳에서 발끈한다. 이 녀석, 자신이 공간을 잘라버렸다고 말하는 부분은 전혀 신경이 안쓰이나보다. 우선 부탁대로 완곡한 표현을 찾아 대답해주기로 하자.


 


 "흐음. 다른사람이 되었다. 이 정도?"


 


 "우우... 뭐, 그 정도로 타협해줄께. 그리고 게다가?"


 


 "인터럽트를 사용한것같은데... 그게 엄청난 것같던데...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네. 마치 공간을 잘라냈다고나 해야하나.."


 


 "흠.. 뭐, 일단 얼른 들어가 쉬자. 나 다시 상처가 쑤셔와."


 


 입술을 삐쭉 내민 이슈미아는 말로는 '타협'이라 해놓고 여전히 불만인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다. 그러게 누가 날뛰랬어? 그 뒤를 따라 나도 걸음을 옮긴다.


 


 작은 계단을 올라, 엘리베이터 버튼을 붉게 점등시킨 이슈미아는 15라고 표시된 숫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벽에 기댄다. 난 두 엘리베이터 사이에 걸린 시계를 보며 지금이 1시 20분이라는걸 확인한다. 아직 엘리베이터는 12층. 11층. 10층...


 


"뭐!? 공간을 잘랐다고!?!?!? 아야야~"


 


 긴장을 풀고 서있는데 갑작스런 고성이 몸을 뒤흔든다. 덕분에 나는 앞에 서있는 전신거울에 멋지게 헤딩한다. 다행이도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아야야~'는 이쪽의 대사야. 머리를 부비적대며 이슈미아를 바라본다.


 


"무슨..."


 


 '무슨 짓이야?'라고 쏘와주려고 돌아섰는데.. 소리칠때 배에 힘을 준 모양인지, 상처를 끌어안고 주저앉은 이슈미아. 정말 어쩔수 없는 녀석이다.


 


 "아우, 아파. 안돼겠다. 이 일은 쉬고나서 천천히 해결해야겠네."


 


 그녀는 이제서야 정말 날뛰는걸 단념한 모양인지, 조용히 쭈그려 앉아 '땡'소리가 나기만을 조용히 기다린다.


 


 땡~


 


 금세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사인아."


 


 "왜?"


 


 "엎어줘어~"


 


 ...


 


 버리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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