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3 19:27

The Day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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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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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동댕동~


 


 별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달밤. 긴 자율학습을 알리는 전자음이 수많은 발걸음을 움직인다. 미리 가방을 챙기고 문앞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은 전력질주로 복도를 빠져나간다. 단 하나밖에 없는 버스에 편안하게 앉아 가기위한 발버둥. 느긋한 녀석들은 부모님이나, 학원차량이겠지.


 


 아이들은 이미 전부 사라졌다. 5분 사이에 난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당번도 내가 가장 늦게 나간다는걸 알고, 문단속을 부탁하고는 가버렸다. 시끌벅적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고요하다. 작은 파문도 없이 잠들어버린 호수. 그곳에 서서 아무것도 생각지 못하고 모든걸 지켜본다.



 왠지 낯이 익다. 아니, 낯이 익을 수 밖에 없는 풍경인 것이다. 언제나 똑같은 무질서한 하교길. 그것이 순간이라는 것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



 달빛이 스며든 하얀 그림자도...?



 "이,이슈미아!?"


 


 눈을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인형. 그때처럼 운동장 한가운데도 아니고, 하교행렬이 다 끝난 시간도 아니다. 그저 스텐드에 앉아 내가 눈치채길 기다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좀더 '정지'하고 싶었지만, 나만의 풍경화에 끼어든 작은 '빛'이 너무나도 신경쓰여 가방을 한쪽 어깨에 대충 걸치고 돌아섰다. 그 순간 갑자기 교실에 불이 켜진다. 자신 이외는 있을리가 없는 교실에서 대체 누가 불을 킨단 말인가.


 


 "현사인."


 


 그곳엔 겁이 질린건지, 진지한건지 구분할 수 없는 굳은 표정의 우경이가 있었다.


 


 "부탁이 하나있어. 너라면... 흡혈귀인 너라면..."


 


 다짜고짜 와서 부탁하는 '우경'. 물론 작년에 같은 반이었기는 했지만, 우리는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 나에게 대뜸 부탁한다는건 그만큼 급한 사정이라도 있다는 건가? 아니, 흡혈귀로써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말고 그 누구에게도 부탁할 수 없었던 곤란한 일이겠지.
 
 "야. 사인!"


 


 돌연 울리는 내 이름에 시야가 흔들린다. 우경이의 목소리가 아니다. 목소리가 들리는 뒷문으로 고개를 비틀다시피 돌린다. 왠일인지 학원에 갔을 소혜와 기진이가 서있었다. 왜 여기에 저녀석들이 있지?


 


"너희들 오늘 학원 안가냐..?"


 


 나답지 않게 목소리가 떨린다. 혹시나 우경이의 말에 섞여있던 '흡혈귀'라는 단어를 들었을까봐. 우경이도 난데없는 불청객에 아무말없이 교실을 나간다.


 


 "뭐, 그냥, 변덕이라는 녀석이지. 공부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어? 아니, 그보다 방금 우경이 아니냐? 작년에 우리랑 같은반이었던... 무슨 일이냐? 분위기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평소같았으면, '니가 무슨 공부를 언제 했다고 휴식이냐?'라고 작은 태클을 걸어줬을 법도 한 기진이의 말을 끊어버렸다. 더 이상이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갑자기 기진이와 소혜가 멀게 느껴진다. 새삼스럽게도..


 


 어서 빨리 나가고 싶어. 그리고 핑계거리를 찾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아, 지금 요밖에서 이슈..아니, 누,누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내려가야..."


 


 "뭐!? 수인누님이이이이!?!?!? 어디어디!?"


 


 입에 내뱉어 본적이 손에 꼽는 '누나'라는 말을 꺼내는게 어려웠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이슈미아'라서 한층 더 껄끄러운 기분. 하지만 더 이상 기진이녀석이 끈질기게 물고늘어지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한다.


 


 "음, 저기 계신거 아니야? 운동장 스텐드에 앉아 있는 사람."


 


 소혜는 창밖의 스텐드를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보고있다. 그리고 그 옆을 쏜살같이 들이닥치는 기진.


 


 "오오! 지금 당장갑니다. 누님!!"


 


 '이야호'를 외치며 교실을 뛰쳐나가는 기진. 그런 모습을 보던 소혜는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젓는다.


 


 "참내. 저러고 싶을까 정말?"


 


 "그러게.. 우리도 내려가자."


 


 "...그래."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하는 소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온다.


 


 "몸은 좀 괜찮아졌어?"


 


 "어."


 


 그 이후 아무말없이 빈복도를 걷는다. 그저 선명하게 울리는 걸음만이 대화할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예전에는 기진이가 없어도 소혜와도 꺼리낌없이 지냈는데. 지금은 기진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으면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하다. 그건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중학교 2학년때쯤 소혜가 나한테 '좋아해'라고 말한 시점부터겠지...


 


 계단을 내려와 현관에서 신발로 갈아신는다.


 


 "아, 이제 나오네. 어이~!"


 


 얼굴이 풀어질정도로 실실대는 기진이가 손을 흔든다. 옆에는 살며시 웃고있는 이슈미아가 있었다.


 


 "이, 아니, 누나. 어쩐일이야?"


 


 도저히 적응되질 않는 호칭. 일단 왜 이슈미아가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는지 묻는다.


 


 "그야, 심심하기도 했고, 학교구경이나 하고 널 데려올겸 온거지. 왜 안돼?"


 


 이슈미아는 웃는 얼굴을 바꾸지 않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가, 기진, 소혜가 있는데선 말할 수 없겠구나. 납득하고는 '아니'이라고 살짝 고개를 저어 맞장구를 쳐준다.


 


 "야~! 좀더 좋아해보라고! 이 부러운 자식! 이렇게 이쁜 누님이 마중나오셨는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줄 모르는구나!!"


 


 기진이는 덤덤한 나의 반응에 속이 뒤집힌건지 '우오'하면서 폭주해댄다.


 


 "누님이 '왜 안돼?'라고 글썽이는 눈망울로 쳐다보는데! '아니'라고 말하고 땡하는 녀석이 어디있냔 말이냐!! 그럴땐 양손을 꼭잡아주면서, '아니요, 기쁩니다!'라고 말해주는거다!!"


 


 말로 하면서 덥석 이슈미아의 손을 잡는 기진.


 


 퍽!


 


 "죄송합니다. 하하하."


 


 기진의 허리를 뒤에서 무릎으로 가격해버린 소혜는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이슈미아에게 사과한다.


 


 "아니야. 재미있는걸. 기진이. 사인이가 기진이정도의 애교만 많이 귀여워해줄텐데 말이야~"


 


 묘하게 거북살스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이슈미아.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저러는건지 알수가 없다. 게다가 진짜로 내 누나라도 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에 소름이 돋는다.


 


 "이게 무슨짓이야!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라고!! 내 허리 아작났으면 니가 책임질꺼냐!? 아니,아니. 내 청춘을 헐크녀에게 맡기다니 그건 안돼고, 치료비를 받아야하는구나! 여튼 책임질꺼냐!?"


 


 옆에 서있던 나무를 붙잡고 고통을 참던 기진이가 득달같이 소혜에게 대든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이성을 잃은 모양이다. 지금했던 말들로 기진이는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없는 '즉시 사형'이라는 무지막지한 형을 선고받았다.


 


 "저기, 김기진씨 지금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잘 안들려서 말이지요."


 


 세상에 저런 천사같은 웃음으로 악마같은 살의를 내뿜는 사람이 또 있을까. 부드럽고 예의바른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섬뜩하다. 그제야 기진이는 자신의 입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아하하하, 그건 말이지요. '헐'소리가 나올정도로 키가 '크'고 아름다우신 '여'성을 줄여서 헐크녀라고 부르죠 요즘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랍니다. 아하하, 절대로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우어'라고 외치는 초록색 괴....."


 


 퍽!


 


 동시에 오른팔을 수평으로 세워 기진이의 목을 감싸듯이 쳐서 바닥에 팽겨쳐버리는 소혜. 저거 뭐라고 하는 레슬링기술인거 같았는데 말이지.


 


 "크로스 라인!!"
 
 옆에서 두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빛내는 이슈미아. 나로썬 도저히 알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들. 그보다 기진이 녀석 죽겠는걸 정말. 엄청나게 아파보이던데 말이지.


 


 이미 기진이는 절명직전상태. 그러나 소혜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운동장으로 차량 진입을 막아 놓은 바리케이트에 올라서는 소혜.


 


 "저건 설마..! 다이빙 풋 스템프!? 오오. 설마 이런곳에서 저 기술을 보게 될줄이야!!"


 


 이슈미아는 이제 막 나올 만화를 기대하는 꼬맹이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발을 동동구른다.


 


 "저기.. 그 다이빙 풋.. 이라는거 대체 뭔데 그래?"


 


 "링위에 올라가서 있는 힘껏 점프해서 무릎을 접었다가 순간적으로 펴서 두발로 내려찍는 기술이야!!"


 


 라고 감동할때냐 지금 그게. 듣는거만으로도 복부가 떨어져 나갈것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맞으면 보통 죽지 않아? 레슬링선수들 잘도 살아있구나.


 


 "소혜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지 않냐?'라고 뒷말을 이으려는 순간.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노..란..색"


 


 절규인지 환호성인지 알수없는 기진이의 말에 주변은 급속냉각된다. 정말 넌 구제불능이야.


 


 "죽어랏!! 영원히 그 허리를 못쓰게 해주마!!!"


 


 지금 무언가 충격적인 발언을 한것같은데. 자신이 무슨 민망한 말을 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소혜는 힘껏 뛰어올랐다. 아니 오르려했다.


 


 "어라. 버스 가버렸다."


 


 쿠당탕.


 


 뛰어내리려다가 도리어 보기좋게 넘어지는 소혜. 그리고 가는 버스를 계속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이슈미아. 그리고 쓰러진채 헛웃음을 연발하는 기진. 이미 아이들을 태워고 가버린 차량들.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그림자는 우리 4명의 것뿐.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소혜는 쓰러진 기진이의 멱살을 쥐어잡고 마구 흔들어댄다.


 


 "....토....끼.. 토...끼..."


 


 퍽!


 


 온힘을 다해 기진이의 복부에 꽂힌 소혜의 주먹. 그리고 잠시 침묵. 이슈미아는 언제 웃었냐는 듯, 질린 표정이 되어 나에게만 들릴정도로 말한다.


 


 "맨날 이런식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지켜본 주제에, 이제와서 남일인것처럼 말하지마. 정말.


 


 "자, 저런녀석은 냅두고 가자."


 


 볼이 옅게 상기된 소혜는 나와 이슈미아를 지나쳐 앞장선다. 상기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역시 그거겠지. 이래서야 내쪽에서도 말걸기가 힘들다.


 


 이슈미아는 '쿡쿡'대면서 소혜를 쫓아간다. 어쨌든 어서 집에가긴 가야하는데, 문제는..


 


 "으어어엉, 사인아~ 나 죽을거같아아~"


 


 왼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떨리는 오른손을 내게로 뻗는 기진.


 


 잠시 돌아본 교문쪽엔 어느새 화기애애하게 걷고있는 이슈미아와 소혜. 도대체 뭘까.
굳이 여기까지와서 나를 기다려야할 일이라는건. 그런 일이라면 오히려 기진이랑 소혜가 없는데가 좋지 않을까. 도저히 이슈미아의 속을 짐작할 수 없었다.


 


 "사인아아~"


 


 아, 정말 버리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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