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break

by RainShower posted Sep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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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분열


 


+  +  +


 


 천천히 눈을 감는다. 불안한 심리를 진정시킬지는 몰라도, 충동은 진정시킬수 없는 심리적인 행동. 잘 알면서도 자신을 어둠이 가득찬 세상에 가둔다. 템포를 타듯 춤추는 고동. 까칠거리는 식도가 거슬려 침을 삼키지만 오히려 뚜렷해지는 메마름. 단순히 생각한 것만으로도 몸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반인륜적인 행위가 아니다. 괴물이라고 따돌림 받을 행위도 아니다. 초라한 생을 살기위한 최소한의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왜 참고 있는걸까. 그러나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학교에 온 것도 의미가 없느 것이었지만, 충동을 참는것은 더더욱 의미가 없는 짓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여도 본질은 속일수 없다. 확실히 말해줄게. 난 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생물. 속칭 흡혈귀라는 녀석이다. 자. 이제 더이상 참을 필요는 없어. 난 원래부터 피를 마셔야 의미를 가지는 족속인걸.


 


그러나 아까부터 '녀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토록 달아올랐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는거지!? 왜, 왜, 왜, 왜!? 어디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는거냐. 잿더미가 될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를 너희들의 피로 식혀줘. 뭐? 너희들의 피는 뜨거워서 오히려 역효과라고? 걱정마, 적당히 찍고 뜯어서 식을때까지 기다리면 돼. 그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어. 나 이래뵈도 참을성은 꽤있다고? 그러니까 10초 줄께. 빨리 나오라고. 10. 9. 8. 7. 6. 5. 4. 3. 2. 1. 0...


 


 0. 0. 0. 0. 0...


 


 왜 나타나지 않는거지!? 어서 그 귀엽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 사지를 찢어서 하나하나 사랑해줄께. 심장을 꺼내 집어삼켜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해줄께! 어째서 몰라주는거야,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거냐! 좋아 이제 숨는 시간은 끝이야. 곧 찾아서 이 손톱으로 유린해줄테니.


 


 "크아악..."


 


 꾹 감고 있던 눈을 유지하던 힘은 고통으로 사라져버렸다. 강제로 열린 시야는 그저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과열된 뇌때문일까, 흐르는 눈물이 너무나도 뜨겁다.


 


 "여기서 뭘하고 있냐?"


 


 희미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엔 이 세상에 간신히 걸친 가련한 존재가 있었다. 아, 넌 아직 마실수가 없잖아. 필요없어. 저리 꺼져.


 


 "참, 그런것도 하나 못참아?"


 


 우경이는 입꼬리를 살짝올린다. 그 웃음이 거슬린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 점점 다가오는 우경. 단지, 따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후후, 그렇게 노려봐도 전혀 안 무서워. 아, 걱정마. 널 어떻게 한다거나 하지않아. 할수도 없고말이야. 이 상태로는."


 


 이제 막 꺼질것같은 홀로그램처럼 흔들리는 우경.


 


 "그. 럼. 무. 슨. 일. 이. 지?"


 


 터져버릴것같은 심장을 눌러잡고 간신히 입을 연다. 뭐야, 그럼 무슨 용건이야. 어서 말하고 사라져.


 


 "목소리는 무섭네. 나도 오고싶어서 온게 아니라고. 지금 교실에 있을 '우경'이가 널 보고싶은 거겠지. '현사인'이 있는 곳을. 학교에서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우경'이는 너한테 관심이 참 많아졌거든."


 


 난 비릿한 웃음을 썩으며 이야기하는 우경이를 그저 핏발선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안봐도, 난 이제 곧 사라질것같으니, 잘 참고 계시라고. 부디, 학교를 붉은빛으로 물들게 하는일은 한번으로 끝내줘."


 


 그 말을 끝으로, 예고한대로 우경이는 깨끗히 사라졌다. 벤치에서 일어난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피'를 상상한것이 이정도라면 진짜라도 보는날엔 그땐 정말로 '나'는 사라지겠지.


 


 교실로 향한다. 시간은 12:45. 곧 수업이 끝날 시간이다. 그리고 1시간 이어지는 점심시간. 걸음이 막 교실뒷문에 다달았을때, 종이 울린다. 그러자 수문이 열린 댐처럼 줄줄이 아이들을 쏟아내는 교실들. 빨리 밥을 먹고, 놀자라는 생각에 다들 전력으로 학교본관 뒤의 급식소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우리 교실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평소같으면 다른 반과 다름없이 불같은 기세로 달려나갈텐데. 아마도, 4교시의 자율학습 덕분일테지. 수업종치기전 10분전에 벌써 급식소앞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을테지. 조용한 교실로 발을 옮긴다.


 


 "요!"


 


 어깨를 찰싹이는 손길에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매일 그렇듯이, 기진이와 소혜가 있었다.
 
 "밥 먹으러 가자!"


 


 "지금은 좀. 잠잠해지거든."


 


 지금가면 급식소 앞의 인산인해에 휘말려야할 것을 생각하고는 대답한다. 기진이는 '그래'라고 살짝 끄덕이며, 아무자리에 털석 앉아버린다. 소혜는 기진이가 앉은 옆에 서있을뿐,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작문숙제검사 다음주로 연기되서 살았네. 너무 기분좋아~ 그치?"


 


 "아니, 난 숙제 해왔거든요. 어디에 사는 게으른 사람과 달리."


 


 오늘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더욱더 멀게 느껴진다. 저쪽은 내가 가서는 안돼는 곳이라고, 이쪽이 내가 갈길이야, 라며 난 텅빈 운동장을 창가 너머로 보며 이슈미아를 본 때를 생각한다.


 


+  +  +


 



 "너. 물개집단에 다시 들어가는거야?"


 


 기진이는 급식아주머니에게 온갖 아부를 떨어 잔뜩 얻은 오뎅조림을 집어먹으며 말한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왠지. 일요일날 문자도 그렇고, 오늘 멍때리고 있는 널보니 그럴 것 같아서."


 


 "걱정되긴 하지만, 수영부로 다시 가진 않을거야. 어차피 수영선수할것도 아니였으니까. 그저 좋아서 했을뿐."


 


 "엥? 그래? 난 다시 들어갈줄 알았는데.. 왜냐면 넌 '그거' 돌리는 쪽보다, 몸으로 해결하는걸 더 좋아하잖..."


 


 퍽!


 


 기진이는 '그거'라고 말하며 소혜의 갈색 양갈래머리를 가리키다가, 식탁밑으로 날아온 소혜의 로우킥에 급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픈 다리를 메만지려고 고개를 숙임과 동시...


 


 팍!


 


 하고 이마의 정중앙을 식탁모서리에 박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다.


 


 "하하하하하."


 


 소혜는 그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는다.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드는 기진.


 


 "하하, 기진아, 너의 그 말도안돼는 장난들보다 지금께 100배 웃기다."


 


  그러면서, 밥먹는 것도 잊은채 배를 잡고 웃는 소혜. 잔뜩 찡그린 얼굴을 억지로 펴 당연하다는 듯이 자랑스런 포즈를 취한다.


 


 "훗, 자 어떠냐, 나의 개그가! 내가 이렇게까지 몸을 버려서 한 개그가!!! 하하하하하~"


 


 "자아, 밥먹자 밥먹어."


 


 어느새 소혜는 놓았던 숟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무시당한 기진이의 얼굴은 떫은 감이 되었다. 난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멈췄던 숟가락을 입에 갔다 데었다.


 


 "야, 현사인! 차라리 웃어!!"


 


 마지막까지 징징대는 기진이를 가볍게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