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break

by RainShower posted Feb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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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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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소리도 날아남지 못한 침묵의 공간 속에서 쓰레기처럼 널려있는 아이들의 시체가 있다.
순간, 내 몸속을 휘감던 희열은 증오로 변질된다. 급변하는 감정의 기복에 제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오로지 내 앞에 서있는 귀신, 아니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는 존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복수..하고 싶은거야?...."


 


 귀신의 말을 전혀 들리지 않는다. 넘치는 증오를 견디지 못하고 과열된 육체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치켜세운 손톱을 귀신의 얼굴에 휘두른다. 단순히 손을 휘둘렀을뿐인데 궤도를 따라 뻗어가는 칼날같은 진공.
하지만 그것은 그저 애꿎은 학교건물을 파손시킬뿐이었다.


 


 ".....역시. 가능성은 있는걸까...? 너."


 


 귀신은 순식간에 나와 얼굴을 맞닿아을 정도로 가까이 와있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살육'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에 깨끗해진다. 그리고 증오도 희열도 전부다 마음속에서 물러가버렸다.
하지만 금새 선혈이 낭자한 복도를 보고는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발걸음에
아직 응고되지 않은 피가 엉겨붙은 불쾌한 느낌에 걸음을 멈춰야했다.


 


 망가진 인형처럼 축쳐진 아이들의 시체에서 기어나오는 뜨거운 피. 머리를 잃어버린채 창틀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시체.복도 한 가운데서 두 다리를 잃은 채 멈춰버린 시체. 주인없이 버려진 팔. 끄집어 버려진 내장.


말 그대로...


 



 지옥의 한 가운데.


 


 


 "귀신..?"


 


 연속실종사건에 대해서 떠들어대던 기진이를 떠올리며 속으로만 생각하던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너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이래뵈도 나 꽤 품위있는 아가씨인데.. 좀 실례가 아닐까?"


 


 자신이 귀신이라고 불리우는게 못마땅한지 피가 묻어 뭉쳐진 긴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한다. 품위? 인간을 이런식으로 찢어놓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하지만 속으로 생각만 할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빼앗길뿐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만한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계속 불평을 늘어놓는 그녀. 하지만 나는 입을 벌려 대답하지 않는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바쁜 나.


 


 수많은 시체와 피들과 토막난 단백질들이 불러일으키는 구토감, 그리고, 나도 조금만 더 빈혈을 참고 교실에 있을껄..


 


 


 그냥 죽어버리게.


 


 


 라는 후회까지 뒤죽박죽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기, 내 말 듣고 있어?"


 


 갑작스레 올라간 그녀의 목소리에 잡생각들이 물러가고 들이닥친 현실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긴머리를 한번더 쓸어넘긴 그녀는 무시당한게 기분나쁜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하지만 나는 그 기대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죽임을 당하는 입장.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 굳이 할 말이 있다면...



 "...그만 놀리고 어서 죽여."



 "에에에!?"



 하고 과장된 입모양과 함께 눈을 커다랗게 뜨는 그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성을 낸다.


 


 "너 혹시 내가 여기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거야!?"



 여기에 그런 짓을 할 존재가 내 앞에 있는 '귀신'말고 또 누가 있을까. 나의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드린건지, 제풀에 열받아 '아우우~'하고 성질을 낸다.


 


 "에휴. 내가 뭣때문에 이 고생을 했담..."


 


 ".....니가 죽인게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난 품위있는 아가씨라고. 내가 이런 짓을 할리가 없지.. 난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막아줬는데... 아, 힘들어 죽겠네...."


 


 한동한 똑바로 서있던 그녀는 시들어버린 백합처럼 축쳐진다. 반쯤 감기려는 눈동자는 초점을 잃을듯 말듯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도 모르는 사이 질문을 던진다.


 


 "리사 이폴리타...라는 솔라리스(Solaris)의 짓이야."


 


 그녀의 입에서 도통 알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말그대로 '리사 이폴리타'라는 이름은 가진 존재가 학교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는 것만은 알수 있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인데, 하긴 지금 내가 뭘 말해도 믿지 못하겠지... 아, 너의 친구들, 소혜와 기진이는 무사하니까 걱정마."


 


 어떻게 소혜와 기진이를 알고 있는 걸까. 시체가 굴러다니는 복도를 처음 올라선 지금까지 소혜, 기진이에 대한 걱정은 눈꼽만큼도 내 마음 속에 있지 않았다.


 


 분명 내 몸은 이 지옥같은 풍경속에서 떨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속에 내 피도 섞여들어가길 바라는 걸지도. 그리고 죽어서 어딘가에 있을 그들이 부러운 걸지도. 단지 그런 생각뿐, 내 머리속은 나를 위해 쉬는시간을 할애해준 친구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것이 나의 진실된 모습.


 


 "뭐야..? 표정이... 변했네?"


 


 잠시 그늘진 내 얼굴을 눈치챈 그녀.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소혜랑 기진이..."


 


 하지만 이내 나는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질문을 한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건 그런게 아니였다.


 


 "...그거?. 나 요근래 한달부터 널 쭉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보았다는 귀신, 그게 나야."


 


 말을 마친 그녀는 이마를 매만지며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곧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나....."


 


 한참동안 미간을 찌푸리며 '으으'라는 효과음까지 동반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그녀.


내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은 답답한 마음속에 갇혀 몸부림친다.


 


 "아, 몰라. 피곤해. 힘들어. 일단 내 소개부터 할께. 언제까지 날 '귀신'으로 부를 순 없잖아?"


 


 흰 원피스인지 붉은 원피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옷자락을 잡고 살짝 몸을 수그렸다고 세우는 그녀.


 


 "내 이름은 이슈미아 라 에르카. 루나리스(Lunaris)야. 흔히 사람들이 흡혈귀라고 불리우는 존재지."


 


 그녀의 긴 이름으로 인해 내 머릿속은 혼란의 도가니로 휩싸인다. 그리고 흡혈귀라는 말에 다시 한번 얼이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더욱더 궁금해진다. 흡혈귀라면 사람을 죽이는게 당연한데... 왜 하필 나를 한달동안 감시하고... 왜.. 왜... 하필..


 


 "그냥 이슈라고 불러. 앞으로 자주 볼테니까."


 


"...왜 나를.."


 


 아무것도 아니다. 난 아무의미없는 녀석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내가 '죽음'을 받아야할만큼 의미가 있었던가.


 


" '새벽의 지배자'. 그게 내가 널 죽이려고 한 단 한가지 이유."


 


 이슈미아는 새파란 눈으로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식은 깊은 눈동자로 빨려들어가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