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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naHeeL posted Aug 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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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냥 잡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호안은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해 보는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언제 이렇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꿈이라는 것은 사람의 심층 무의식을 반영하는 거라고 합니다. 평소에 우리는 자신이 그런 심층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요. 꿈을 꾸고 있을 때에만 심층 무의식이 의식적인 부분까지 올라오게 되며, 그제서야 ‘아, 내가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구나!’ 혹은 ‘이 일을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었구나!’하는 걸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부분은 매우 복잡하고 과학적인 이야기가 되니까 자세하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가 이 꿈이라는 것과 연관 지어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바로 꿈입니다.” 

     똑 같은 단어를 연관 지어서 생각하겠다는 교사의 말이 이해하기 힘들었는지,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웅성거림이 다소 커진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교사는 자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키우며 학생들의 웅성거림을 제압해나가고 있었다.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관계 없이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대단한 전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면 도중에 자연스럽게 재생되는 자신의 무의식과 훗날 자신이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말에서는 똑같이 꿈이라고 동음이의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말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언어권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의 상당히 차이가 있어 보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어째서인가 하면, 그것은 그 두 가지 꿈이라는 것이 모두 같은 심층 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살아온 인생, 환경, 생각하는 방식, 하다못해 좋아하는 음식마저도 심층 무의식에 적재되어 독자적인 형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을 자는 도중에 꿈으로서 표현되는 수도 있고, 하나의 구체적인 목적으로서 변하게 되면 그런 경우 인생의 목표인 꿈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까진 가설일 뿐이지요. 자 그러면,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꿈을 찾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말을 일단락하고 출석부를 펼쳐 들었다.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멈추고, 다시 훑어 내려가다 멈추기를 몇 번인가 한 뒤 그는 다시금 시선을 맨 위로 올려 학생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김 상훈?” 
     “네.” 

     짧은 대답이 돌아갔다. 교사는 그런 학생과 시선을 맞추며 단도직입적으로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꿈이 있습니까?” 

     질문은 받은 김 상훈은 잠시 뜸을 들였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매에, 머리 모양도 그리 멋을 내지 않았고, 그리 튀는 옷을 입지도 않은 그런 평범함이 두드러지는 학생이었다. 그는 지금도 평범한 학생답게 어느 정도의 대답을 해야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교사는 침묵을 지키는 학생을 나무라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몇 분간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 동안 그는 고민하는 학생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호안이 그런 교사의 시선에서 한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을 받은 학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회사원이 되어서 그냥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그의 옆에 앉은 녀석이 꿈이 너무 작다며 놀려댔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훌륭한 꿈입니다. 결코 작거나 쉬운 게 아니에요. 평범하게 세상에 맞춰가면서 산다는 건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자신의 욕구, 더욱 심한 욕구인 욕망, 순간적인 충동과 같은 것들을 모두 억누를 수 있어야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다만, 꿈을 물었을 때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하는 건, 그 평범함으로 무언가 다른 속내를 감추기 위함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훈이 당황하자 주변 아이들이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꿍꿍이가 무어냐며 놀려대는 아이들 덕분에 소란스러워진 상황에 시선을 주지 않는 사람은 호안 뿐이었으며, 그는 여전히 교사에게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주제를 매력적으로 이야기하는 교사에게 관심이 간 탓도 있었지만, 조금 전에 느꼈던 한기의 정체가 궁금했던 탓도 있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교사의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가 보였다고 생각했다. 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호안이 교사의 눈에서 목격한 것은 매우 흐릿한 영상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질문을 받은 상훈과 관련된 무언가라고 확신했다. 호안은 눈을 찡그리며 그 흐릿한 화상을 보완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사람 눈동자 속에서 영상이 재생 된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상상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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