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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와 피로와....암튼 온갖 귀차니즘이 웬수입니다.


 뭔 말인지 저도 잘 모르겠고....어쨌거나 오랜만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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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피는 집>



그 집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마당 한구석에 새빨갛게 핀 화사한 동백꽃이 떠오른다. 나 어린 시절, 자그마한 몸에는 운동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던 마당을 뛰놀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 붉은 꽃을 주워 머리에 얹고는, 부엌에 달려가 엄마에게 자랑하곤 했다.


요즘도 그 동백꽃이 사무치게 그리워 가끔 그 집을 찾는다. 엄마가 있고, 우리 개구쟁이 남매들이 있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해년마다 윤기 나는 짙은 초록 이파리 사이에서 피어난 꽃은 여전히 붉디붉다.


"어서 오세요, 진연 씨."


마당에 선 채 그 꽃송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익은 젊은 여자 목소리는 굳이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아가씨' 것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아가씨."


"요즘 자주 못 오셨죠?"


"그놈의 돈만 아니면 일 따위 때려 치고 여기 내려올까 봐요. 팀장이란 인간, 사람을 너무 부려먹는 거 있죠."


고생 많네요, 하고 말하는 '아가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시내를 거닐면 같은 거리에 있는 여자 4명중 3명은 부러워할 법한, 매력적인 '아가씨'가 꾸밈없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대체 이런 여자가, 뭐가 부족해 그 따위 '마녀'와……. 같은 여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걔는 어디 갔어요?"


집안에 인기척이 없어서 '아가씨'에게 물었다. 알고 지낸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울 따름이다. 처음 만난 후 한동안은 이름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이래저래 일이 있었고, 조금은 한가해진 지금에 와서야 묻는 것도 어색하고 해서, 호칭은 여전히 '아가씨'다.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이 '아가씨'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단 하나, 그 '마녀'가 그녀를 '반려'라고 부른다는 사실 뿐이다.


'아가씨'는 나를 마루로 안내해 끌며 내가 물은 것, '마녀'의 행방에 대해 답했다.


"위로 올라갔어요. 어디 창고가 있다고, 정리해버리겠다면서요."


"아, 그 창고요?"


엄마가, 어릴 적 몇 번인가 데려갔던 낡은 목조건물을 떠올렸다. 가재도구 외 잡동사니들, 제기나 텃밭 가꾸는데 쓸 농기구들, 엄마의 비밀스런 물건들이 그 안에 있었다. 별 특색 없는 한식 건물에, 문에는 박물관에나 볼 법 고색창연한 자물쇠가 달렸다. 너무 오래되어 오히려 열쇠 없이는 누가 감히 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종류다. 엄마가 죽고 나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년이 열쇠를 가지고 있었구나.


빼앗겼단 생각에 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 감정이 없었다. 빼앗긴 건 이미 질리도록 많아서일까. 엄마가 쓰던 창고, 어쩌면 자식들에게까지 감춰온 그 비밀스런 면모의 단편을 찾아낼 지도 모르는데, 이제 와서 굳이 꺼내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 보실래요? 어머니 유품이라도 찾아볼 겸."


그래서 '아가씨'가 제안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젓고 마루에 몸을 뉘이며,


"됐어요. 이제 와서 엄마에 대해 파헤친단 것도 우습고, 또 뭔가 찾게 되면 '마녀' 그 년이 가만있지 않을 거 아녜요."


하고 말했다. '아가씨'는 곁에 와서 앉아, 마당을 멍하니 내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진연 씨, 혹시 저 때문에 마음상한 거 아니죠?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거나."


"설마 그런 유치한 전개가 있을 리가요."


깔깔 웃기까지 하며 그럴 듯하게 대처했지만, 사실 그랬다. 슬슬 기온이 오르는 계절, 언덕길 맨 끝에 있는 이 집까지 오면서 등줄기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러내려 짜증이 일었다. 그렇게 찾아와 보니, 모든 원인의 제공자인 '마녀'는 또 어디에선가 불쾌한 기억을 헤집고 있다고 한다.


'마녀'가 헤집은 기억은 다름 아닌 이 집에 대한 기억이었다. 엄마가 살던, 그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 대신, 엄마에 대해서라면 무엇이건 알고 있던 저 '마녀'가 이어받은, 우리들의 고향 집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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