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마녀]야간 산책

by misfect posted Jan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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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과 같은, 짐승들이 인간과 구별된 건 몇 년 전부터다. 그전까지는 별다른 차이 없어 보이던 그들이, 세상 모든 이의 눈에 어딘가 이상해 보이며 불안과 공포, 혐오를 이끌어낸 순간 누군가 먼저 이런 생각을 한 거다.


'저것들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전 세계는 광분해 사람들 사이 짐승을 끄집어내 폭행하고, 죽이고, 광장에서 불살랐다. 유명한 '인간의 날'이었다.


아마 윤진은 '인간의 날'에 대해 무성한 소식밖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인간의 날' 이후 등장한 짐승의 무리, 야수TOXLAS니까.


"어제 느꼈어."


이 도시 야수들의 영역을 총괄하는 '집사' 윤진과 이 도시에 사는 인간 선우의 상식 차이는 확연했다. 이어지는 윤진의 말은, 1, 2년 전 선우가 듣는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법한 것이었다.


"'이어도'일까. 새로운 '형식'일까. 확인해보고 싶어."


"이어도라면 네 '날개'같은 거지?"


확인하듯 물어보면서 선우는 윤진의 등 뒤를 보았다. 옷을 뚫고 나온 날개 형상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날개'에 대한 건, 어디까지나 윤진에게 들은 게 전부일 뿐, 실제 본 적은 없었다.


"맞아."


윤진은 선우가 묻는 말에 일단 긍정을 표시했다.


"그래서 생각했어.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있단 거야? 이 도시에?"


윤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는 더욱더 놀라워했다.


야수들의 영지를 위임받아 도시 일대를 관리하는 윤진은, 또한 해가 떨어진 후 이 일대선 신의 사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태초의 질서를 수호한다.'란 본인 설명은 너무 거창하고 이해되지 않으니까, 차라리 '천사 같은 존재'라 하면 윤진의 실체에 대해 더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윤진이 어제 느껴, 오늘 찾아내려는 상대는 신화 속 천사, 혹은 그 이상 되는 뭔가란 소리다. 그것도 우리에게 적대적인지, 호의적인지도 알 수 없는.


새벽 숲 속으로 윤진은 아무 주저 없이 들어간다. 어둠은 점점 더 깊어진다. 조금은 불안해할 만도 하건만, 윤진도, 따라 들어가는 선우도 거리낌이 없었다. 한밤중 숲의 주인, 야수가 하는 길안내를 선우는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인간의 날' 이후로 인간은 밤을 영영 잃어 버렸다.


소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해가 짐과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다시 해가 떠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밤은 울창한 수림과, 짐승의 무리인 야수들이 지배했다. 인류 대신 한시적으로나마 세계의 주인이 된 그들이, '인간의 날' 당했던 기억을 그저 묻어두기만 할 리 없었다. 피에크람, 인간을 공격하는 야수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선우 가족들도 피에크람의 폭력에 무방비였다. 방관하던 윤진이 변덕을 부려 도중에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 가족은 영영 다음 날 뜨는 해를 보지 못했으리라. 지금도 가끔 선우는 생각한다. 윤진은 어째서 자신들을 구했을까. 그리고 왜 매일 자신을 데리고 하룻밤의 산책을 나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