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지하철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재잘재잘대며 떠드는 학생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로에 젖은 채 퇴근하는 회사원.
그리고 젊음을 즐기러 시내로 향하는 청년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은 채 한 가득 열차안을 채우고 있다.
남자는 오늘도 무사히 일과를 마쳤음에 안도하며 지하철에 올라탄다.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열차안에 빈 좌석은 없다.
남자는 앉은채 피로를 녹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손잡이를 잡고
선 채로 가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앞에 앉은 여자를 본 순간
남자는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낀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알아볼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했던 시절.
마냥 모든 것이 좋았던 20살 때의 첫사랑.
그때의 엣된 모습과 풋풋하고 어색했던 화장은 찾아볼 수 없고,
세련된 패션과 짙은 화장으로 바뀌었지만
1년남짓 함께한 그 모습을 못알아볼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놀란 표정이야말로
그녀도 남자를 알아봤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남자는 뭐라 말을 시작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동안
여자가 아련한 미소를 띄우며 먼저 말을 건다.
"여전하네."
"너야말로."
잠시 흐르는 어색한 침묵.
"취직했는 모양이네."
"아 인턴이야. 넌 요즘 뭐하고 지내?"
"그냥.. 지내."
여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위잉 하고 여자의 핸드폰이 울린다.
남자는 폰을 응시하다가 다시 말을 꺼낸다.
"남자친구야?"
"응. 사귄지 꽤 됐어."
여자는 그리고 이어서 조심스레 물어본다.
"넌..?"
"난 아직 혼자야. 그.."
남자는 '그 때부터'라는 말을 붙이려다가 그만둔다.
남자가 다시 말을 잇는다.
"멋진 사람이야?"
여자는 푸훗 하고 웃으며
"아냐. 찌질해."
라고 답한다. 그모습을 바라보며 남자는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네."
라고 흐뭇하게 말한다.
"나 이번에 내려."
여자는 이 우연한 만남이 곧 끝날 것임을 예고한다.
"아..."
남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이번 정류장은 XX역입니다. 내리실문은 왼쪽입니다."
안내방송이 울려퍼지고
여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열차에서 내린다.
"잠깐만..."
남자는 손을 뻗으며 여자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여자는 인파에 파묻혀 내린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쓸쓸하고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다.
문은 닫히고 열차는 떠나간다.
이야기 잘들으셨나요?
익숙한 이야기죠?
오늘 저녁 6시에 당신이 겪은 이야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참 아름다워 보이지만
저에게 있어 무척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밖엔 말 할 수 없네요.
왜 이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시죠?
아아...아직도 이해가 안가셔서 그렇나요?
전 말이죠. 5년동안 그를 쭈욱 지켜봤어요.
어딜가나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 절 돌아봐주길 바랬죠.
하지만 멍청하게 그 남자는 5년전에 당신과 사겼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고 군대를 간 이후로도 줄곧 당신 생각을 하는 것 같더군요.
나란 여자가 이렇게 지켜봐주고 있는데
나란 존재조차 몰라봐줬어요 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5년만에 만난 당신은 한번만에 알아보더군요.
그게 참을 수 없었어요.
이해가 됐나요?
그를 쟁취하기 위해선 역시 당신은 죽어줘야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한가지 말하는걸 잊은게 있는데
그때 그와 헤어진 이유가 그의 방에서 낯선 여자의 흔적을 발견해서였죠?
그것도 제가 그런 겁니다.
그럼 부디 잘 죽어주세요.
Bad Ending.
옴니버스 스릴러 사이코패스의 일기...
조만간 연재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