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0 05:45

애완견

조회 수 468 추천 수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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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나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야.

 그저 말 잘 듣는 인형이 필요했던 거야.

 날카로운 이빨도, 할퀴는 발톱도

 달리지 않은 그런 인형 말이야.


 처음 너와 마주했던 그 때가 생각나

 내가 아주 작고 약한 솜뭉치였던 때 말야

 너는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터트리면서도

 혹시라도 깨질까 부서지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큼지막한 그 손으로

 겁에 질려 짖지도 못하는 나에게

 온기를 주었어.

 엄마의 품보다는 조금 차가운

 하지만 역시 조금 따뜻한.


 처음엔 네 잠자리에 올라갈 수 없었어.

 혹시나 자다가 뒤척이기라도 하면

 네가 짓눌려 죽어버릴 지도 몰라.

 너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지.

 내가 자라 스스로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막 이가 나기 시작했을 때에는

 잇몸이 간지러워 아무거나 깨물었지.

 네가 내민 손을 핥다가 깨물때면

 너는 간지럽다며 키득키득 웃곤 했어.


 언젠가부터 너는 조금 변해 버렸어.

 손을 깨물면 아프다고 화를 냈지.

 옷깃을 물어 당기면 귀찮다고 했었어.

 어째서 너는 나를 차거나 때리거나 하는 걸까.

 몰라.

 정말, 너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짖기 시작한 때도 마찬가지야.

 처음엔 슬슬 익숙해진 모양이라며 좋아했어.

 나중엔 시끄럽다 조용하라고 윽박질.

 나는 대체 어떡하면 좋은 거야?


 나라고 사람 낯을 타지 않는 건 아냐.

 가끔 처음 보는 사람이 손을 내밀어와.

 행여나 내가 짖거나 깨물어 버리면

 너는 큰 소리로 나를 꾸짖고는 해.

 사실 너 이외에 다른 손을 타고 싶지 않아서

 그저, 그뿐인데, 너는.


 어느새 너는 훌쩍 덩치가 커버려.

 나도 처음보단 많이 커졌어.

 언젠가부터 너는 집에 머물지 않게 됐지.

 그전엔 내가 다 귀찮아질 정도로

 끌어당기고 내던지고 뒤섞여 뒹굴거렸는데

 이젠, 너는, 내가 지겨워진 것처럼 굴어.

 나도, 정말, 너 같은 건 학을 뗀지 오래야.

 정말로, 그래, 진짜...


 어느 날 너와 나는 아주 멀리 여행했어.

 나는 자동차가 처음이라 멀미를 했지.

 토하는 나를 위해 너는 차를 세우고

 종이컵에 물을 담아 내가 목을 축이게 했어.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서 나를 보며.

 어쩌면, 그건 걱정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던 걸까.


 마당이 넓은 낯선 집에 도착을 했어.

 이게 너와 나 마지막 여행이었어.

 내가 한눈 판 사이 너는 나를 등지고

 홀로 차에 몸을 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로 사라져.

 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가 있는 거야.

 데려갈 땐 언제고 이젠 날 다시 버리는 거야.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사실,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단 건

 그저 잠깐 거짓말한 것 뿐인데.


 너에게 드러냈던 날카로운 이빨이,

 네가 내민 손을 할퀴었던 발톱도

 실은 네가 아주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조금 더 나를 돌아봐주었으면 했던 건데

 이건, 아냐, 이런 건 바라지 않았어.

 돌아와, 정말, 날 떼어놓고 가버리지 마.

 바보야. 네가 날 이런 식으로 버릴 수는 없어.

 아직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은데

 나는 좀 더 너와 함께 살고 싶었었는데.


 넌 나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야.

 그저 말 잘 듣는 인형이 필요한 거야.

 내가 사라져버린 그 조용한 집에서

 너는 나를 닮은 인형을 껴안고 잠들겠지.

 이빨도, 발톱도 달려 있지 않은 그저

 보드랍고 따스하기만 한 그런 인형을.


 하지만 넌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거야.

 자신을 할퀴고 상처입히던 내 이빨과 발톱을.

 어째서?

 지금 나도 널 그렇게 그리는 걸.


 ============================


 사실과 픽션을 이리저리 뒤섞어, 제멋대로 손 가는대로 써봤습니다.

 이게 뭐다, 라고 정확히 말하기가 곤란하네요...가벼운 마음으로 훑어넘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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