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어느 할로윈

by 욀슨 posted Nov 01,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 글은 완전한 허구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아무튼 실존하는 어떤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끝내주는 날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언더락 잔에 담긴 액체와 작은 알약들을 넘겼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늘 그렇듯이,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밖은 소란스러웠다. 온갖 괴물이니 만화영화 속 주인공의 옷을 입고,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평소에는 전형적인 주택가답게 반듯한 거리를 따라 똑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마을. 분명 표지판이 없다면 어느 집에서 자기가 사탕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현관의 옷걸이 옆에 앉아, 사탕 바구니를 놓은 채로 기다렸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물건이었지. 머릿속에서 큰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결심을 굳힌 것이긴 했지만. 초콜릿이니 설탕을 녹여 거기 나만의 특별한 재료를 조금 가미한 다음, 틀에 굳히고 식혀서 잘라 일일이 예쁜 포장지로 싼 물건들. 꼬마들이 만성절을 목 놓아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나도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들의 그 작디작은 손발이 이걸 먹은 다음 어떻게 뒤틀릴지, 부모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생각하니 주름진 입 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그때쯤이면 나는 철창 뒤가 아니라, 땅 속에 들어가 있겠지. 아직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밤은 길었다. 어떤 꼬마가 준다는 사탕을 마다하겠는가. 제 아무리 괴팍하고 혼자 사는 늙은이만 살고 있더라도. 두통은 이제 괜찮았다. 냉장고에서 차게 식고 있을 맥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인사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의미가 없으니. 그렇게 앞뒤로 의자를 흔들거리고 있자니,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얼굴에 처덕처덕 바르고 현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 거기 있는 건 꼬마들이 아니었다.

“Trick or treat!” 동네 불량배들이었다. 톰이니 놉이니 롭이니 하는, 매일 몰려다니면서 시비나 붙고 어떻게 여자 하나 침대로 못 끌고 들어가 안달인 놈들. 놈들이 신은 오토바이 부츠가 바닥에 쿵쿵 울렸다. 나는 사탕 바구니를 든 채로 쩔쩔매다가, 놈들에게 밀려 넘어졌다. 놈들은 엉덩이로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을 보고 싸구려 웃음을 흘렸다.

“하하, ...럴. 돕. 저 새끼 저거 기어가는 꼬라지 봐. 존나 웃기네.”

“좀 닥쳐봐. 영감쟁이, 우리가 여기 왜 왔게?” 돕이 말했다. 놈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며, 바닥에 엎질러진 사탕을 밟았다. 말랑말랑한 퍼지였으니까,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거리가 점점 좁아지면서, 놈들의 데오드란트 냄새랑 미지근한 숨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거하게 한 잔 걸치고 온 모양이었다. 물론 맥주만 마셨을 리는 없었다. 여전히 거리는 멀어지지 않은 채, 놈들과 나는 거실에 서 있었다. 벽난로 불이 비친 놈들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몰라! 난 아무 것도 모른다고! 그보다 내 집에서 나가. 가택침입으로 신고할 테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나는 서랍 안으로 손을 뻗었다. 있었다. 손끝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믿음직한 38구경.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쐈다간 안 그래도 안 좋은 관절이 더 안 좋아지겠지만, 겁만 줘서 쫓아내면 그만이었다. 아직 진짜 재미는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놈들의 어깨 너머로 본 거리는 여전히 텅텅 비어 있었다.

“신고? 웃기시네. 오늘 딕 돈으로 한판 걸친 김에, 댁을 손봐주러 왔거든. ...팔. 예전부터 영감쟁이는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 화단의 페튜니아가 뭐 어쨌다느니, 공 좀 차려고 그러는데 잠 좀 자게 시끄럽게 굴지 말라느니. 내가 댁 때문에 온통 동네에 조리돌림 당한 건 기억하고 있나?” 놈은 너클을 끼려다가, 난로 옆에 있던 손도끼를 보고는 그걸 들었다. 도끼날에 아직도 나무 쪼가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가까이 오면 쏜다!” 나는 놈에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너무 떨려서 가늠자가 제멋대로 춤췄다.

“존나 웃기네. 쏴 봐, 쏴 보라고! ......제대로 조준도 못해서 온통 지린내나 풍기는 늙다리가. 내가 저번에......” 놈이 도끼를 치켜들었다. 한계였다. 어디를 겨누는지도 모르고,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방아쇠를 당겼다. 짤깍, 짤깍. 놈들은 경악과 환호가 반쯤 뒤섞인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좀도둑질하다가 배불뚝이 짭새랑 눈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단, 혼자서 지린내를 풍기고 있던 돕만 제외하고. 놈은 이상한 자세로 도끼를 쥐고, 너덜너덜한 치노의 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방금 날 쏘려고 했어? 어? 날 쏘려고 했냐고!” 실수였다. 한 달에 한번은 꼭 체크했어야 하는데. 놈은 쥐고 있던 도끼를 다시 치켜들었다.

"하하, ...발. 봤냐? 저 새끼 오줌 쌌어!"

“죽여, 죽여버리라고!”

“이봐, 그만-” 다음 순간, 물기 많은 것이 쪼개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생각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이미 시든 생명과 함께 몸 밖으로 '내가' 빠져나가는 느낌. 모든 것이 점점 떨어져 내리며 바스라졌다. 뺨 위로 눈물인지 뭔지도 모를 끈적한 것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놈들이 지껄여대는 걸 들었다. 귓가에서는 수많은 벌레들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내는 것 같은 구역질나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엉뚱한 곳에 맞출수록 점점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소리는 점점 커졌다. 오토바이 부츠 신은 발이 코 앞을 스쳐 지나갔다. 놈들은 아마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이봐, 이거 ......인데?”

“그래, 게다가 수제군! 뭐 아무렴 어때, ...발. 이건 우리가 전부 챙겨가자고. 어차피 여기 외진 곳이라서 아무도 못 ......니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 상황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몸이 빠르게 식고, 눈은 멀쩡히 뜨고 있는데도 조리개라도 닫는 것처럼 시야가 까맣게, 까맣게 좁혀졌다. 그래도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은 좋았다.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죽어 가는데도, 딱딱하게 굳어 가는데도.

정말 끝내주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