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0 12:47

죽음을 기다리며 上

조회 수 409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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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비는 죽었다. 그 마지막이 어떤 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으나, 밤 중에 잠든 것을 기억한다. 다만 눈을 떳을 때 하늘도 땅도 없는 백색의 세상과 멀뚱히 선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감감도 없고 짐작도 안된다. 억겁의 시간이 흘러 버린 듯 하다가도 이곳에 도착한 게 바로 방금인가 싶다. 그늘이 있었으면 하고 속으로 도뇌이자, 옆에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막 자라난 놈 답지 않게 껍질이 굵고 오래되어 보인다. 잔털이 났던 어린 가지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져서 큼지막한 그늘이 만들어지고 까칠한 잎사귀들이 우수수 바람에 부대낀다. 그제야 바람이 불기 시작했음을 안다. 그 다음에는 풀들이 자라나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작은 오솔길이 저편으로 나고 얼핏 햇살도 느껴진다. 저 너머로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하다 혹 도착하게 될 곳이 유황불에 기름 끓는 곳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 여든 평생을 찬찬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주일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는지 가물가물했다. 소년일 적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용돈을 감춰두고 거짓을 말한 기억이 난다. 딸의 생일 날 야근을 하느라 건성건성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던 것과 젊을 적 두 아가씨를 놓고 악동스러운 저울질을 했음을 안다. 아주 오랜 만에 오른 손으로 이마와 가슴을 내리긋고, 양 어깨를 가로저어 기도를 위한 성호를 긋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 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유일하게 외워두었던 기도였다. 아직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묵례를 하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어 너털 웃음이 나온다. 한숨을 포옥 내쉬고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가면 갈 수록 온 세상이 제 색깔을 찾아가는 모양이 그에게 두려움보다 희망을 갖게 했다. 때때로 잘못을 되뇌이기보다 선행을 추억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가에 버려진 모든 것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가. 선한 사마리안의 고사를 얼마나 오래 가슴에 새겨두었던가. 

 "안녕하세요."
 누군가를 만났다. 젊은 아시아 남자 같다. 영어가 아님에도 둘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질문을 했다.

 "어딜 가세요?"
 "여긴 제 길이 아닌 걸 알았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희다.

 "무슨 일이신데요?"
 바비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연유를 물었다. 남자는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아니요. 죄를 빌고 오는 길입니다."

 정적이 오고 간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자살을 했습니다. 큰 빚이 있었고 도와 주는 이도 없는데, 갚을 능력조차 안되었죠. 홀로 남으신 어머니는 파지를 주워 하루하루 연명하시는데, 저 혼자 도망치겠다고 이리로 온 겁니다."

 스스로 격해져 눈가가 촉촉해졌다. 훌쩍이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된다.

 "저 뒤에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기억에도 없는 분이신데 용케 절 찾아오셨더군요. 큰 꾸중을 들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절 안아주셨어요. 등을 두드려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어깰르 잡아 주셨습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뵙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는 순간 순간이 치열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 너머의 언덕에서 어머니의 매일 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매일 기도하시고 눈물 흘리시고 쓸쓸히 잠드셨어요. 제 이름이 담긴 기도를 지치도록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만나셨나요?"
 "예, 정작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웃으시며 절 보듬어 주셨을 뿐입니다. 그 웃음에 저도 후련한 마음으로 제 길을 찾으러 갈 일입니다." 

 "당신의 길이요?"
 말 없이 남자는 멀리 바비가 출발한 느티나무의 남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곳을 번개가 치고 거센 폭풍이 난장을 피워댔다. 하늘은 붉고 땅은 끓어오른다. 마치 어떤 거대한 생물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짖는 듯 했으나,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으 ㄹ때 그 무시무시한 광경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또렷히 각인된 기억에 오금이 저린다. 늙은이는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먼저 그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응당 치뤄야 할 빚이니까요."

 그는 혹독한 대지로 가는 것이 생전의 빚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단어와 단어의 쇠사슬로 엉킨 말의 힘은 육체가 있던 없던 관계가 없다고, 이제는 화폐가 아니라 고통으로 지불해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 

 "어머니와 같은 곳에 가신다면 좋겠군요."

 애써 서로에게 희망 찬 인사를 건네고 둘은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고 스스로 가는 방향이 적어도 최악의 도착지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에 본능적인 이기심을 느낀다. 애써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로 한다. 다만 그 생각을 포장하고 슬그머니 합리화 하는 것만은 묵인했다. 더불어 남쪽의 모습을 머리 속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파르지 않은 언덕을 끝까지 오르자, 어리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아가씨를 만났다. 먼저 아는 체를 하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기다렸어요."
 생소한 얼굴, 기억ㅇ르 곰곰히 되새겨 보아도 알 수 없어 되묻는다.

 "예?"
 "신이시죠!"

 의아함과 어처구니가 되통수를 두드린다. 슬그머니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벗겨진 머리 대신 수북한 수염에 뚱뚱하고 늙은 평범한 몸뚱이. 고지방 음식에 술로 탄력을 잃은 피부는 그가 가진 인간미의 절정이라 자부했고 그것들은 전혀 변함이 없다. 죽은 상태로의 색다름은 찾을 수 없었다.

 "전 그리 대답한 게 아닙니다."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듣지 않을 기세다.

 "산타클로스도 빨간 옷만 벗기면 당신 같겠죠? 아! 전 제가 너무 오래 이곳에 있었다고 느낀 참이었죠. 곧 당신이 오시리란 것도 말이예요."

 바비는 속으로만 미친 여자가 가야 할 사후세계를 고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고해성사는 짧게 끝나지 않는다.

 "저 이와 아이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세상에 남긴 모든 것ㅇ리ㅏ구요. 저 애는 엄마 없이 자라겠죠."

 이 대목에서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에는 둘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보내야하겠죠? 제발, 그건 너무 속상할 거예요. 웃으며 호두파이를 구워 줄 사람이 없어선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할지 몰라요.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를 두고 왜 전 죽어야 했나요?"

 그녀에게서 감정이 과하게 분출되는 몇몇 특수한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위협과 망상적인 경향이 엿보였다. 적어도 그가 사는 곳에선 집에 호두파이를 구워줄 사람의 유무에 따라 학교 생활이 결정지어지진 않았다. 부질없는 단어를 거론하기로 한다.

 "진정해요 부인."

 진부한 위로가 떠오르자 마자 내뱉는다.

 "남편과 아이는 잘 지낼거예요."

 별로 효과가 없었고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하죠? 당신은 잔인한 신이군요!"

 마치 폭탄을 해체하는 기분이라도 과하지 않을 수준이다. 신의 모습을 규정짓는 외적 기준에 대한 비뚤어짐은 논외로 하더라도 작고 사소한 오해부터 풀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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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7.10 15:58
    신제이 님 글은 작은 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겨 가는 것처럼 꼼꼼해서 늘 마음에 드네요. 저는 그런 식으로 쓰지 못해서요;;;
    이번에도 재밌어 보이네요. 상편인 걸 보니, 두세 편짜리인가보죠? 다음 편도 곧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 profile
    SinJ-★ 2012.07.11 10:10
    중하로 나누고 싶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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