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2 03:11

Neptunus Story

조회 수 1697 추천 수 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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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심여왕 -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정신을 차린 에트랑쥬는 재빨리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골목 안에 누군가 있었어.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등 뒤에서 그 사람을 불렀는데? 비명을 지른 건 누구였지? 소리 질러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 한 건 누구였더라?


 '꺄아아악!'


 비명 소리를 떠올린 순간 에트랑쥬는 화들짝 놀라 벽에 기댄 제 몸을 바로 세웠다. 돌아본 사람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른 건 바로 에트랑쥬 자신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 눈앞에 괴물의 등이 보였다. 두 발로 서 있긴 했지만 발과 손이 비정상적으로 긴 괴물, 물갈퀴니 아가미니 하는 괴상망측한 것들을 달고서,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얼굴을 한 그것. 자신이 본 그 녀석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에트랑쥬는 비위가 상했다. 물고기와 닮은 그것은 에트랑쥬를 힐끔 돌아보곤 비린내 나는 입을 찢어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벌려 그녀를 위협했다.


 에트랑쥬는 비명을 지른 뒤 제 눈앞에 일어난 일도 조금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 목소리를 들었는지 골목 바깥에서 여러 명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그녀와 괴물이 대립하는 그 어둠 속으로 조심성 없이 발을 들이밀었다. 남자는 에트랑쥬가 잘 모르는 제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에트랑쥬가 들어온 골목 반대편으로부터 온 그 남자 덕분에 괴물은 주의가 흐트러졌고 에트랑쥬는, 사실 그녀에게 생명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을지가 의문이었으나, 어찌됐건 겨우 목숨을 구했다. 책임과 의무감으로 가득 찬 젊은 청년이 괴물을 향해 무모하게 칼을 빼들고 덤벼들었던 탓이다. 괴물은 금세 청년을 도륙내고, 그를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까지 살육했다. 그러다 괴물을 상대하던 저들 중 하나가 인간의 목청에서 터져 나오리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소음을 터트렸고, 그 바람에 에트랑쥬 자신은 정신을 잃고 패닉 상태에…….


 "히익!"


 비명을 낼 뻔 한 걸 겨우 눌러 참았다. 그녀가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골목길 여기저기, 괴물의 발 주위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들 모두가 비슷비슷한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에트랑쥬는 이들이 얘기로만 듣던 한화나 헤르메스 병사들이란 걸 짐작했다. 정신을 잃기 전 에트랑쥬가 들었던 소음이 저들 중 누군가의 술수일진 몰라도, 상황을 보건데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르르르……."


 괴물은 살아남은 누군가에게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괴물 등 뒤 멀찍이 떨어진 에트랑쥬 위치에서는 살아남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건물 사이사이로 새어든 빛이 만들어낸 실루엣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명치 않은 그는 괴물을 앞에 두고 거의 자포자기한 듯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안 돼! 에트랑쥬가 소리치려는 찰나, 또 다른 실루엣이 그곳에 나타났다.


 "여. 아주 기막힌 타이밍이지 않아, 세렌?"


 에트랑쥬가 그림자극을 보듯 쳐다본 두 사람은 라이가와 세렌, 바로 그들이었다. 두 사람이 뭔가 실랑이하는 걸 에트랑쥬는 의도치 않게 모두 엿보았다. 괴물 등 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그녀를 두 사람은 전혀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수인이니, 양서류라느니 하는 괴물의 정체도 모두 그들에게 들었다. 도망치자고 하는 라이가 앞에서 세렌은 꼭 싸우겠다며 소란을 피웠지만 라이가는 손을 써 그녀를 제압한 모양이었다.


 양 팔로 세렌의 허리와 장딴지를 받쳐 안고 그 자리를 떠나려던 라이가가 문득 괴물 쪽을 쳐다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망할 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트랑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남자가 말하는 '망할 놈'이란 게 누구였을까? 저 괴물을 보고 말하는 거였을까? 혹은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서도 아무런 손도 쓰지 않은 이 방관자를 두고 하는 소리였을까? 애초부터 라이가란 저 남자는 에트랑쥬 그녀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던 건 아닐까?


 쿡쿡쿡, 에트랑쥬가 웃었다. 귀신처럼 눈앞에서 사라진 라이가를 찾아 두리번대던 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어쩔 수 없잖아요. 싸우는 거 그렇게 익숙하지도 않는데."


 얄미운 사람, 하고 에트랑쥬가 중얼거렸다. 그녀 머릿속엔 자꾸만 세렌을 안고 도망치던 라이가 모습이 아른거렸다.


 "어쨌건 중요한 정보를 알았어요. 당신을 수인이라고 부른다는 거랑, 당신이 개구리나 도롱뇽 수준 하등생물이란 것."


 수인을 쳐다보는 에트랑쥬 주위로 푸른 불꽃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녀 주위뿐 아니라 그들 좌우 벽을 타고 이리저리 설치된 파이프며 전선들, 끝이 뾰족한 물체라면 어디든지 그 푸른 불꽃이 홀연히 나타나 활활 타올랐다. 수인은 흠칫거렸다. 어떤 생물체이건 불에 대한 공포는 본능적인 것이다. 수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성 엘모, 항해자들의 수호자, 폭풍이 지나감을 가장 먼저 알리는 은혜의 성자님."


 잊힌 옛 종교 기도문과 같은 걸 에트랑쥬는 차분히 암송했다. 열기 하나 없이 일렁이는 그 불꽃이 점점 증가하는 것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던 수인이 다시 주춤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그것은 다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불꽃은 주변 물체들뿐 아니라 이제는 수인의 손발 끝, 몸 여기저기서도 시퍼렇게 타올랐다. 수인은 손발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정전기가 흐를 때와 같은 느낌, 그것이 수인 몸 여기저기서 연속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수인은 발버둥 치며 온 몸을 비틀었지만 불꽃은 사그라질 줄 몰랐고 기분 나쁜 느낌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에트랑쥬는 듣는 사람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게요, 성인의 수호를 당신도 받을 수 있도록. 정말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수인과 그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에트랑쥬는 기도를 올렸다.


 치이이잇!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수인은 손을 뻗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수인은 간신히 에트랑쥬의 목을 붙잡았다. 에트랑쥬가 불러온 불길은 수인에게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파란 불꽃이 섬뜩해 보이긴 했지만 열기조차 없었고, 수인에게 전해진 정전기 같은 느낌도 귀찮기는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트랑쥬를 붙잡았을 때 수인 손으로 짜릿한 전류가 흘러오는 게 느껴졌기에 그것은 괴성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가녀린 목을 붙든 손은 놓지 않은 채였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큭, 하지 마옵시고……."


 그 기분 나쁜 점액질로 뒤덮인 손아귀에서 에트랑쥬는 빠져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기도할 뿐이었고, 수인은 그녀를 붙든 손아귀에 더 힘을 주었다. 가녀린 목이 금방이라도 뒤틀릴 듯 보였고 에트랑쥬도 괴로운지 켁켁거리며 거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 거의 그녀가 정신을 잃을 것처럼 보인 그 순간 수인은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켁, 켁. 콜록."


 목에 힘이 풀리면서 에트랑쥬는 다시 숨을 자유롭게 쉬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수인이 서 있던 자리를 보았다. 수인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전신이 푸른 불꽃에 휩싸여 괴로운 듯 몸부림치긴 했지만 숨은 여전히 붙어 있었다. 아마 30여 분간은 저 상태로 더 고통을 받아야 하겠지. 그의 영혼에 옮아 붙은 푸른색 불길이 몸속에서부터 그를 완전히 불태우기 전까진. 이상한 건, 그 거센 불길이 수인 몸을 불태우면서도 주변 바닥이나 벽에는 그을림 하나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에트랑쥬는 애써 시선을 돌리곤 골목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골목 반대편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제 몸을 사르는 불길에 괴로워하던 수인이 골목 바깥으로까지 뛰쳐나간 모양이지. 번질 일 없는 불꽃이니 아무렴 어때. 에트랑쥬는 그저 이 모든 일을 빨리 잊고자 했다. 이러니 내가 싸움 따위 좋아하지 않는 것 당연하잖아. 비참한 기억을 떨치려던 와중에 문득 에트랑쥬는 라이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20대 정도일까? 제발 연상이라면 좋을 텐데. 꽤 말쑥한 편에다, 장난기 다분한 인상이긴 했지만 꽤나 신사적이었잖아? 이런저런 망상 속에서 에트랑쥬는 또다시 세렌을 안고 뒤돌아 떠나는 라이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록 망할 놈 소리까지 듣긴 했지만 분명 진담은 아니었을 거야. 옛말에도 있잖아. 차가운 도시 남자도, 제 여자에게만은 분명 따뜻하겠지.


 "아, 나도 누가 그렇게 안아줘 봤으면."


 방금 전까지 침울해져 있던 그녀가 꺄아꺄아 거리면서 몸을 배배 꼬는 걸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하단 듯 쳐다보았다. 이건 분명 첫사랑이라고 그녀는 확신해 마지않았다. 정작 라이가 품에 안겨 나간 게 세렌이란 사실조차 완벽히 무시해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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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 이어서 쓰려다보니 하늘 님이 딱 좋은 거리를 던져 주셔서... 이번 회는 하늘 님 분량에 업혀가야겠네요. 미리 양해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원래 바솔로뮤랑 마주치는 스토리도 생각해봤는데 지난 번 바솔로뮤가 소환되는 바람에..

 본문에 쓸까말까 하다가 빼버려서 그냥 여기서 얘기하는 것. 특별히 에트랑쥬가 라이가만을 짝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에트랑쥬는 사실 연상 취향이었습니다.' 기존 캐릭터 설정에 추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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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乾天HaNeuL 2011.01.12 04:29

    악악!!!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2 07:28

    소심한 복수입니다, 연재글에 대한 ㅎㅎㅎㅎ

  • profile
    SinJ-★ 2011.01.12 07:14

    으앜ㅋㅋㅋㅋㅋㅋ 한 눈에 뿅가다니?!

  • ?
    乾天HaNeuL 2011.01.13 05:08

    갈가님 버려졌나 봄. ㅋ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5 08:20

     아윽 갈가님 어쩌다 그런 ㅠㅠ

     몸 안좋으신 건 아니길 바랍니다;

  • ?
    乾天HaNeuL 2011.01.15 17:57

    어딜 내 빼시려고. 설사를 하시더라도 일단 글은 남기시고.......(....!!)

  • profile
    갈가마스터 2011.01.15 07:0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버려도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옳 낼 대장 내시경 때문에 지금 포풍설사중 ㅋ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3 06:54

     갈가 님도 쓰셔야죠 ㅎㅎ 다음번에 신제이님께 돌아오는 차례 기대합니다, 라고 해야 할까요? 암튼 전 갈가님 버린 적 없어요! ^^;;

  • profile
    SinJ-★ 2011.01.13 04:39

    갈가님은 어쩌시구요 ㅋㅋㅋㅋ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2 07:28

     원래 바솔로뮤한테 한 눈에 가는 시나리오였는데!!! 다음 신제이님 차례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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