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고층 빌딩으로 빽빽한 이 도시에선.
설령 그렇대도, 한밤중 태식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베난단티 확보. 지금 인계하겠습니다.”
검은 슈트에 짙은 선글라스. 의미 불명의 무전까지. 보기에도 수상한, 전형적인 악당이다. 한 녀석이 어딘가로 연락하는 사이, 다른 두 녀석은 여자 양 팔을 붙들곤 억지로 끌었다. 여자가 보내는 애처로운 눈빛이 태식의 마음에 꽂혔다.
아니, 정신 챙겨라 문태식. 암만 그래도 두 번이나 저 여자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휙 떨어지질 않나, 받아 줬더니 대뜸 죽자 사자 칼을 휘둘러대질 않나. 저 시커먼 떡대들이 와서 붙잡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을지 모른다. 태식은 여자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역시 처음 보는 여자다. 위장 결혼으로 입국시켜 술집에 팔아넘긴 년들은 죄다 동남아서 온 까무잡잡한 년들이었고, 장난삼아 퍽치기를 하거나 돈을 뜯어낼 때 상대는 전부 학창 시절 꼰대 닮은 회사원들이었다. 서양 년에게 원한 살 짓은 딱히 한 적 없었다.
하지만 쩝, 취향이긴 했다. 코와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은 새하얬고, 뺨은 상기된 채였다. 눈과 머리칼은 신비로운 은색이었다. 뭐, 지나치게 수수한 건 애교로 치자. 액세서리는커녕 얼굴에 화장기도 없이, 하늘색 민무늬 원피스가 마치 그녀가 몸에 걸친 전부인 양 보여도.
태식은 금세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기 것이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야야야! 그 손 치워. 임자 있는 여잘 허락도 없이 끌고 가면 쓰나?”
자신들을 불러 세운 태식을, 사내들은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뭐야, 저건? 아까 그 민간인입니다. 여자를 내놓으라는데요? 시비 틀 데 안 틀 데 가리지도 못하나? 미친 양아치 새끼가.
양아치 새끼, 라고 검은 양복이 한 말에 태식은 화가 치밀었다. 양아치 새끼. 삼류 건달도 못 되는 자식. 늦은 오후 큰형님이 따로 불러 한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태식아, 니는 이 짓 그만 때려 치라. 어설프게 양아치 흉내 내지 말고, 어디든 가서 기술이나 배우더라고. 니는 그게 더 낫다. 착실한 계집년만 만나면, 니는 괜찮을 기니까. 와? 내 말 안 믿기나? 나가 이 짓만 벌써 몇 년째 하는지 니 아나? 10년째다 10년째. 그 사이 별별 인종 다 겪어본 나가 보증하는 거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겄냐?’
“웃기지마, 새꺄!”
큰형님 앞에서 억눌렀던 불만을 태식은 그 떡대들에게 터뜨렸다.
“그래, 나 건달도 못 되는 삼류 양아치다 시팔! 그래서? 꼽냐? 이 지랄 같은 새끼들이!”
홧김에 태식은 상대방에게 달려들었다. 미처 반응 못한 녀석 얼굴에 주먹이 꽂히자, 다른 녀석이 태식을 거칠게 밀쳐냈다. 태식은 잠시 휘청댔지만, 다시 달려들어 그들 손아귀에서 여자 팔을 억지로 빼내려 했다. 이 새끼가! 한 녀석이 주먹을 휘둘렀다. 태식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맞은 뺨이 얼얼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바닥에 뱉은 타액엔 피가 섞여 있었다. 순간 그는 바닥에서 뭔가를 보았다. 태식은 그것을 집어 들곤, 몸을 일으켰다. 자리를 막 떠나려던 남자들에게 태식이 소리쳤다.
“어딜 토껴, 그지같은 새끼들아! 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귀찮단 듯 고개를 돌린 남자들은, 태식이 손에 든 것을 보자 일제히 얼굴빛이 변했다. 여자가 갖고 있던 바로 그 단도를 주워들고, 태식은 남자들에게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당황한 녀석들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려던 찰나, 여자 몸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뭐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 도시에선. 하지만 역시, 그건 태식이 잘못 본 게 아닐까?
빛 속에서, 태식은 덩치 하나가 거대한 나무가 되는 걸 보았다. 여자는 그의 품에 가만히 안긴 것처럼 보였다. 언제 되찾아간 건지, 손에 든 제 단도를 남자 품 깊숙이 박아 넣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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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님 이어 저도 올립니다 ㅎㅎ
한 페이지 분량은 많이 빠듯하네요;; 겨우 분량 내에 들어와서 올려요^^;
5/4일 조금 수정합니다...아 이런;;
올리셨군요 ㅋ 근데 한페이지라 비평할 거리가 없는듯 해요;;
여주인공 이름에서 여신냄세가 나는데 혹시 모델은 베르단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