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8 21:30

이상한 나라의 시우(14)

조회 수 455 추천 수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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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심해!”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신동현의 발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계단 위에 착지했다. 뭐야, 계단이 있는 걸 알았던 걸까? 하지만 저 뒤에서부터 뒷걸음쳐 걷고 있는 녀석이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설마, 이미 뒤돌아 서기전에 자신의 보폭과 장애물과의 거리를 계산해놓은 건가! 에이, 그럴 리가. 아무리 여기가 과학고라지만 저 인간이 무슨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아니고... 아니겠지?

 
 “뭐야, 왜?”

 
 하지만 신동현 역시 내 경고에 놀랐는지 순간 상체를 숙였다. 아마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물론 내가 경고해 주려던 계단 터울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만 그는 아마도 새나 나뭇가지나 혹은 누군가 던진 돌덩이가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

 “...”

 
 잠시 그렇게 우리 둘은 그대로 멈춰진 상태로 서있었다. 꼴사납게 허리는 오른쪽으로 등은 앞쪽으로 목은 왼쪽으로 꺽은 채 눈을 찔끔거리는 녀석의 모습은 꾀나 나를 유쾌하게 만들었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재밌냐?”

 
 그녀석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마 내게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녀석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안, 사실은 네가 이 계단 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봐 걱정 되서 그런 거야 고의는 아니었어, 라고 나는 말했긴 개뿔, 그렇게 하기엔 내 손발이 마구 오그라들 것 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응.”

 
 솔직히 그 모습이 좀 웃기긴 웃겼으니까. 그러자 녀석에 이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 모양의 힘줄이 돋아나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고 하면 거짓일까?

 
 “병민아. 잠깐만, 잠깐 이리 좀 와볼래?”

 
 녀석이 뭔가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쉬운 남자로 생각했다니. 난 누가 부른다고 바로 달려 나가는 그런 남자 아니거든. 하지만 위험 상황일 때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현명한 자의 선택일 터. 나는 전혀 당황하거나 겁나지 않는다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나 허리 밑에서는 두 다리가 조금씩 그를 빙돌아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가~니?”

 
 내 움직임이 눈에 거슬렸는지 그가 술래잡기의 술래가 된 듯한 억양으로 내게 물었다.

 
 “아까, 미팅에 늦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서두르려고.”

“으이악! 이리와. 이리오라니까? 내가 다치지 않게 잘 다뤄줄게.”

 
 마침내 그가 이성의 끈을 놓친 듯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내가 잡히겠냐? 나는 그 녀석과 마주 본 채로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의외로 내 걸음 걸이가 빠르자 녀석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 놈좀 잡아줘!”

 “바보, 누구한테 말하냐?”

 

 하지만 난 이윽고 미팅을 가던 일행이 우리 둘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어리석다니! 난 순간적으로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녀석들은 내 뒤에 바짝 붙어 서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우락부락한 손이 나를 무참하게 옳아 매었다. 아, 이럴 수가.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이, 나 좀 보지?”

 
 나는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그의 표정에서는. 아마 만화적 상상력을 조금만 보탠다면 눈에서 흉측한 붉은 빛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하, 안녕?”

 
 그리고 아마 이쯤 되면 내 뒤통수엔 주먹만 한 땀방울이 걸려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해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도망을 가니?”

 “그러게 말야.”


 하지만 녀석은 나의 이런 진실된 반성의 자세를 보고도 심지어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문답무용! 이제 너에게 날 능멸한 죄를 물어야겠구나.”


 어이 어니, 언제는 다치지 않게 한다며? 하지만 나의 이런 소소한 불만 사항은 접수하지 않겠다는 듯 마침내 녀석의 두 팔이 움직였다. 이미 두 팔이 잡혀있는 상태인지라 피할 도리 따윈 존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지가 자유롭다 할지라도 과연 피할 수 있을까? 녀석이 머리를 향해 걸어오는 신속하고 빠른 락킹은 그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으악, 살려줘. 으아악!”

 
 너무 아팠다. 평소에 무얼 먹는지 팔 힘 하난 대박인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전력으로 내 머리를 조여오면 난 체면이고 뭐고 홀라당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너의 잘못을 이제 좀 알겠니?”


 나는 간신히 그녀석의 팔을 두들기며 말했다.

 
 “알았어. 알겠다고. 내...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이것 좀. 으악. 그, 그만! 으악!”

 “어째 말이 좀 짧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습니다.”

 
 그제서야 신동현이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풀려나고서도 욱신거리는 해골의 고통이 사그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쪼그려 앉아있어야만 했다.

 
 “자식이 이런 것 갖고 뭔 엄살이야? 괜찮냐?”

 “괜찮겠냐?”

 
 자식이 병 주고 약주냐? 아오, 머리 아파.

 
 그런데 녀석이 내 퉁명스러운 반응에 또 기분이 상했는지 다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흠칫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 했으나 간신히 두 팔을 휘적거려 버텨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차하면 도망가야 한다. 내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저 헤드락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괜찮아? 걱정이나 고민 있으면 다 이 형님한테 이야기 해. 비밀은 지켜 줄 테니까.”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게 준비해 놓았던 허벅다리 근육의 긴장을 천천히 이완 시켰다.

 
 “니가 요즘 들어. 기운도 없고 계속 멍하니 있길래 말이지.”

 
 그러더니 녀석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내가 너랑 10년지기 아니냐? 그러니까 뭐 그냥 그렇다고.”

 
 그렇군. 나랑 이 녀석은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였지. 그러니까 아무리 둔한 녀석이라도 내가 요즘 이상해진 것을 눈치 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 녀석이 아예 사라져버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이봐, 난 네 녀석의 친구가 아니거든?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게 이 녀석의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하니.

 
 “아니야, 그런거 없어. 그냥 요즘 좀 그냥 정신이 없어서”

 “그럼 됐고. 그래도 고민거리 있으면 들어줄 테니까 혼자 끙끙 앓지는 말라고.”


 그러더니 신동현은 휙 하니 뒤돌아섰다. 녀석, 우락부락하고 말만 많은 입술 두꺼운 녀석인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괜찮은 놈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우정이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껍데기를 위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 이쪽 세계를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은 좀더 친하게 지내도 좋을 것 같았다.다.

 

 “고맙다.”


 그러자 녀석의 등이 살짝 움찔하는게 보였다. 으헉, 말하고 나니 나도 상당히 손발이 오그라든다.

 
 “징그럽다 친구야. 그렇게나 고맙다는 말 하고 싶으면 이따가 미팅 잘되고 나서나 해.”

 
  미팅이라. 솔직히 기대는 된다만 애초에 내가 관심을 가졌다는 그 혜진이란 애가 누군지도 모르고. 게다가 막상 만나 봤더니 완전 깨는 스타일이면 어쩐다냐.

 
 “헐, 이러다가 나 맞아 죽겠다. 빨리 오란다.”

 
 마침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 하던 신동현이 기겁하며 말했다. 아마 저쪽 일행에서 협박성 문자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은정이였던가? 어쩌면 그 여자애가 보냈는지도 모르고.

 
 “빨리 가자.”

   
 녀석이 다시 우리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걷는 속도를 높였다.그리고 마침내 크게 왼쪽으로 꺾어진 길을 빠져나오자 저쪽 너머로 어렴풋이 분수대로 보이는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삼단의 분수대 맨 위에는 돌고래처럼 생긴 돌조각이 있었고 그의 등짝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목적지가 눈 앞에 보인 탓일까. 우리는 뛰듯이 걸어 분수대가 있는 널찍한 공간에 도착했다. 하지만 널찍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까이서 본 분수대 광장은 공간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오히려 비좁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공원의 랜드 마크라도 되는 모양인지 길들도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끼리 나왔는지 어린애들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도. 심지어는 군복을 입은 사람도 보였다. 물론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한 가득이나 모여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누가 우리랑 같이 미팅하기로 한 7반 여자애들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긴, 나는 애초에 7반이 아니라 우리 반 애들을 여기다 갖다놔도 잘 모를 테지만.

 
 “저기야, 저기. 어이~! 미안, 좀 늦었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갈피를 못 잡자 신동현이 옆에서 손가락으로 어느 한 여자애들 무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우리 존재를 알아차린 듯 이쪽을 바라보았다. 신동현은 금세 안면을 바꾸고 가식적이지만 밝게 웃는 얼굴로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섰다.

 
 하지만, 난 그 여자애들 무리 한가운데에 서있는 사람을 보고 그만 자리에 우뚝 서버리고 말았다. 이쪽세계로 넘어 오고 난 후 이젠 놀랄 대로 놀랐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고 숨이 멎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 여자는 그러니까. 아니 그러니까 저 여자가 왜 여길? 이럴 수도 있는 거야? 하긴 우리 엄마처럼 생긴 사람도 있으니까 저렇게 생긴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 세상은 대체 뭐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자꾸 이 모양 이 꼴이냐고!

 

----------------------------------------------------

안녕하세요.
새해도 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났네요.
이제 마침내 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여자애들을 만난 것 뿐이지만요.
아, 그나저나 하루에 두시간씩 쓰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뭔가 상당히 힘든 일이네요.
시냅스가 탈진이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ㅋ;;

?
  • ?
    乾天HaNeuL 2011.01.08 22:17

    어... 님 드라마 많이 보셨나 봄. 딱 중요한 부분에서 끊어버리시다니... ㅋㅋㅋㅋㅋㅋㅋ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8 22:29

    헤헤, 의도했다고도 할 수 잇고 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고 그렇달까요?

     

    저기서 더 이어 쓰기 시작하면 끊는 타이밍이 계속 애매해서

    그러면 또 한참을 써야 할지도 모르고

     

    제가 하루에 2시간 이상 타이핑 하면 완전 녹초가 되버려서요.

    저기까지가 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ㅎ

  • profile
    ♀미니♂ban 2011.01.09 04:02

    설마 누나라던지 실제 여동생이라던지..? 친척들?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9 04:58

    다음화에서 밝혀집니다. ㅎ ^-^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9 07:58

     끊는 타이밍 부분은 다른 분들 의견과 같네요 ㅎㅎ 절묘한 타이밍인 듯;

     그래선지 이번 화가 유독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까요. 잘 봤어요. 저도 한 편 올리고 자야 하나...;;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9 08:01

    윤주님 글을 애타게 기다리는 1人이 여기 있습니다요~!

  • ?
    Mr. J 2011.01.09 10:28

    예전 편들을 못봐서 그런지 어떤 여자인지 감도 안잡히네요 ㅎㅎ 시간내서 정주행해봐야겠습니다.

    잘봤습니닷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9 18:26

    저 여자는 이번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에요. ㅎ

    중요 인물로 삼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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