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5 23:17

이상한 나라의 시우(13)

조회 수 378 추천 수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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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그럼 이따 오후 3시에 여기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고. 다들 다치거나 요상한 짓거리 하지 말고. 알았지?”

 

담임이 노랗게 낙엽이 진 나무 아래 서서 말했다. 다행히 내가 겪어본 선생 중에서는 학생들 앞에 놓고 떠드는 시간이 무척 짧은 편이다.

 

, 그런 담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날 이후로 매일 보는 얼굴이었지만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인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이가 29살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가 46살이니 17살 차이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엄마가 저 나이에 결혼해서 나를 낳은 셈인가?

 

하지만, 역시 이쪽 세계의 엄마는 이보영이란 낯선 이름을 가진 타인일 뿐이다. 다만 언젠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지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아이를 낳게 되려나? 나는 새삼스럽게 이보영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럴 리가. 일단 이 세계에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고 담임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리란 법도 없으니까.

 

선생님, 저희랑 같이 동물원 구경해요~”

? 아니 그게 난 저쪽 선생님들하고 같이

에이, 저런 아저씨들이랑 같이 뭐하시게요. 그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놀아요. ?”

 

마침, 여학생 서너 명이 담임에게 달라붙었다. 원래는 다른 선생들하고 어울릴 모양이었는지 담임은 저쪽 편에 서있는 다른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 뭐해 약속 시간 늦는다니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신동현 녀석이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그 놈 옆에는 아까 미팅에 같이 나가기로 한 승호랑 재준이란 녀석도 보였다.

 

, 그래.”

그나저나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냐?”

뭘 보긴...”

 

난 다시 담임이 서있던 은행나무 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담임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그냥 날씨가 좋으니까 단풍구경이나 하고 있었지.”

단풍... 뭐라고? 뭔 개소리야. 날씨가 쌀쌀하니까 중풍이라도 맞았냐?”

 

녀석이 질린다는 듯 날 바라본다. 하긴 이 나이에, 이 청춘에 한다는 말이 고작 단풍구경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이럴 때는 빨리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이다. 난 애써 태연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미팅하는 장소까지 가려면 좀 서둘려야 되는 거 아냐?”

내 말이 그 말이다. 지금 너 때문에 못 가고 있는 거 안 보이냐?”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하고 말하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저 녀석이 으악, 아까 내가 늦는다고 말했어, 안했어? 하고 또 길길이 날뛸 것 만 같았다.

 

그럼 빨리 가야지. 아까 분수대라고 했던가?”

 

그러자 놈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니가 이쯤에서나마 제정신을 찾아줘서 고맙구나.”

 

그럼 내가 언제는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냐? 하며 부아가 치밀다가도 나는 애써 얼굴 표정을 관리했다. 그래 마음이 넓은 내가 참아야지. 사실 솔직히 참아준다기보다는 참아야만 하는 입장이긴 하다. 기본적으로는 이 몸뚱아리 원주인과 싱크로 율을 맞춰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지랄같은 성격에 다들 제 2의 질풍노도의 시기냐며 놀라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감정의 폭발일 뿐. 그 이상 내 자신을 드러냈다가는 누구나 단번에 내 상태를 눈치 챌 것이다.

 

아무튼, 이러다 진짜 늦겠다. 가자.”

 

그 말과 함께 신동현이 중앙 팔각정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떠들던 두 녀석도 곧 그 뒤를 따랐고 나 역시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낙엽이 떨어진 보도 위를 걸었다.

 

그나저나 분수대라... 내 기억에 어린이 대공원에 분수대는 없었던 같은데. 아니, 있었던 것 같기도 싶고. 아아, 모르겠다. 솔직히 여기 어린이 공원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린이 공원이란 보장도 없고.

 

얼마나 걸었을까 팔각정을 넘어와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저 앞에 아까 사라졌던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결국에는 우리 반 애들하고 동행하기로 했는지 몇몇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진짜 멀리서 보니까 머리카락 긴거만 빼면 완전히 우리 엄마랑 똑같네...

 

, 너 어디가?”

?”

분수대는 이쪽인데?”

 

뒤돌아보자 신동현이 뒤쪽 갈림길에 서있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일행들과 떨어져 홀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아마 담임의 궤적을 쫓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쪽 방향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뒤에 따라오던 놈이 잘 따라오기나 할 것이지 갑자기 어딜 가는겨?”

분수대가 이쪽 아니였어?”

 

난 짐짓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발 모르면 잘 따라오기나 해. 알긋냐?”

 

그러더니 신동현은 다시 뒤돌아 갈림길의 왼쪽 방향으로 향했다. 길의 저쪽에는 나머지 두 녀석이 서로 뭐라고 떠들어대며 서 있었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자꾸만 정신이 산만해진다. 내 나름대로는 이 세계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머릿속은 한참이나 헝클어진 채로 흐트러져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거꾸로 되돌아온 갈림길에는 마침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왼쪽 길은 분수대, 담임이 향한 쪽은 동물원 쪽이었다. 표지판 앞에 서서 나는 다시금 동물원 쪽 길을 바라보았다. 담임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뭔가 꿉꿉하고 눅눅해져서 녀석들의 뒤를 따랐다. 가을인지라 울긋붓긋한 활엽수들이 공원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고 바삭거리는 단풍잎 향기가 코끝을 간지러 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지 못했다.

 

지난 두 달간 나는 정말 나에게 닥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또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찾아 다녔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지식인에 물어보기도 했고, 대답이란 것은 대게 우리나라 정신병원 목록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뿐이었지만,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관련된 인터넷 동호회와 카페들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런 곳에는 정신 나간 녀석들만 잔뜩 모여 있을 뿐이었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국립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차원이동이니 영혼의 뒤바뀜이니 하는 책들을 살펴보고는 있지만 여태껏 내가 필요한 정보는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무당도 찾아가 보고 점쟁이도 찾아가봤지만 마가 끼었다면서 부적이나 토템을 사야 한다고 할 뿐, 아무도 내 상태를 알지 못했다.

 

혹시 죽으면, 죽어버리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가득 매우기도 했었다. 어느 날은 마침내 학교 수업을 듣다 말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난간위에 섰던 적도 있었다. 4층 건물의 옥상에서 보는 지상은 상상외로 아찔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지만, 이 세상에 갇혀 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마음이 들어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간위에 서서 한발자국만 더 앞으로 내딛으면 되는데도 나는 결국 그 결심을 실행하지 못했다. 만약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그야말로 개죽음일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찌질하게도 난 두려웠던 것이다. 내 머리가 콱하고 콘크리트 바닥위에 부딪치는 순간의 감각을 난 그만 상상해 버렸고. 조용히 그러나 비참해지는 심정으로 난 천천히 난간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뭐야, 미팅 가는 놈이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 설마 미팅이라고 쫄았냐?”

 

앞에 가던 동현이 놈이 내 표정을 보고는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덕분에 난 끝없이 이어질 듯 뽑아져 나오던 사념들에서 벗어나 녀석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있었다. , 그렇게 뒷걸음질 치다간 넘어질 텐데. 마침 놈의 길 뒤편에 길쭉한 계단 같은 돌기가 솟아나 있었다. 지금 저대로만 걸으면 몇 걸음 뒤에 그의 운명은 바닥을 나뒹굴어야만 하는 필연의 연장선상 위에 있는 것이다.

 

이걸 알려줘야 되나? 하지만 평소에 해오던 짓거리를 생각하면 또 쌤통이기도하고. 하긴, 저 정도로 넘어진다고 크게 다치진 않겠지... 아니지. 혹시 잘못 넘어지면 어디라도 부러질지도 모르잖아, 담임이 어디 다치거나 하지 말라고 했는데.

 

, !”

? 내가 정곡을 찔렀냐?”

 

씨익 웃는 녀석의 표정과는 무관하게, 녀석의 그림자를 가로지른 운명의 장애물이 빠르게 그의 뒤꿈치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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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에서 한글로 옮겨 탔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전 까지와는 글자체가 좀 다르네요.

 

창도가 리뉴얼 작업을 할때 쟁겨 놓은 분량이 있어서 이번엔 좀 빨리 다음화를 올립니다.

사실, 어제 소설창작 강의를 듣고 왔는데 그 영향을 받아서 좀 불타 올랐는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미팅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자꾸 서론이 길기만 한 것 같아요.

그래도 다음화 쯤이면 슬슬 미팅이 시작될 것 같기도... ㅋ;;

 

아무튼, 여러분이 매서운 비판과 감상을 귀를 씻고 기다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6 00:07

     듣고 계시는군요, 강의.

     도움될 만한 얘기 있으면 간혹 들려주세요~ 어떤 거 배우는지 궁금하네요^^


     그럼 저는 다시 다음 화를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6 05:13

    네 듣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건 어디다 올려하 되는거죠? 흐음..

  • profile
    ♀미니♂ban 2011.01.06 04:56

    시우님 글은 은근히 저랑 같은 대사형인데 서술형이 저랑 약간 다른듯.. 역시 나보다 잘 쓰는듯 ㅠㅠ 역시 실력자??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6 05:14

    저는 대화 쓰기가 무척 어렵더라구요.

    자연스러운 느낌이 살지 않아서

    매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력차라뇨~ 그저 스타일의 차이일 뿐입니다.

  • ?
    Mr. J 2011.01.06 07:20

    잘읽었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글을 잘 못써서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잘 쓰시는 분들 보면 부럽습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6 18:40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
    乾天HaNeuL 2011.01.07 06:53

    드디어 벌을 받기 일보 직전. 후우...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7 07:42

    나의 심판을 받아랏. ㅋ

    사실 전개가 너무 엿가락 처럼 늘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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