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break

by RainShower posted Feb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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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태양과 달 그리고...


 


+  +  +


 


 결국 소혜의 폭력으로 기진이의 수다는 끝나버렸다. 기진이가 떠든시간은 꽤 길어서 금방 종이 울린다.


 지루한 수업이 계속된다. 7교시는 영어. 영어선생은 상당히 까다로운 성격이라, 자다가 걸리면 도리어 피곤해질테니 수업 듣는 척이라도 해야 무사히 넘어간다. 뭐, 여태까지 한번도 지적받은 일은 없지만.


 


 펼쳐놓은 영어책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지금까지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반대로 옆에 펼쳐놓은 공책에는 글씨와 낙서들이 가득차 있다. 오늘도 낙서나 하면서 이 시간을 때워야겠다.


 


 막상 하려니 무엇을 그려야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10분정도를 아무 의미없이 낙서로 보내다가, 지루해서 앞장으로 넘긴다. 어제했던 낙서를 보면서 계속 공책을 거꾸로 넘긴다.


 


 이틀전, 삼일전.. 일주일전, 이주일전... 한 달전..


 


 딱딱한 겉표지가 나올때까지 거꾸로 넘긴 공책. 별 의미없이 그때그때의 느낌을 그대로 옮긴 연필의 화석을 보며 의미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서 가끔씩 보이는 자작 시들.


 


 시를 처음썼던 때가 중학교 1학년. 그 시절은 나에게 있어 과도기와 비슷한 시기였다. 항상 무언가를 갈구했으며,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너무도 원하는게 많았었는데, 단 두사람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그들은 나에게서 일정거리를 유지한나를 어디론가 가길 강요했었다. 내 수많은 마음따위는 상관없이.내가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항상 고개를 흔들며 가로막던 사람들
그때부터 나는 '미움'뒤에는 '증오'라는 마음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마음을 풀길이 없는 어린나이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게..바로 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증오'는 허무로 뒤바뀌었다. 그렇게 바뀌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중학교 1학년. 가을과 겨울사이..


 


 


 2013년 10월 19일.


 


 새벽.


 


 


 그때의 광경을 머리속에 떠올리는 순간, 갑자기 지진이 난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심한 빈혈이 몰아친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하늘을 보고 있을때 느끼던 이상야릇한 기분과 똑같다. 참지 못할 정도로 심한 어지러움때문에 버틴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한채, 책상에 엎드렸다.


 


 


+  +  +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지루한 야간자율학습시간도 끝나버렸다. 이미 달은 하늘 높이 올라 은은한 빛을 뿌린다.


 그 아래로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학교에서 무더기로 쏟아지는 아이들. 조용했던 밤은 아이들의 수다소리로 일순간에 시장바닥이 된다. 시내를 순환하는 마지막 버스가 교문앞에서 그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독서실이나 학원차량이 줄줄이 이어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불이 꺼진 교실창밖에서 내려다 보았다.


 


 칠흙같은 교실에 감도는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나는 항상 즐거움을 느낀다. 내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시간은 단지 이 시간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즐겁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멍하게 서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게 너무도 편안하다. 신이든, 뭐든 지간 내게 허락만 해준다면, 이대로 이자리에 멈춰, 모두의 시간을 지켜보고 싶다.


 


 


 하지만, 정말 멈춰있어도 괜찮은걸까.


 


 


 더 이상 학교에는 인기척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독서실. 학원. 집. 혹은 노래방. 몰래 술집을 가던.. 모두다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버린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교실에 혼자 남아있는다.


 왜냐하면, 나에겐 해야할 일도, 있어야 할 곳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에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살아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검은 하늘의 작은 구멍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밖에 느낄 수 없었다.


 


 눈동자를 돌려 그 빛을,  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잔잔한 빛을 오래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달을 보기위해 필연적으로 하늘을 봐야했기에 금방 빈혈과 이상한 느낌이 몸을 업습해 고개를 내렸다.



 
 고개를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시야는 운동장을 향했다. 그 순간 유난히도 달빛을 밝게 비춰내는 무언가를 스쳐보았다. 흔들리는 시선을 운동장 한가운데로 고정시킨다.


 


 살랑이는 바람에 리듬을 맞춰 흐르는 새하얀 달빛. 그것은 비단처럼 하늘거렸다.


 


 두근.


 


 '이게 아까 기진이 말했던 '귀신'이구나.'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째서 숨도 못쉴만큼 심장에 크게 울리는걸까. 발끝부터 머리까지 서서히 내 생각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이려고 한다.


 


두근. 두근.


 


 새하얀 달빛을 비추던 나의 시야는 어느샌가 붉게 물들어버렸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식도가 순식간에 메말라버렸다. 지금 내가 왜이러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몸 상태는 급속도록,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돌변한다.


 


 메마름이 극에 치닫고 뒤이어 끈적한 갈증이 목구멍을 역류한다.


 


 찢어버리고 싶어. 달빛을 머금은 저 새하얀 물결을 찢어버리고 싶다. 이 손으로 산산조각 내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바람결에 뿌려주고 싶다.


 


 "기다려."


 


 쨍그랑.


 


 진로를 방해하는 투명한 장애물을 깨트린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유리조각이 남아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충동에 잡아먹히고, 나는 창틀을 딛고 운동장으로 날아가듯 뛰어내렸다. 4층이란 높이를 아무런 상처없이 착지한다. 내려서자마자 자연스럽게 발목을 튕겨 순식간에 운동장 한가운데에, 하얀 귀신앞에 선다.


 


 열손가락이 전부다 간질거린다. 어서 이 손가락으로 저것을 망가트려 주고싶어.


 그렇지 않으면 이 간질거림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겠지.


 


 "그렇게 급하게 올 필요는 없었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다. 세상은 온통 붉은색. 알수없는 증오가 내 가슴 한구석에 끓어오른다. 타들어갈듯한 고통이 전류가 되어 전신을 울린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심장도, 뇌도, 몸도, 무리하게 부푼 풍선의 최후를 맞이 할것 같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죽여야겠어


 


 


 "당신이 어떻게 공간계를 벗어났는지 궁금하지만.. 대답해 줄것 같지 않아..."


 


 들린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지나친거겠지.


 그래서 내 입은 움직여 대꾸하지 않은거겠지.


 


 "그래도 혹시.. 가르쳐 줄 생각 있어?"


 


 오직, 피로 물든 손가락만이 대답할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