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손끝에서 울리는 타이핑 소리.
그건 일정한 박자를 가진 듯하지만
생각이 끊기면 그 박자는 절대 살아나질 않는다.
잡히지도 않는 백지 위에 깜빡임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정확히는 설렘보다 걱정과 불안에 가깝다.
긴장과 공포로 인해 심장 박동이 타이핑 소리와 비슷해진다.
손 끝에서 한 사람이 선다.
그 다음 줄에서는 그 사람은 남자가 된다.
하지만 그 다음줄에서는 그 사람은 여자가 된다.
그렇지만 뭐가 중요하겠느냐.
백지 속에 있는 그 사람은 진짜 있지도 않는데.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도
백지를 마주하는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저 손을 섬세히 움직여 그가 더 아픈, 그렇기에 더 아름답게
그렇게 갈 수 있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이 마치 나를 향해 말하듯이
아프다고 소리치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누구도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에
그 생소한 감정에 당황한다.
타이핑 소리가 끊어진다.
길게 길게 끊어진다.
재빠르게 박자를 살려서 급박한 노래를 만들다가도
모든 것을 지우는 빠른 반복의 소리가 다시 백지를 만든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친 그 줄은 이미 지워진 상태다.
다 만들 수도 되돌릴 수도 있다.
내 손 끝에서 나는 타이핑 소리가 멈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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