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짇다.
안개가 핏빛처럼 붉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그러기 전에 모든 것을 가려버렸을 테니까.
물이 흐르는 것도, 가로등이 켜지는 것도
모두 짇은 안개 속에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귀찮은 것들이 모두 나에게 들어오지 않겠지 -
라고 생각하지만 뭔가 찝찝하다.
물 틀어놓고 목욕이라도 해야하나
생각하는 순간
안개도 물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는 밖에서
밤이슬만 맞고 있었다.
뭐, 안개의 저편이 끔찍하더라도
그 끔찍함이 나에게 접근하지 않는 이상
나를 알 수 없을테지.
그 장막이 화약 연기만 아니면 상관없겠지.
장막 너머는 고요하고
그저 호흡소리만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