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 살아있는 생명은 결국 자의적인 의미만이 부여된 존재라고 말하고 있네요. 만약 '새'가 '개'로 불리웠다면 '개'로 생을 살고 마감했겠죠. 그외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지 그것에 붙은 단 하나의 의미가 그것의 모든것을 바꾸며, 또 그것을 그렇게 하도록 정한건 아무런 인과관계없는 우연이라고 볼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기뻐하며 살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이죠. 마지막연에서 이런 내용이 조금 회의적인 표현으로 나오는군요.
굿굿....
//기뻐해야 하는 걸까...
정확히 해석을 해보자면 우리가 보람찬 일을 하고 사회적 성공을 하고 아무리 백날 즐겁고 좋게 살아도 결국 인간이고 그 한도에서 결국 소멸해버리는데, 인간은 그저 현재의 '의미 없는' 의미를 부여해 현재를 살아간다.
깨닫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그들에게 답답해서 쓴 시기도 하고 저번에 우울증의 원인 이기도 하고.
위의 댓글은 읽지 않았습니다.
여튼 저의 생각으로는 "의미 없는 의미에 기뻐하며 죽어간다"말 자체의 모순.
그러나 새는 새의 관점이 아닌 타자 보고 있는 인간에 의해 그의 삶이 정해진다라면 가능하지요.
어는 누군가가 새를 보고 있다면 그 새의 주인이 아닌 이상 새를 그 철창에서 아무나 꺼낼수 없으니 말입니다.
뭐 여기서 새는 인간 사회를 나타 내는걸수도 있지요. 아니면 시를 쓴 본인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