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3 02:17

데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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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쪽나무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햇살이 너무 밝아 구름이 좀 있었으면 싶었다. 아쉽게도 오후가 되자 해는 더욱 쨍쨍해졌다. 자갈로 덮인 길을 걷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발목에 힘이 들어갔다.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파도가 높지도 않아 거무스름한 빛을 띄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겉옷을 벗었다. 가죽으로 된 여행복의 후드를 고이 접어서 가방 안에 넣었다. 부피가 큰 탓에 억지로 쑤셔넣게 되었다. 나는 두툼해진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용을 사냥하겠다던가 하는 그럴싸한 시작이 아니었다. 도망에 가까운 시작이었다. 지난 달 가렌이 나에게 습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성곽에 내걸린 깃발에는 내 피가 가득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창과 간단한 짐을 꾸려 성 밖으로 나왔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그저 동쪽으로 뻗었다. 언덕길은 해가 질 때까지 도통 끝나지 않았다.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산맥 언저리에 노을이 피어오를 때가 되어서야 오르막길은 끝이 났다. 바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쪽나무는 이제 볼 수 없고 느티나무나 느릎나무 따위가 빽빽하게 하늘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몇 년이나 저렇게 두서없이 자라난 것인지, 숲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동굴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으므로 계속 걷기로 했다.

 '숲에는 말을 할 줄 아는 원숭이가 튀어나온단다. 아니면 공허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 땅 속에서 머리를 내밀 기도 하지'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그런 식으로 겁을 주었다.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 날은 편히 잠들지 못 했다. 유모를 불러다가 옆에 앉혀 놓아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벌써 십 여년이 흐른 뒤이지만, 어두컴컴한 숲의 마경 앞에서 불쑥 아버지의 고약한 심보가 떠올랐다. 

 "위대한 자르반 3세"

 아버지는 위대한 임금이었다. 주변의 침입에 물러선 적 없으며,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인자했다. 모범적인 아버지였으며, 훌륭한 가장이자 남편이었다. 그가 쓴 왕관은 언제나 정갈하여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언젠가 그런 왕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아련하게 멀어진 꿈이었으나, 나도 모르게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왕국의 상징인 황금 사자와 독수리가 새겨진 긴 창. 대대로 왕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보.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는가 싶음에도 창날은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애장품일 텐데 대체 누가 평소에 손질을 해두었단 말인가. 되도 않는 농담이 머릿 속에 떠돌았다.

 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는 별도 달도 있을 텐데, 숲 안에서는 도통 빛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챙겨온 랜턴에 불을 붙여 앞을 밝혔다. 기름 먹인 랜턴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 앞을 밝혔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드러누울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데마시아의 장군이다. 왕자이기 이전에 위대한 자르반 3세가 임명한 대장군이며, 녹서스에게 패배를 안겨다 준 영웅이다. 물론 가렌과 럭스 남매의 공이 없을 순 없었다. 불굴의 부대를 이끄는 친구들은 무패의 행진을 계속 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무관들은 나의 전략을 극찬했다. 10년 간의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우리 왕국의 노력일지 몰라도 그 업보를 등에 짊어진 것은 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개망나니 다리우스!"

 

 아직도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의 친우 장군 가렌은 숨까지 헐떡이며, 중갑옷을 걸치고 나타났다. 그는 평소의 흰색으로 마감이 된 예식 갑옷이 아니라, 전쟁에서 입었던 거무튀튀한 쇳덩이로 몸을 무장하고 나타났다.

 "뭐가 잘못됐어."

 밤잠을 설친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는 데 한 참이 걸렸다. 즉위식은 얼마 남지 않았고, 위대한 선왕의 시신은 아직 선조의 언덕 위의 돌무덤에 안치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온 친구에게는 항상 붙어 다니던 여동생이 아니라, 데마시아 최고의 검객이 붙어 있었다. 피오라. 존경과 경애를 실천하는 검투사. 그녀는 전쟁에서의 공보다 평화시의 명성이 더욱 컸다. 패배 한 적 없는 도전자는 한 때 온 대륙에 명성을 떨치던 소드마스터를 상대로도 패배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 검객과 합을 맞춰 본 나로썬 피오라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전하, 녹서스입니다."

 그들과 우리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아직 날인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다. 기습일까, 또 지리한 핏구덩이 속으로 우리가 끌려들어가야 하는 걸까.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다. 친우는 등에 짊어진 대검을 뽑아들어 방 밖을 향해 섰다.  

 "친구여, 다리우스와 드레이븐 형제네. 어떻게 군대를 끌고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궁궐의 절반은 그들이 차지했어."

 "신짜오는?"

 "글쎄, 그가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어."

 "자네 누이는?"

 "그녀는 수도 경비대의 대장을 만나기 위해 떠났어. 아무래도 오늘 안에 돌아오진 못 할 꺼야."

 광명의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 이름도 찬란한 그녀는 무사한 모양이었다. 수도 경비대까지 궁궐에서 말을 타고도 하루거리였다. 숲 속에 병영을 세워 매를 데리고 다니는 훌륭한 정찰대들은 언제나 궁궐을 둘러싼 숲을 깨끗하게 지켜냈다. 이번엔 그러지 못 했다. 돌아올 때까지도 하루가 걸린다면, 오늘 밤을 무사히 버텨야 했다. 나의 방이 있는 3층까지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 기합 소리 등이 들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쇳덩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흉장 다리우스! 그의 굵은 기합소리가 들릴 때 마다 비명소리가 복도를 지나 방 안까지 들이쳤다.

 "어서! 창문으로 지금 나가면 눈에 띄지 않을 꺼야. 지붕을 타고 2층 베란다로 내려가게."

 가렌은 검을 들어올려 양 손으로 쥐었다. 복도를 향해 돌처럼 굳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피오라가 옆에서 나의 짐을 꾸렸다.

 "전하. 내달 둘째 주. 궁궐의 깃발은 금색 사자를 수 놓은 흰 바탕 입니다. 그때 돌아오소서."

 충실한 신하, 친구들을 방에 두고 나는 그렇게 뛰쳐나왔다. 적을 두고 나온 비겁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친우에 대한 걱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가렌은 그 정도로 죽을 위인이 아니었다. 피오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녹서스의 개망나니 형제를 막아내는 데에 그 둘이면 족할 것이다. 다만 또 다른 적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게 모두 뱀같은 찬탈자 스웨인의 계략이었을 것이다. 

 "찬탈자 스웨인"

 녹서스는 본래 호전적인 나라였다. 몇 번이고 우리 왕국과 칼을 맞댄 것은 물론이고, 주변의 나라들을 끈임없이 침공하며 조공을 요구했다. 깡패집단 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은 어렷을 적부터 했다. 그러나 스웨인은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요사스러운 놈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가문의 노인이 무슨 짓을 해서 그 패기넘치는 왕국을 장악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양 옆에는 마녀 르블랑과 흉장 다리우스, 그 동생 망나니 드레이븐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붉은 머리의 아름다운 그녀 역시 스웨인의 종이었다. 그녀도 혹시 그 밤에 왔는지, 신경이 쓰였다. 

 

 숲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다. 종종 늑대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곤 했으나, 빛을 밝게 하고 창을 굳게 쥐었다. 두려움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허리가 아플 지경이 되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누군가 살았던 것일까. 나무 몇 그루를 베어 사람 너댓이 누울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만들어진 자리였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옮겼다.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은 이내 공터를 전부 비췄다. 이끼나 들풀 따위를 그러모았다. 지겹지만 그리운 침낭이 만들어졌다. 물통을 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흔들어 보았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가볍다. 내일은 개울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불을 꺼버리면 들짐승들이 들이닥친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들을 우겨넣었다. 흙으로 담을 만들어 불길이 퍼지지 않게 하고 주위에 가는 나무조각들을 뿌렸다. 혹여 무엇이 다가오면 소리가 날 것이다.

 바삭. 나무조각들을 뿌려놓은 건너편에서 소리가 났다.

 "누구냐!"

 "누구냐!"

 둘 중 하나는 나의 목소리였다. 다른 하나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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